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의 설립과 활동 19

일제는 1930년 이후 우리나라를 넘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변국을 침략합니다. 1931918일에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그 이듬해인 19323월에 만주국을 세웠으며 그 이후에는 중국 본토로 진격하여 19377월에는 상해사변을 일으켜 1945년 폐망할 때까지 중일전쟁을 진행합니다. 194112월에는 방향을 바꿔 태평양을 넘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일련의 전쟁으로 부족한 인적, 물적, 자금을 보충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강제동원정책을 실시합니다.


1.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이란 일제가 아시아태평양전쟁(1931-1945)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권력에 의해 제국영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적·물적·자금 동원 정책을 의미한다.

2. 한국 현행법[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서 강제동원 피해는 만주사변(1931.9.18.) 이후 태평양전쟁(1941.12.8.)에 이르는 시기에 일제에 의하여 강제동원되어 군인·군무원·노무자·위안부 등의 생활을 강요당한 자가 입은 생명·신체·재산 등의 피해’[특별법 제2조 제1]로 규정되어 있다.

3.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위원회결과 보고에 따르면 강제동원의 피해 유형은 크게 군인, 군무원, 노무자, 위안부로 나눌 수 있다.

군인 : 지원병과 징병

군무원 : 군노무자와 기타군요원(문관, 운전수, 간호부, 포로감시원)

노무자 : 군수공장·군공사장·토목건축 현장·석탄 광산·금속광산·항만 운수시설 및 집단 농장

위안부 : 일본군위안부와 노무위안부(혹은 기업위안부)

출처 :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홈페이지


소사국방의회, 삼일 발회식 거행

 

일제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따라 부천에 있는 일본인들과 일제에 적극 협력한 조력자에 의해 많은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사람들, 후원하는 사람들과 단체들, 전쟁에 나갈 지원병을 모집하는 사람들, 전쟁에서 전사한 사람을 위문하는 사람들 등 다양합니다.

장영한 부천군수(8, 1937.11 ~1942.6)1939125일 인천경찰서장과 함께 소사북소학교에 가서 면내 청년단원 50명을 소집하고 그 자리에서 10명의 지원자를 받습니다. 일황을 위해 목숨 바쳐 나가라고 선동하며 청년들을 설득해 전쟁터로 내몰았습니다. 이윤세 군수(9, 1942.6 ~1943.3, 일본명 리노이에)19428월 군 애국 부를 방문하고 7만 원을 헌납하여 육군기를 기부하였습니다. ‘부천군민애국기로 명명된 이 비행기는 육군기 260번째라고 하며, 해군무관부에도 위문금으로 9천 원을 헌납하였습니다.

 

부천군민 애국기, 금일, 군애국부에 헌납
부천군민 애국기, 금일, 군애국부에 헌납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은 가슴 아픈 사연도 있습니다. 이인석 상등병은 중국과의 전쟁에서 전사하였는데, 부천명덕회에서는 영전에 향전으로 10원을 보내기로 결정하였으며, 관공서와 각 마을연맹에서는 조위금으로 3670전을 보냈다고 합니다.

중국과의 전쟁 승리를 기원하고 후원하는 행사들도 진행이 됩니다. 19377월에는 소사신사에서 황군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는 무운기원제가 진행되었으며, 8월에는 군사후원회가 열렸습니다.

이외에도 전쟁을 준비하는 소사국방의회, 소사방공단, 소사오정방공단, 소사여자청년단부천청년단, 소사면애국반장대회, 부천군 지주보국회, 대일본부인회 소사읍지국 등 다양한 단체가 결성되었습니다.

 

고 이인석 군에 소사면서 조위금
고 이인석 군에 소사면서 조위금

 

|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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