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희주, 성명서 발표하고 1인 시위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부천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970~1980년대 공업도시의 이미지가 강했던 부천은 2천년대 들어 문화산업을 미래먹거리로 선정하고 부천 필, 시립합창단, 판타스틱 영화제, 만화축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비보이 세계대회 등을 집중 육성해왔다.

하지만 문화산업이 미래먹거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특정 예술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연극, 무용, 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이 골고루 발전해서 상승(相乘)효과를 끌어내야 함에도 지금까지 부천시의 문화정책은 그렇지 못했다.

정책입안자들과 예술인 사이의 소통은 원활하지 못했고, 장기적인 비전과 뚜렷한 목표 의식도 없었다. 그저 국제적인 행사 몇 개 만들어 놓으면 저절로 문화도시가 될 줄 알았겠지만, 언감생심, 문화도시가 그렇게 만만하면 세상에 문화도시 아닌 도시가 어디 있겠는가?

문화도시의 첩경은 예술가들이 마음 놓고 창작활동에 전념하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부천이 전국에서 가장 창작활동 하기 좋은 도시라는 평을 얻으면 부천은 곧 전국 최고의 문화도시가 되고, 부천이 세계에서 가장 창작활동 하기 좋은 도시라는 평을 얻으면 부천은 곧 세계 최고의 문화도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부천의 현실은 어떤가?

문화도시라는 미명하에 몇 년 전부터 떠돌던 예술인기본소득설은 말만 무성한 채 풍문으로 끝났고, 예술인들의 창작열을 고취하기 위해 지급하는 창작지원금은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창작지원금은 모든 예술가에게 지급하는 게 아니고 신청자를 대상으로 선별 지급한다) 문학인의 경우 올해 창작지원금으로 받은 돈이 고작 80만 원이라니, 이는 작년의 100만 원보다 20만 원이나 줄어든 금액이고, 타 시도의 200~300만 원에 비해 최대 삼 분의 일 수준이다.

예술인 재난지원금은 또 어떤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예술인들을 위해 부천시는 지난해 50만 원을 지급한 바 있다. 타 시도 대부분이 100만 원을 지급했기 때문에 부담이 됐는지 올해 초에 다시 5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공고를 냈는데, 서류가 무려 여덟 가지나 된다. (사정에 따라 13가지의 서류를 제출한 예술가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많은 서류를 제출하고도 정작 가구원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인 자라는 규정에 걸려 많은 예술가가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부천시의 예술인 재난지원이라는 생색내기에 순진한 예술가들만 이용당하는 꼴이 됐다.

지역예술가들에 대한 푸대접 역시 문화도시의 발목을 잡는 요인 중 하나다. 부천에서 열리는 전국단위의 학술대회나 문화예술 행사를 보면 대부분 주연은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유명 인사들이 맡고 부천의 인사들은 그저 구색갖추기로 꼽사리를 끼는 듯한 느낌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부천에 이들 유명 인사나 예술가들을 대체할만한 인물이 있냐고? 그들에게 묻는다. 부천에서 그런 인재를 찾으려는 노력은 해봤느냐고? 강호에는 본래 숨어있는 고수들이 많은 법이다.

2021년 수주문학상 심사위원 명단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 중에 부천에서 활동하는 시인은 단 한 명도 없다. 부천을 대표하는 문학상이고 부천시민의 세금으로 치러지는 행사인데 왜 철저히 부천의 작가는 배제하는지, 부천에는 정말 시인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는 것인지, 더구나 문학창의도시인 부천에서,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부천의 작가 누구누구가 책을 출판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 책들이 모두 시립 도서관 서가에 꽂혀서 부천 작가 코너를 이루었으면 좋으련만 지금까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명색이 문학창의도시인데 부천 작가 도서관은 아니더라도 각 도서관에  부천 작가 코너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 부천시는 부천 작가 코너는 고사하고 부천 작가들이 출판한 책 목록이나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 해마다 부천시에서는 부천의 책을 선정하는데, 선정된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부천 또는 부천 작가와 관련 없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부천 또는 부천 작가와 관련 없는 작품을 선정할 거면 타이틀을 부천시민이 뽑은 책으로 수정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박희주 작가는 부천을 대표하는 중견 소설가다. 그가 성치 않은 몸으로 40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를 무릅쓰고 1인 시위에 나선 이유를 부천시 문화예술 정책 담당자들은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다음은 박희주 소설가의 성명서 전문이다.

 

시청 정문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는 박희주 소설가
시청 정문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는 박희주 소설가

 


 

문학인 박희주 성명서

 

부천시는 문화도시를 천명하고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되었으면서도 예술인을 홀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학인에 대한 대접은 심각한 지경입니다. 부천에서 문학 행사나, 학술대회라는 명목으로 치러지는 모든 행사에서 축사하는 분들을 보면 문학이나 학술과는 관계없는 인사가 대부분입니다. 앞으로 이런 분들의 축사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다만 주관부처의 장()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천시 문화예술발전기금 운용을 보면 문화도시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부천시는 문화예술발전기금을 50억에 묶어놓고 그 이자로 100만 원에서 150만 원의 창작지원금을 지급하는데, 전국의 지자체 중 거의 꼴찌 수준이나 다름없습니다. 한 번에 기금을 올리기 어렵다면 연차적으로 인상하여 100억 정도는 돼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예술인발전지원금 대상에 선정된 예술인에게 200~300만 원 정도는 지급될 것입니다. 현재의 100~150만 원 지원은 작가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무명 작가의 경우 시집이나 소설집 한 권 출판하려면 500~600만 원이 드는 것이 현실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들을 위해 마련된 예술인재난지원금의 경우 중앙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경기도의 경기문화재단의 지원금 제출서류는 서너 개에 불과한데 부천시는 여덟 가지 이상을 요구합니다. 나의 경우 13가지 서류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렵게 제출했으나, 결국 코로나 지원금 50만 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무엇 때문에 지원 대상이 안 되는지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어려움에 처한 예술가들을 돕는 게 목적이라면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인정하는 예술인 활동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만으로도 지급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예술인 지원에서 상위 20%를 제외하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역차별입니다. 예술인은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지 않습니까? 이런 제도를 부천시만큼은 철폐하여 주십시오.

이상, 부천시 예술인 정책과 지원 제도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면서 아래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하니 부천시 문화예술 정책담당자와 관계자들은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주기 바랍니다.

 

하나- 예술인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제출받는 서류를 간소화하라!

하나- 상위소득 20% 제외 제도를 철폐하라!

하나- 예술 활동 증명을 마친 모든 예술인을 역차별하지 말고 지원하라!

하나- 부천 문학인의 저서를 시립 도서관은 최대한 구입하라!

하나- 예술인발전기금을 50억에서 100억으로 확대 조성하라!

 

2022729

 

소설가 박희주

 

| 이종헌(시인, 부천문인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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