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YMCA ‘진단과 전망’ 2022년 8월 둘째주

진단과 전망의 원고를 의뢰받을 당시, 자기소개를 간략히 적어달라는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적으면 좋을까? 자기 자신을 간략히 소개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고민하다가, 이렇게 적었다.

통일문제에 관심을 두고 국제정치를 공부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실망해 국내 문제로 관심을 돌려 행정학도가 됐다.’

그렇다. 국제정치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필자에게 국제정치는 너무나도 멀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공부를 조금하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국제 정세를 예측하기 너무나 어려웠고, 이론과 설명은 사후적 해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필자의 우둔한 두뇌로는 공부할 수 없는 학문과 같이 느껴졌다.

행정학으로 전공을 변경하고 훨씬 공부가 재미있어졌다. 손에 잡히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고, 특히 불확실성이 적고, 예측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매우 좋았다. 정책이나 제도를 디자인해 보기도 하고, 실제로 연구를 통하여 제안한 제도가 현실 세계에서 적용되는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기도 하였다. ! 내가 쓸모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행정학을 공부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결과가 좋으니 다행이지만, 전공을 바꾸려고 했었던 만 22, 당시를 회고하면 필자에는 정체성 혼란의 시기였으며, 매우 고통스러운 고민이 함께 했던 시기이다.

8월 초, 현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는다. 새로운 정책과 비전에 희망을 담아, 정권이 교체되었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모토를 갖고 있었던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을 보다 공정한 사회로 변화시키고, 너무나 어려운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유능한 모습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불과 100일도 되지 않은 현 시점을 살펴보면 마치 정권 말기와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국제정치를 아주 조금 공부하고, 국내 행정을 공부한 필자에게는 만 22세 전공을 바꾸려고 했던 시기의 고민이 다시 찾아 왔다. 8월 초 대한민국의 모습이 꼭 정체성 혼란을 겪었던 필자의 모습 같다. 국제정치와 국내정치로 나누어 곰곰이 같이 생각해 보자.

국제정치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상존한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였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전쟁의 여파로 안 그래도 포스트 코로나19 시기 인플레이션이 확산되고 있었는데, 물가는 더욱 오르고, 경기는 침체되는 스테그플레이션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으며,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쏴대고 있고, 일본은 극우적 행태를 멈추지 않으며, 중국의 도발과 양안관계(중국-대만 관계)는 악화 일로이다.

균형적 외교를 추진하려고 노력하였던 전 정권과 달리, 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친미-반중을 외쳤으며, 미국 중심의 서방 군사협의체인 NATO 정상회담에서는 중국 견제 목소리에 함께 하였다. 이런 와중에 미국 하원의장인 팰로시는 의장단을 이끌고 양안문제의 당사자인 대만을 찾았고, 미중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반중 노선을 선명히 했던 현 대통령은 휴가를 핑계로 팰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았고, 외교적으로도 어떠한 입장을 선명히 밝히지도 못하였다.

과연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입장과 역할은 무엇인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진행된 NATO 정상회담에서 우리 대통령은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적 해결은 물론, 한반도 평화와 대결의 종식을 이끌어낼 수 있는 리더십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만한 역량이 되지 않았는지, 남은 것은 영부인의 패션 밖에 없다. 팰로시 의장이 방한하였을 때, 우리 대통령은 미국 의전 서열 3위의 실권자를 만나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대해 강조하고, 한국은 균형자 역할을 하면서 한반도 문제는 물론, 중국과의 관계, 일본과의 관계, 나아가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평화적이며, 협력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분명히 전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휴가 핑계밖에 없다.

불확실성이 너무나 큰 국제정치에서 예측 가능한, 그리고 명확한 전략의 수립이 불가능 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필자는 이러한 어려움을 감당할 수 없어 공부를 포기하였다. 결국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국가 이익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위치와 역할, 나아가 상대방의 이익과 전략을 헤아리고, 우리의 국익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대통령과 참모, 그리고 국회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빠르게 친미-반중을 외쳤고, 이런 와중에서도 동맹인 미국의 하원의장이 왔는데도 만나주지도 않으면서, 중국을 의식했다는 핑계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의 선거 캠프 대변인 출신의 국민의 힘 지역위원장은 대통령이 휴가 중인데 방문한 팰로시 의장이 무례하다고까지 이야기하였다. 과연 이들에게 국제정치적 감각이나 선진국으로 그 위상이 높아진 대한민국의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기 위한 노력은 하나?’ 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수(下手)도 이런 하수가 없다. 냉정한 국제정치 무대에서 속칭 호구 잡히기 아주 좋은 꼬락서니다.

국내정치에 있어서도 가장 핵심은 정책의 설계와 입법화, 집행의 과정을 민주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가져가는 것에 있다. 정책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는 바람직한 미래 상태 구현을 위하여 정부가 권위적으로 정한 방침’(정정길 교수)이다. 즉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개선 인식과 필요성이 정부로 하여금 현 상황에 변화를 가져가자는 것이 정책이다.

8월 초 현재 가장 뜨거운 정책 이슈는 5세 초등학교 입학문제이다. 과연 현재 교육의 문제 있어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이 바람직한 미래 상태 구현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고민하고 있었던 대한민국 사람이 있었을까? 교육문제는 너무나 복잡한 문제이다. 창의적이고 미래적인 교육보다는 경쟁적 입시에 매몰된 교육, 이로 인해 파생된 사교육 문제와 교육비 부담, 다양한 요인들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국 저출산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다. 어떠한 교육정책 한 방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 중의 난제, 그러나 반드시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사퇴의 변을 밝히는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사진출처 MBC)
사퇴의 변을 밝히는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사진출처 MBC)

 

이러한 중차대한 교육문제를, 깊은 고민의 흔적도 없이, 대통령이 장관을 만난 후, (누가 어떻게 이러한 논의를 했는지 알 수조차 없게) ‘5세 초등학교 입학정책을 발표하였다. ‘정책의 창(policy windows)’이란 정책학 이론이 있다. 정책이란 것이 형성될 때, 모든 사회적 이슈들이 정책화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문을 열어주어 정부로 들어오게 해야 정책과정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즉 정부를 창의 안쪽, 창의 밖을 사회라고 할 때, 사회적 다양한 이슈들이 안쪽 정부의 창을 통해 볼 수는 있지만, 창문이 열리지 않으면 정부로 들어 올 수 없다. 창을 열고 닫는 역할을 하는 행위자를 문지기(gate keeper)라고 하고, 문지기 역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하게 되느냐는 정책 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부천시의 담배자판기 조례는 부천시민들과 부천YMCA가 중심이 되어, ‘정책의 창을 열고 전국적으로 담배자판기를 없애는 정책적 성과를 거두었다. 과연 5세 초등학교 입학관련 정책의 창은 누가 어떻게 열게 된 것일까? 정책 형성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의견 청취와 연구수행, 정책담론 형성이 있었단 말인가? 교육부 장관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의 교수이며, 그야말로 행정의 달인이고, 정책과정과 정책이론에 대해서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과연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정책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장관의 해명이 자꾸 번복되고, 수습 과정이 꼬이는 것을 보았을 때, 장관이나 교육부 관료들 역시도 해당 이슈에 대하여 깊이 있게 성찰하였거나, 연구가 되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어느 권력자의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정책화되었다고 확신한다. 비단 5세 초등학교 입학정책만이 아니라, 현 정권의 주요한 정책 전반이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어떻게 정책과정이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게 추진되고 있다. 정책 역량도, 정무 감각도 없어 보여 매우 안타깝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직 정권이 출범한지 100일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00일이 되지 않았는데, 정부의 일처리가 이리 어리숙하고, 정신이 없는 것이 마치 1800년대 후반 근대 행정학이 태동할 당시 비판받던 미국의 엽관주의적 아마추어 정부 같아 보인다(이러한 것을 극복하려고 프로페셔널한, 역량있는 정부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근대 행정학이 형성되었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행정학개론 시간을 통하여, 행정은 공익을 제도화하는 것이고, ‘제도화라는 것은 불확실성의 제거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즉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이 불확실하게 불안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행복할 수 있도록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근대국가의 형성은 결국 중세적 운명주의적 세계관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합리의 시대로의 전환이었다.

우리가 선망하는 덴마크 핀란드와 같은 국가들은 불확실성이 적은 나라이다. 다만 국제적 수준에서는 힘의 차이가 있는 여러 행위자 국가들이 있으므로,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 있고, 불확실성의 수준이 더 높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국익과 세계 평화의 관점에서 균형적 역할을 해야 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역량을 갖춰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정치와 행정의 측면에서는 현재 문제가 되는 사회적 이슈들을 정책화하여 불확실성을 줄이고, 보다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취임 100일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확실성만 더욱 커져 있다.

다시 시작할 때이다. 대통령은 과감하게 인적 쇄신을 단행하고, 역량 있는 새로운 인재들을 공정하게 임명함으로써 국정의 전반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인적 쇄신 없이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과감히 사람을 바꿔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 정종원(부천YMCA 회원,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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