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성 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니체의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권력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행동한다.”라는 주장에 어떤 이들은 비판하지만, 그의 인간 내면에의 탐구는 박수받기에 마땅합니다.

약육강식의 원리는 동물의 세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인간의 세계에서도 그 원리는 적용되어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에게 있어 힘 있는 자는 많은 것을 얻었고 힘없는 자는 굴욕적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태양의 강렬한 햇빛이 내리쪼이는 한 여름, 어떤 노동도 하지 않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가만히 있어도 경제적인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땡볕에서 힘든 일을 해도 하루 먹고 살아가는 것이 힘에 부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세상은 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정의롭지도 않습니다. 공정한 사회도 아닙니다.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슬픈 현실입니다.

영원한 약자로 살 수는 없습니다.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한 채 강한 자에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힘을 길러야 합니다. 내가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지 못하는 한 나의 존재는 참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강한 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강자가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당한 것만큼 내가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나와 같은 약자를 내가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강자가 되어야 합니다. 약자에게 함부로 하지 않고 그를 배려할 줄 아는 그러한 강자가 되어야 합니다.

 

 

강자는 싸우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항상 약자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강자가 된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확신하여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싸움을 시작하여 약자를 짓밟습니다. 하지만 그의 앞길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자아도취에 빠진 결과며 오만의 극치입니다.

약자도 강자를 이기려 하는 것보다는 자신부터 이겨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는 자는 약자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에 영원히 강자에게 굴욕을 당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나 자신을 이겨야 진정한 강자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강한 자를 비판할 시간이 있다면 나 자신이 스스로 강한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나 자신이 나를 넘어서는 순간 강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진정한 약자는 현재에 안주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내가 시도하는 모든 것이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것을 노력하다 보면 그중에 하나는 나의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 강자와 약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은 헛된 망상에 불과합니다. 그런 일은 인류가 멸망하는 날까지 도래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회를 꿈꾸며 그것이 현실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는 하겠지만, 어느 정도까지만 가능할 뿐입니다. 완전한 그런 사회의 도래를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유아기적 사고에 불과합니다. 인간 자체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잊었기에 그러한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진정한 강자로의 길을 권장하고, 약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라도 한다면, 솔직하게 인간의 참모습을 지적한 니체처럼 박수라도 받을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자존심 밟혀가며 나를 주장하지도 못했던 힘든 상태에서 살아왔던 그 순간들이 언젠가는 추억의 순간이 되는 날이 곧 올 것입니다. 그렇게 어제를 살아왔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기에 햇살처럼 밝고 환한 날들이 곧 오리라 믿습니다.

바라건대 약자를 배려해 주는 진정한 강자가 많은 사회, 스스로를 약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우리 사회가 그러한 사회로 거듭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 정태성(한신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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