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성 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40년 넘게 안경을 써오고 있습니다. 군대에서 실거리 사격을 하는데 200m, 250m 표적은 아예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격을 하는 바람에 안경을 깨뜨린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는 것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지나 국경을 넘어 토론토를 향해 간 적이 있었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고속도로는 정말 넓고 큰 도로였습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앞에 가던 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점점 폭우가 강해지더니 이제 아예 그 넓고 커다란 길마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으니 모든 차들은 그냥 그 자리에 선 채로 전혀 앞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정지해 버렸습니다. 저도 당연히 그 폭우 속에서 다른 차들과 같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인식을 해도 큰 오류를 피할 방법은 생깁니다. 제가 만약 폭우가 쏟아지는 퀸 엘리자베스 도로를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구 달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디가 길인지, 길이 아닌지도 모른 상태로, 앞에 차가 있는지 뒤에 차가 따라오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달렸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내가 볼 수 없는 것은 무한정 많이 존재합니다. 내가 알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것처럼, 알지도 못하는 데 아는 것처럼 살아간다면 정말 문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내가 확신하고 있는 것도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내가 보고 있는 것도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어쩌면 커다란 오류를 범할 확률을 줄일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와 같이 군대에서 사격을 했던 친구들 중의 한 명은 200m, 250m 실거리 사격에서도 거의 명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당연히 일등 사수가 되었고, 아마 나중에 사격을 잘했기 때문에 특별 휴가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당연히 안경을 쓰지 않았고, 시력도 정말 좋았기에 그 먼 실거리 사격의 표적지가 너무나 잘 보였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은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나의 한계를 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본인이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확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볼 수 있는 세상,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다른 어떤 가능성도 배제한 채 모든 판단과 결정을 해버리는 것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자신의 주장이 강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확신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자신의 세상에 갇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는 없지만 가까이 가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겠지요. 지금 모르고 있는 것도 나중에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올 때까지 섣불리 판단과 결정을 보류하기만 해도 커다란 오류를 범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 중 일부는 예전에 몰랐던 것이었고, 내가 지금 모르고 있는 것을 나중에는 알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더욱 노력한다면 그런 날을 앞당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 정태성(한신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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