요즈음 우리 국가공동체의 발전 방향을 놓고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정치권력을 둘러싼 선거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과 대립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대립의 지점을 요약하면 복지 체제 강화자유경쟁 강화이다. 전자는 이제 우리나라도 잘살게 되었으니 당장 북유럽 국가들같이 고복지 체제로 나아갈 수는 없다고 해도 조세부담률을 더 높여 복지혜택을 확대하는 중복지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내 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기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국가가 세금을 거둬서 잘 쓸 것이라는 믿음이 크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후자는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들에 대한 복지혜택을 높이는 것은 경쟁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므로 경쟁의 자유를 강화하여 사회 전체적인 발전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대체로 감세정책과 친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을 솔깃하게 만든다.

이러한 기본적인 차이를 기초로 다양하게 변형된 대립과 갈등이 드러나고 있다. 한쪽에서는 양극화 완화를 주장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주장한다. 한쪽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무임승차 부당을 주장한다.

한쪽에서는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심각하므로 이를 금지하고 계몽하기 위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차별금지법은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주장한다. 한가지 공통점은 양측이 서로 상대방을 부패와 위선의 세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OECD 국가 37개국의 GDP 대비 장애인복지지출 비용(2015년 기준)1위인 덴마크의 경우 현금 3.0%와 현물 1.4% 합계 4.4%인 반면에 35위인 우리나라는 현금 0.4%, 현물 0.2%, 합계 0.6%이다. 이러한 두 국가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한편의 해석으로는 고용시장 등 시장경쟁을 통해서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장애인들에 대해 국영기업이 직접 고용하여 취업 훈련을 시키고 경험과 능력이 향상된 장애인들을 일반기업에 취업 알선을 해주는 데 예산을 사용하면 단순히 장애인들의 삶의 질만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연대의 정신과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어 국민 전체적인 인권 보장 수준이 높아지므로 투자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다른 한편의 해석으로는 장애인복지에 사용하는 예산을 법인세 절감이나 규제 완화와 같은 방식으로 기업들에 지원하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져 경제가 발전하므로 결국 경제적 약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경제적 약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태도에 대해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한쪽은 약자에 대한 투자가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고 다른 쪽은 약자에 대한 투자가 사회적 낭비라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회원들은 정부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예산을 책정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지하철 출근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장애인들의 면담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기재부의 태도는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일관되었다.

 

취임 선서하는 윤석열 대통령(사진출처 - 위키백과)
취임 선서하는 윤석열 대통령(사진출처 - 위키백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외쳤는데 이 자유의 실체가 시민들의 자아실현의 자유가 아니라 기업들의 자유에 국한된다는 것이 이후 정책발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피로사회를 완화하기 위해 도입된 주52시간제가 주 100시간 노동이 가능한 제도로 변칙 운영될 위기에 처해있고, 미숙련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최저임금제가 업종별-지역별 차등 적용으로 실효성이 약화할 상황에 처해있다. 1천여 명에 달하는 산재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령 개정으로 무력화될 위기에 처해있다.

 

사진 :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기자
사진 :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기자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전통적으로 사람의 값어치, 특히 사회적 약자의 값어치를 후하게 쳐주는 데 인색하였다. 누군가는 동학혁명군이 내걸었던 기치가 인내천이었음을 근거로 전통사상이 사람을 귀하게 여겼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기득권세력은 일본군과 손잡고 동학군을 철저히 섬멸하였다.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바뀐다면 동일한 사회적 자원으로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도모할 때 그렇지 않아도 노동시간이 긴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더 늘려 사회적 부를 늘리는 방식보다는 제한된 노동시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을 먼저 찾아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 양극화가 심한 상황에서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세를 통한 방식보다는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을 먼저 찾아볼 것이다.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통제방식도 겉으로는 교정 교화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돈이 안 드는 응징을 앞세우는 방식보다는 범죄자에 대한 교정 교화를 하는데 자원을 투자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60여 년 동안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정신없이 뛰어와서 이제는 먹고살 만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좀 돌아볼 때가 되었다. 혹시 우리가 여전히 사람보다 경제를 앞세우고 있는 건 아닌지,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이 기득권세력의 부와 권력을 더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는 지금 공정이라는 과제와 씨름하고 있다. 현 정부도 공정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집권하였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존중에 근거하지 않은 공정은 모든 사람의 조건과 능력이 같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를 짓밟는 공정이 될 수도 있다. 공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눈이, 이미 너무 많이 가지고 있고 경쟁의 장 밖에서 경쟁의 도가니를 보면서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향하게 되면 그 공정이 인간의 존엄을 부정하게 될 수도 있다.

 

| 김원규 변호사(부천이주민법률지원센터 모모센터장)

 

김원규 변호사
김원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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