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와 철학원을 운영하는 김정채(김동현) 씨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누군가가 늦은 밤 남들 눈을 피해 어딘가로 황급히 들어간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검은색 철창. 그리고 철창 안에서 쑥 나타나는 대머리 영감님. 얼음송곳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영감님은 이렇게 말한다. “어디, 물건부터 볼까?” 나는 전당포라는 곳이 이럴 것이라 생각하고서 지금껏 살아 왔다. 그러나 내 앞에 앉은 ㄷ전당포 사장 김정채 씨는 이런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전당포를 비롯한 대부업 업체들의 숫자가 중국집보다 많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취재를 위해 부천 남부역과 북부역을 돌아다니며 전당포를 찾아보다가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놀란 다음이었다. 역 주변이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아무리 대부업을 통틀어 헤아린다고 해도, 중국집보다 많다니. 걷다 보면 발에 차이는 게 중국집 아닌가.
 
“외국을 보면 전당포는 은행과도 같은 역할을 해요. 은행처럼 자리에 칸막이가 있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죠. 우리는 전당포 하면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곳으로 생각하지만 외국 전당포는 거기에 더해 물건을 사고팔기도 해요. 매입한 골동품도 취급하면서 중고장터도 함께 운영하는 식이죠.”
 
외국 전당포라고 해 봤자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수전노 스크루지 영감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머리에 도끼날을 맞아 죽는 전당포 할머니가 떠오를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앉아 있는 ㄷ전당포 안은 콩나물신문사 사무실만큼이나 환하고 널찍해서 그런 음산하고 눅눅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김정채 씨도 할아버지보다는 청년에 더 가까운 젊은 나이였다. 벽에는 부천시장이 발행한 ‘대부업 등록증’과 부천세무서장이 발행한 ‘사업자 등록증’이 붙어 있었다.
 
“매입과 대출을 해 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잖아요. 요즘 우리나라의 전당포들도 세계적인 트렌드에 맞춰 서서히 바뀌어 가는 추세예요. 골동품샵과 중고명품샵을 같이 하는 식으로요.”
 
전당포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원래는 부동산 일을 했었는데 그게 고정수입이 없는 일이잖아요. 이 전당포를 처음에 운영하셨던 분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좀 있었는데, 그분이 몸이 안 좋아져서 여길 정리하려고 하시더라고요. 고정수입을 원했던 저랑 그분의 뜻이 맞아서 제가 전당포를 인수하게 된 거죠.”
 
영업을 시작한 건 2012년 2월이었지만 전당포의 전 주인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였다고 한다.
 
“전당포 업계가 좀 폐쇄적이라 일하는 요령 같은 걸 잘 안 가르쳐 줘요. 근데 배워야 할 건 또 많죠. 물건 감정은 어떻게 하나. 장물은 어떻게 처분하나. 이런저런 법적인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나 등등. 사실 노하우를 알면 문제될 게 없는데 모르면 문제가 되는 것들이에요. 저는 이 전당포 전 사장님 옆에 딱 붙어서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다 배웠어요. 전당포 수업료는 꽤 비싼 편이고요. (웃음)”
 
전당포가 있다는 것은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뜻이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찾아와 무엇을 맡기고 가는지 궁금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요. 맡기는 물건도 금부터 가전제품까지 다양하고요. 어차피 큰 돈 빌리는 것도 아니니 신용에 문제 없는 사람이면 알아서 물건을 들고 와요. 옛날 전당포들은 금만 다뤘는데 요즘은 그렇게만 해서는 유지가 안 돼요. 시중에 금이 워낙 안 풀려 있거든요. 저희는 금 말고도 카메라, 노트북, 핸드폰 같은 것들부터 에어컨,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도 받고 가방이나 시계 같은 명품도 받아요.”
 
손님 이야기가 나오자 김정채 씨는 경기가 어려워진 탓에 최근엔 전당포를 찾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요 옆에 시장이 있잖아요. 시장 상인들이 물건을 가져와 저희 쪽에 잡히고 그 돈으로 상품을 사서 내다팔고는 그렇게 번 돈으로 물건을 찾아가거나 이자를 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요샌 시장에서 상품 자체가 안 팔리니 상인들도 더는 맡길 물건이 없거나 맡긴 물건을 못 찾아가는 거예요. 물건 잡히고 돈 빌려간 사람들이 이자만 내면서 기한을 계속 연장하고만 있는 거죠. 저희 쪽에서 나가는 대출도 30%로 줄었어요. 원래 경기가 안 좋으면 전당포가 잘 돼야 하는데 불경기가 한계선을 넘어 버리니 그게 안 되고 있는 거예요.”
 
손님이 물건을 전당포로 가져오면 김정채 씨가 신중하게 감정한 뒤 값을 매겨 손님과 뜻을 맞춘다. 물건을 언제까지 찾아갈 것인지 기한을 정하고 계약서를 쓴 뒤 돈을 내준다. 그러면 끝이다.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명품 시계를 하나 받은 적이 있는데 저희 쪽에서 대출만 천오백이 나갔어요. 일반 중고 거래 가격이 삼천. 그 사람이 구입한 가격은 칠천. 그게 제가 취급해 본 가장 비싼 물건이었죠.”
 
그러나 다른 가게들과 마찬가지로 전당포에도 ‘진상 손님’은 있다.
 
“핸드폰을 맡긴 사람이 있었는데 기한이 지난 다음에 찾아와서는 자기가 도로 사겠다고 했어요. 원래 기한이 지난 물건은 자동으로 제 것이 되거든요. 이 자리에서 핸드폰 뱅킹으로 돈을 주겠다고 하길래 핸드폰을 건네줬더니 그걸 들고 그냥 튀어 버리더라고요. 현재 경찰에 신고한 상태예요.
 
기한이 지나도록 안 찾아간 물건은 제가 합법적으로 팔 수 있어요. 기한이 지나면 물건을 처분한다고 공지도 하고요. 그런데 자기가 찾아갈 거였는데 왜 팔았냐며 저한테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미 기한은 한참 전에 지났는데도요. 일방적으로 화를 내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는데, 어차피 저희는 법적으로 하는 거라서 경찰에서도 그런 신고는 절대 안 받아 주거든요. 일 년에 한두 번씩 그런 사람이 있어요.”
 
 
ㄷ전당포 사장인 김정채 씨는 같은 사무실에 있는 ㅎ철학원의 원장이기도 하다. 철학원 원장으로 일할 때는 김동현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한다. 전당포와 철학원? 여간해선 인연이 닿기 힘들 것 같은 두 업종이 어떻게 한 사무실에 깃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여기 사무실이 넓잖아요. 그래서 철학원 하는 사람들한테 세를 줬어요.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같은 사무실에서 듣다 보니 저도 그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교수님을 찾아가 1년쯤 정식으로 배우기도 했어요. 그때만 해도 돈 받고 영업할 생각은 없었는데 철학원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나가게 되니 내가 한번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전당포에 오는 분들은 대부분 좀 힘든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물건 잡히러 왔다가 사주 보고 가는 분들이 있어요. 또 여기가 중고 장터를 겸하기도 하니 사주 보러 왔다가 쇼핑까지 하고 가는 분들도 있고요.”
 
전당포라는 공간에서 김정채 씨는 칸막이 뒤에 앉아 물건을 감정하고 값어치를 매기는 빈틈없는 주인 노릇을 해야 한다. 그러나 철학원이라는 공간이 생기고 나자 김정채 씨는 김동현 씨가 되어 사람들과 마주 앉아 그들이 하염없이 풀어 놓는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전당포 일이 시간이 많이 남는 일이다 보니 여기 오시는 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하면 무료하지는 않죠. 솔직히 전당포 일을 하면서 보람이 느껴지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빌려간 돈 유용하게 썼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있긴 한데, 저는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니까요. 근데 철학원을 하면서는 느껴지는 보람이 있어요. 아무래도 사는 게 답답하고 힘드니 철학원에 찾아오시는 건데 저는 시간이 허락되는 한 그분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여기가 뭘 얼마나 잘 맞히나 보러 오신 게 아니라 사는 게 하도 답답하니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오신 분들이니까요. 그런 분들이 나중에 저한테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고, 큰 도움이 됐다고 하실 때마다 보람 같은 게 느껴지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두 세계는 알고 보니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 주는 관계였던 모양이다. 전당포에 좋은 물건을 맡기고 많은 돈을 찾아간다고 해도 마음속 깊은 허기짐까지 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도 당장 먹고살 방도가 없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몹시 괴로울 것이다. 돈도 위로도 전부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답이 존재하겠지만 김정채 씨 혹은 김동현 씨가 찾은 답은 우리에겐 둘 다가 필요하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전당포를 하다가 철학원마저 함께 운영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일부러 전당포의 이름과 철학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왕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왔으니 철학원의 이름 정도는 밝혀도 될 것 같다.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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