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헌의 ‘아름다운 베르네川’

늦마에 내린 집중호우로 베르네천이 초토화되었다. 물 폭탄이 휩쓴 상처가 처참해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늘 걷던 천변 산책길에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보는 것조차 마음 불편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집중호우로 내렸다. 80년 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라고 했다. 새삼 망연자실(茫然自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황당한 일을 당하거나 어찌할 줄을 몰라 정신이 나간 듯 멍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엉망진창이 된 베르네천을 보면서 망연자실했던 마음을 옮긴다.

지난 88일 기상청은 중부지방 날씨를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강하고 많은 비가 내리고 있는데요. 이 비는 모레까지 계속되겠고요. 비가 내리는 지역에서는 돌풍과 함께 천둥. 번개가 치는 곳도 있겠습니다.”라고 예보했다. 예보처럼 중부지방에 형성된 비구름대가 경기 북부, 서울과 경기 남부를 오르내리며 비를 퍼부었다. ‘물 폭탄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비를 쏟아냈다.

 

물 폭탄이 휩쓸고 간 베르네천 풍경. 쓰레기가 흉하게 걸려 있고 물에 잠겼던 흔적을 알 수 있다.
물 폭탄이 휩쓸고 간 베르네천 풍경. 쓰레기가 흉하게 걸려 있고 물에 잠겼던 흔적을 알 수 있다.

 

남쪽에 뜨거운 북태평양 고기압이 형성되고, 북서쪽에 차가운 고기압과 북동쪽에는 차가운 저기압 한랭전선이 형성되어 버티고 있다고 했다. 뜨거운 공기와 차가운 공기 사이의 정체전선이 집중호우가 내리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북태평양 고기압 주변 시계방향 흐름을 따라 유입되는 남쪽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와 북쪽 상층 저기압 주변 반시계 방향 흐름을 따라 유입되는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공기가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만나 띠 형태의 정체전선을 만들어 충돌하면서 폭우가 내린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먼 산이 가깝게 보이고 종소리가 평소보다 똑똑히 들리면 비가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이나 하수구 냄새가 심하게 나고, 잔잔한 연못이나 저수지에 거품이 나타나는 경우도 비가 내릴 징후로 판단했다. 아침에 노을이나 무지개가 보이고, 새털구름이나 양털구름이 나타나며, 밤하늘에 달과 별이 가깝게 보이거나 햇무리와 달무리가 지면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했다. 어른들은 몸이 무겁다거나 무릎관절이 쑤시면 비를 품은 매지구름이 다가오기 전에 배수로와 봇도랑, 논의 물꼬를 살펴 수해를 예방하는 등 슬기롭게 대처하며 피해를 줄였다.

지난 10일 서울 교대 전철역 14번 출구 100미터쯤에 있는 식당에서 문우들과 저녁 식사를 하였다.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저녁이 되자 후드득 제법 많이 내렸다.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더니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창밖을 내다보는데, 짧은 시간에 집중적인 폭우가 내려 도로에 빗물이 가득 차면서 냇가처럼 수위가 올라왔다. 전철을 타러 가는 데 우산을 썼는데도 옷과 신발이 물에라도 빠진 것처럼 흠뻑 젖었다.

전철은 만원이었다. 환승하여도 7호선 까치울역까지 1시간이면 충분했는데, 2시간이 걸렸다. 광명사거리역에 물이 차서 운행이 지연되었다. 온수역은 1호선 양방향 전철을 운행하지 못한다는 안내방송을 하였다. 뒷날, 잘 들어갔는지 안부를 묻자, 식사했던 식당도 침수되었다고 했다. 뉴스를 보는데 자드락비에 넋을 잃은 이재민의 하소연이 안타까웠다. 자연의 재해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의 나약함을 새삼 느꼈다.

 

밀려온 토사가 쌓여 산책로와 하천을 구별할 수 없다.
밀려온 토사가 쌓여 산책로와 하천을 구별할 수 없다.

 

베르네천의 상황이 궁금했다. 베르네천을 살펴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한마디로 초토화되어 엉망진창이었다.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산책로의 덱(deck)과 징검다리, 체육시설과 낙우송 등에 나뭇가지와 비닐 등 갖가지 쓰레기가 흉하게 걸려있었다. 일부 옹벽과 산책로로 내려가는 계단 옆이 무너지고, 밀려온 토사가 낮은 지대의 산책로 곳곳에 곤죽처럼 쌓여있었다. 하류 쪽에 댑싸리도 일부가 떠내려갔고, 남아있는 것도 오랫동안 물에 잠겨 죽은 모습이었다. 폭우 내리기 직전 제초작업을 하였는데 풀이 자랐던 곳이냐고 할 정도로 최악의 물난리였다.

 

심어놓은 댑싸리가 물에 잠겨 죽은 모습, 주변에 쓰레기가 가득하다.
심어놓은 댑싸리가 물에 잠겨 죽은 모습, 주변에 쓰레기가 가득하다.

 

베르네천이 범람하는 이유는 인간의 이기심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을 거슬렸기 때문이다. 작동산과 지양산 자락, 원미산과 춘덕산 자락, 밤골청소년수련관, 인근 주택단지에 내린 폭우가 하천으로 흘러든다. 하천이 넘치는 이유는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는 증거다. 베르네천은 원종동 일대를 거처 오정구청 앞을 지나 굴포천으로 흘러간다. 문제는 하천을 복개하여 폭이 좁아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행정기관에서 하천의 출입을 막는 그물과 테이프를 쳐서 시민의 안전을 도모했기에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며칠 동안 많은 비가 내려 땅이 물을 머금은 상태라 자칫 방심했다가는 큰 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폭우가 쓸고 내려온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모아놓은 모습
폭우가 쓸고 내려온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모아놓은 모습

 

이상기후 현상이 뉴스에 자주 오른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다가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쏟아내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가 뜬다. 장마 기간이 길고 집중호우가 빈번하다. 바닷물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하강하거나 상승하여 적조와 녹조현상을 유발하여 바다 생태계가 위협받는다. 우리나라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삼한사온이라고 배웠다. 지구온난화가 지속된다면 인류는 지구상에 더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후도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높아져 점점 아열대 기후로 변화해 간다. 아열대 기후의 대표적 현상은 스콜성 강수다. 장마철에 하루는 폭우가 쏟아지고, 하루는 햇볕이 쨍쨍한 징검다리식 폭우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지구온난화는 생태계 파괴와 우리의 생활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에너지 절약, 폐기물 재활용, 친환경 제품 사용, 신에너지 개발,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이다.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기록적인 물 폭탄이 쓸고 간 빈자리에 드러난 이기적인 민낯이 씁쓸했다. 예로부터 물이 흐르는 물길을 함부로 바꾸지 않았다. 도시개발로 물길이 사라지거나 새로 만들어졌다. 그럴싸한 정치적 구호보다 재발 방지를 위해 복개했던 부분을 파헤쳐 본래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돌려줘야 한다. 재해는 계속될 것이다. 복구된 베르네천을 산책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폐허로 변해버린 곳에서도 흰뺨검둥오리가 신이 났는지 자맥질한다. 함초롬히 피어나는 꽃을 보며 희망을 떠올린다.

 

| 김태헌(수필가, 한국공무원문인협회 사무국장)

 

김태헌 수필가
김태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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