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헌의 ‘아름다운 베르네川’

호우에 대비하여 베르네천의 출입을 통제하는 안내문
호우에 대비하여 베르네천의 출입을 통제하는 안내문

 

폭우가 지나간 베르네천에 쓰레기가 가득했다. 밤사이 내린 빗물이 흘러들면서 하천이 넘쳤다. 작동산과 지양산 사이의 까치울과 쥣골에 위치한 자연생태공원과 무릉도원수목원의 저지대로 모인 빗물이 하류인 베르네천으로 일시에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기 전, 시청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하천 출입을 통제하는 경고문을 여러 군데 붙여 안내하면서 출입금지가 인쇄된 테이프로 막아놓았다.

폭우에 떠내려온 나무토막과 식물의 줄기, 꺾인 나뭇가지와 삭정이가 산책로의 덱(deck)에 걸려 흉물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 버렸거나 방치한 스티로폼과 비닐, 플라스틱 재질의 페트병, 커피와 음료수를 담았던 용기가 멀리서도 눈에 잘 띄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거센 물살에 휩쓸린 쓰레기가 징검다리와 수초에 걸리고, 천변의 돌 틈과 산책로 옆의 풀 섶에도 수북이 쌓였다. 토사가 밀려들어 하천 바닥에 새로운 지형이 섬처럼 생기고, 볼썽사납게 쓰레기가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물 위에 가득 떠 있는 부유물 사이로 흰뺨검둥오리가 숨바꼭질하듯 헤엄쳤다. 잉어도 숨쉬기가 불편하고 바깥세상이 궁금했는지 수면 가까이 올라와 얼굴을 내밀었다. 다행히 하천을 관리하는 행정기관에서 수면 위에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과 주변에 쌓인 쓰레기를 재빨리 청소하여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런데도 풀 섶에 묻히거나 축대의 돌 틈에 끼어있는 작은 쓰레기가 눈에 띄었다. 주로 썩지 않는 비닐 재질의 용기와 빨대 등 자잘한 쓰레기가 많았다.

 

폭우에 떠밀려온 흙과 모래가 쌓인 퇴적물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폭우에 떠밀려온 흙과 모래가 쌓인 퇴적물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필자는 성곡사거리 주변에서 40년을 살았다. 자연스럽게 베르네천을 자주 찾는다. 아침 출근길에는 산책 삼아 베르네천을 걸어 까치울역에서 서울행 첫 전철을 탄다. 저녁 18시쯤 까치울역에서 내려 베르네천 수변 산책로를 걸어서 퇴근한다. 비가 내리는 날은 제법 색다른 운치를 느낄 수 있고 눈 내리는 풍경은 특히 아름다웠다. 계절의 변화를 읽고 감상에 젖다 보면 주변의 작은 변화까지 금방 알 수 있어 눈여겨본다. 낯익은 주민을 만나면 눈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사회병리 현상을 다루는 깨진 유리창 이론은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한다는 이론이다. 작은 무질서를 방치했다간 나중엔 지역 전체로 퍼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골목길에 누군가 쓰레기를 갖다버리면 지나가는 사람은 물론 주변에 사는 사람들까지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린다. 자칫 방심했다가는 한순간에 쓰레기 천국이 되고 만다.

 

하천에 생겨난 토사
하천에 생겨난 토사

 

환경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용어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플로깅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확산하였는데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이다. 스웨덴어로 줍다(플로카 업, plocka upp)’달리다(조가, jogga)’에서 이름을 따왔다. 걷거나 뛰면서 쓰레기를 줍고 담으며 건강을 챙기는 동시에 환경을 지키는 일로 플로깅’, ‘줍깅’, ‘쓰줍’, ‘쓰담등 여러 용어로 부른다. 신조어에 어색해하는 이들이 많아지자, 국립국어원은 플로깅을 대체할 순우리말로 쓰담 달리기를 제안했다. ‘쓰레기를 담아 달린다.’는 뜻도 있고, 쓰다듬는 동작을 표현하는 단어 쓰담처럼 지구를 보듬자는 의미도 담았다.

바다를 살리는 방법으로 여러 나라에서 권장하는 해변 쓰레기 샅샅(Beach Combing)이 줍기가 있다. 해변을 뜻하는 비치(beach)와 빗질이라는 코밍(combing)의 합성어로 바닷가로 떠밀려온 표류물과 쓰레기를 거두어 모으는 행위를 빗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바다 환경을 오염시키며 해양생물의 목숨을 위협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폐그물과 폐통발 등 버려진 어구와 쓰레기를 수거한다.

 

 

베르네천에 ‘EM(오염물질 분해 미생물) 흙공 던지기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시민 단체에서 수질 개선을 위해 정기적으로 하는 행사다. EM 흙공은 미생물 발효제와 발효액을 황토에 섞어 반죽하여 그늘에서 1~2주 정도 발효시킨다. 주재료인 EM 효소는 자연에 존재하는 많은 미생물 중 사람에게 유익한 80여 종을 조합·배양한 것으로 항산화력은 물론 자연 정화력과 소생력이 탁월해 자연 친화적으로 수질을 정화한다. 하천 바닥에 쌓인 진흙, 즉 오니(汚泥)층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폭우가 지나간 뒤, 퇴근길에 베르네천에서 집게로 쓰레기를 줍는 아주머니 한 분을 보았다. 50대쯤으로 한 손에 투명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손에 든 집게로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풀 섶과 축대의 틈바구니와 운동기구 주변 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버린 작은 쓰레기를 찾아서 봉투에 담았다. 담배꽁초는 물론, 플라스틱 재질의 음료수 용기와 빨대, 마스크 등 작은 쓰레기가 많았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은 채 땀을 흘리면서 묵묵히 쓰레기를 줍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날마다 산책하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라는 말이 시원하게 부는 산들바람보다 청량감을 느끼게 했다.

 

베르네천 구석구석을 묵묵히 청소하는 아주머니
베르네천 구석구석을 묵묵히 청소하는 아주머니

 

베르네천 주변에서 여러 단체와 학생들이 쓰레기 줍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일수록 쓰레기가 많이 버려져 있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시민의 손에 용변 담는 봉투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무심코 버린 쓰레기는 시민 의식이 실종된 탓이다. 시의회의 한 의원은 선출되기 전, 정기적으로 베르네천 주변에서 쓰레기 줍기를 몸소 실천했다. 천변의 곳곳에서 쓰레기를 줍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면 결국 세상이 바뀌게 된다. 줍는 것이 힘들지만 깨끗한 환경을 보면 마음조차 뿌듯하고 기분마저 상쾌하다.

많은 사람이 베르네천을 찾는다. 수도권 전철 7호선 까치울역 인근의 접근성 좋고 아름다운 하천이라는 소문을 듣고 단체로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 아름답다는 찬사를 할 때면 부천 시민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도심 가까이에 친환경적인 생태하천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쓰레기를 줍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버리지 않으면서 양을 줄이는 높은 시민의식이 필요한 때이다.

 

| 김태헌(수필가, 한국공무원문인협회 사무국장)

 

김태헌 수필가
김태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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