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엔 10살 이하의 20~30명의 남녀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었고, 첫날 아이들과 서너 시간 함께 지내다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다시 일정을 잡았습니다. 두 번째 갈 때는 비록 약소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과자도 사고 학용품도 준비해 갔었습니다. 가지고 간 것들을 하나씩 아이들 손에 쥐여줬을 때,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정말 고마워하던 아이들의 진실된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을 지금도 좋아합니다. 처음 보았을 때 마음 깊이 와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웬만해서는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지는 않는데, 이 영화는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윌 헌팅(Will Hungting)은 주인공 이름입니다. 영화에서 윌은 수학 천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보스턴 빈민가에서 살고 있었고, 그가 하는 일은 세계 최고 공과대학인 MIT에서 청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에서 MIT 수학과 제럴드 랭보 교수는 강의실 복도 칠판에 어려운 수학 문제를 내놓고 학생들에게 그것을 풀어 보라고 합니다. 사실 그 문제는 학부생들이 풀기에는 어려운 난제였습니다. 랭보 교수의 강의를 듣던 많은 학생들 중에서 그 문제를 풀어낸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MIT를 다니던 학생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였으니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짐작이 갈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랭보 교수는 누군가 그 문제를 풀어낸 사실을 알고는 강의 시간에 그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누군지 물었지만, 수강생 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중에야 비로소 윌이 그 문제를 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랭보 교수가 윌을 테스트해 본 결과 필즈상을 받은 자신보다 윌이 훨씬 더 수학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랭보 교수는 윌의 수학적 재능을 펼쳐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윌은 이를 거부합니다. 사실 윌에게는 어릴 적 커다란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는 친부모에게 버림을 받았고, 입양이 되어 양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무려 네 번의 파양을 겪어야 했습니다. 윌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했고, 천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정규교육마저 받지 못했습니다.

랭보 교수는 윌의 재능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그의 내면에 있는 커다란 상처부터 치유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친구인 숀(로빈 윌리암스)에게 윌을 부탁합니다.

숀은 윌의 멘토로서 함께 대화하던 중, 윌의 가장 아픈 상처는 단지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향한 미움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윌은 스스로 자신은 저주받은 존재이고,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존재이기에 친부모나 양부모가 자신을 버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윌은 끔찍할 정도로 자신을 혐오했고 그것이 그의 내면세계를 파괴했으며 윌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숀은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윌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 친구도 더 이상 다가오지 않도록 거짓말을 하고,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 깊이 들어오는 것을 가로막았습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자신을 입양해서 키운 부모도 자기를 버렸기에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는 윌에게 숀은 조용히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숀은 윌에게 “너에게 일어난 그 모든 끔찍한 일들은 결코 네 잘못이 아니기에 그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라고 몇 번이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힘주어 말합니다.

숀이 이러한 말을 윌에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숀 또한 윌에 못지않은 커다란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윌은 그 사실을 알고 숀의 진실된 마음을 받아들여 그동안 쌓였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하며 숀에게 안겨 펑펑 울어버립니다.

봇물 터지는 것과 같은 윌의 감정은 그의 커다란 트라우마를 치유되게 만들었습니다. 윌은 마침내 그 모든 고통은 자기 탓이며, 자신은 결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에 친부모나 양부모에게 학대받고 버려지고 미움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과 화해를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진정한 화해가 그의 커다란 상처를 치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윌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다치게 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숀의 커다란 아픔이 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타인이 아무리 나에게 커다란 아픔과 상처를 주더라도 내가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윌은 어떠한 일이 자신에게 다가오더라도 이제는 모두 극복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윌(Will)’은 인생의 커다란 장애물을 이겨내고 ‘굿 윌(Good Will)’로 다시 태어납니다.

윌은 숀을 크게 끌어안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합니다. 지나온 모든 아픔과 작별을 하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 친구와 함께 새롭게 길을 나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버리고 힘들게 하고 고통을 주고 아픔과 상처를 준다고 하더라고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타인이 나에게 행했던 모든 나쁜 것들은 그냥 땅에 묻어버리든가 쓰레기통에 버리든가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를 원망할 필요도 탓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 이상 그러한 것들이 내 소중한 인생의 발목을 잡지 않게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 누구의 인생보다 내 자신의 삶이 가장 중요하기에 자신에 대한 혐오를 할 필요도 없고, 삶이나 운명에 대해 원망하지도 말고, 새로운 날들을 바라보고 더 나은 삶을 희망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나의 아픔을 스스로 이겨내려고 할 때 더 이상의 상처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를 떨쳐버린 윌에게는 밝은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예전에 제가 봉사활동 했었던 그 보육원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그 아이들도 모두 월처럼 아픔을 극복하고 살아가고 있기를 기도합니다.

글 | 정태성(한신대학교 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