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명화로 보는 색채심리’ 19

클로드 모네, '에트르타: 해변과 팔레스 다몽', 69.3x66.1cm, 캔버스에 유채, 1885
클로드 모네, '에트르타: 해변과 팔레스 다몽', 69.3x66.1cm, 캔버스에 유채, 1885

 

클로드 모네(1840~1926)의 풍경화 작품인 에트르타: 해변과 팔레스 다몽에 에메랄드그린 빛 바다가 신비롭다. ‘괴팍한 고슴도치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한 장소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똑같은 풍경을 수십 장씩 그리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모두 담지 못하는 자신의 실력에 자주 화를 냈다. 하지만 그는 작품을 찢거나 사물을 부수는 분풀이를 하면서도, 결국 수많은 명화를 그려냈다. 그에게 놀라운 창작의 힘을 불어넣었던 에메랄드그린(emerald green)에 관하여 알아본다.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모네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학교가 답답해서 틈만 나면 공책에 그림을 그리던 말썽꾸러기였지만, 인물의 특징을 잡아 그리는 캐리커처(풍자만화, caricature)에 뛰어난 소질이 있었다. 모네는 자신이 그린 캐리커처 전시회를 통해 풍경화가 외젠 부댕을 만났다. 자연을 사랑하고 풍경화 그리는 법을 배우며 빛은 곧 색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베르니에서 '오랑주리 미술관'에 기증할 수련을 그리는 모네
지베르니에서 '오랑주리 미술관'에 기증할 수련을 그리는 모네

 

22세에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모네는 가족의 반대를 물리치고 파리의 유명 아카데미에 등록하여 르누아르, 시슬리 등과 교류했다. 자연이 빛에 따라 순간순간 다르게 보이는 것을 색채로 표현하기 위해 짧은 붓 터치로 빠르게 그리는 기법도 터득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모네가 아카데믹한 미술을 하지 않는 것과 모델인 까미유와 결혼한 것에 실망하여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렸다. 빈곤으로 좌절한 모네는 센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모네는 1874년 제1회 앙데팡당전을 주최하며 작품 인상, 일출을 선보였다.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묘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인상만 대충 그린 인상파 전시회라고 신랄하게 비난하며 조롱했다. 혹평에 시달리고 그림도 팔리지 않아 궁핍한 생활로 많은 빚을 졌다.

 

클로드 모네. '인상, 일출', 48x63cm, 캔버스에 유채, 1872
클로드 모네. '인상, 일출', 48x63cm, 캔버스에 유채, 1872

 

에트르타(Étretat)는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노르망디 해안가의 작은 어촌마을이다. 수천 년 동안 바람과 파도에 깎인 석회암 절벽이 장관이다. 아치(arch) 형태로 웅장하게 늘어선 세 개의 절벽을 코끼리 절벽이라고 부른다. 아치 사이에 해발 70m로 뾰족하게 솟은 바늘구멍(the Needle) 절벽도 있다. 코끼리 절벽은 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이 그의 작품에서 물에 코를 담그고 앉아있는 코끼리와 같다고 해서 붙인 애칭이다.

 

클로드 모네,  '에트르타 절벽', 81x65cm, 캔버스에 유채, 1885
클로드 모네, '에트르타 절벽', 81x65cm, 캔버스에 유채, 1885

 

에트르타는 영감에 목마른 예술가에게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모파상은 부모의 별거로 힘든 사춘기를 보낸 이곳을 무대로 1883년 소설 여자의 일생을 발표했다. 1866년 모파상은 잡지 질 브라<풍경 화가의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모네에 관한 글을 기고하며 친분을 맺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는 모네에게 이 신비한 장소를 추천했다.

1883년부터 1886년까지 모네는 에트르타의 환상적인 풍경에 사로잡혀 화구를 들고 매년 이곳을 찾았다. 그는 하얀 몽돌(조약돌)로 뒤덮인 해변에서 시간과 날씨의 변화로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인상을 화폭에 담기 위해 애를 썼다. 동트는 새벽부터 노을이 물드는 저녁까지 에트르타연작을 3년 동안 무려 51점이나 그렸다.

필자는 모네의 연작 중에서 에트르타: 해변과 팔레스 다몽(Étretat: The beach and The Falaise d'Amont)의 사진액자를 책상에 두고 자주 본다. 작품 속의 에메랄드그린 바다 빛깔을 바라볼 때마다 황홀하다. 해변에는 여러 척의 고깃배가 흩어져 있다. 찬란한 햇빛을 받은 팔레스 다몽의 기암괴석은 밝은 갈색과 오렌지색으로 붓질했고, 그늘진 곳에는 어두운 회색을 칠한 후 굵고 진한 초록색 선을 덧그려 강한 명암대비를 이뤘다. 절벽의 질감이 우둘투둘하게 느껴진다.

 

클로드 모네. '에트르타 절벽', 81x65cm, 캔버스에 유채, 1885
클로드 모네. '에트르타 절벽', 81x65cm, 캔버스에 유채, 1885

 

1883년 모네는 그림의 모티브를 찾기 위해 노르망디 지역을 거닐다가 사과꽃이 핀 작은 마을 지베르니(Giverny)의 풍경에 매혹되어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림으로 부를 쌓을 때마다 지베르니의 정원을 넓혀가며 연못을 파고 수련을 심으며 정원 가꾸기에 애정을 바쳤다.

전성기를 누리던 그는 의사에게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1908년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었고 절망할 사이도 없이 연달아 아내와 큰아들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깊은 우울증에 빠진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에메랄드그린으로 가득한 정원이었다. 힘을 얻은 그는 불굴의 의지로 대형작품인 수련연작을 그렸다. 이 걸작품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그렸는데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이 소장하고 전시한다. 1926,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향년 86세로 눈을 감았다.

 

클로드 모네. '생트 아드레스 해변의 보트 경주', 75.2x101.6cm, 캔버스에 유채, 1867
클로드 모네. '생트 아드레스 해변의 보트 경주', 75.2x101.6cm, 캔버스에 유채, 1867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했던 보석 에메랄드는 고대 그리스어로 녹색 보석(samaragdos)’이라는 뜻이다. 영원한 생명을 믿은 고대 이집트인들은 에메랄드가 심신과 영혼까지 진정시켜주는 불멸의 힘을 지녔다고 믿었다.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여 미라와 함께 관에 넣기도 했다. 측백나무의 일종인 에메랄드그린은 왕족의 묘지에 심는 나무다. 무덤 속의 시신에 생기는 벌레를 죽이고 잎과 씨는 지혈과 진정제로 사용한다.

파라다이스와 번영의 의미를 담은 그린컬러는 이슬람의 상징색이라는 이유로 12세기 전후 서양에서 악마와 독극물과 마녀를 뜻하는 색으로 변질됐다. 유럽은 오랜 십자군 전쟁으로 이슬람과 이 컬러를 혐오하게 되었다.

1775년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셀레는 비소를 연구하던 중에 초록색을 발견했다. 산업으로까지 발전하여 물감과 벽지뿐만 아니라 음식의 색소에도 사용하며 유럽에 선풍적인 에메랄드그린 바람을 일으켰다. 당시에 이 색상의 벽지로 신생아 방을 꾸미는 것이 크게 유행했는데, 이상하게도 아기의 사망률이 높았다. 1882년 독일은 살충제나 쥐약으로 쓰이는 비소가 들어있는 이 안료의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2007년 이탈리아 국립 핵물리학 연구진은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에서 오늘날 평균보다 약 100배 이상 많은 비소 수치가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의 저택은 온통 축축한 에메랄드그린 벽지로 장식되어 있었다.

 

세인트헬레나 섬 나폴레옹의 저택(나무위키)
세인트헬레나 섬 나폴레옹의 저택(나무위키)

 

1939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주디 갈란트가 청아한 목소리로 ‘Over the rainbow~’를 부르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미국의 캔자스에 사는 시골 소녀 도로시가 토네이도에 휩쓸려 오즈라는 마법의 나라로 들어간다. 에메랄드 시티는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곳이다. 영화는, 간절한 소망은 에메랄드 캐슬(castle, 성채)과 마법사 때문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 자기를 깨닫고 성장하면서 얻는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젊음과 성장과 희망을 상징하는 에메랄드그린은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환경과 자연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 경제 상황이 좋아진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화려한 색이 유행하는 이유는 적은 비용으로도 신선함과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매혹적인 보석을 연상시키는 에메랄드그린으로 주변을 꾸며보자.

에메랄드그린에서 나오는 에너지 파장은 마음과 관련이 있다. 이 색상에 나도 모르게 끌린다면 우리 마음이 균형과 배려를 원하며 인간관계에 중심을 잡고 싶다는 뜻이다. 모네에게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은 에메랄드그린을 가까이에 두고 바라보자. 마음이 진정되고 어려움을 이기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 김애란(화가, 미술 심리 강사)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