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어느날 한통의 전화가 왔다. 학창시절 날마다 학생회관 3층 미술대학 학생회장실에서 문 잠그고 김밥 먹고 술 마시던 친구였다. 나는 그 무렵 대학원을 졸업하고 성산동 후미진 차고에서 전업 작가(백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부천(심곡본동)에서 살면서 통학을 했던 그 친구는 술마시고 늦어지게 되면 내 자취방에서 무료 숙식을 많이 했는데,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할 일 없으면 부천으로 놀러나 오라고 했다. 노느니 이 잡는다는 옛말도 있듯이 하는 일도 없는데 딱히 안 갈 이유가 없어 전철을 타고 부천역에 도착하여 약속 장소인 자유시장으로 갔다.

친구는 술 좋아하고 착해 보이는 40대 남자하고 같이 있었다. 가볍게 인사하고 합석 한 후 술이 몇 잔 돌아가고 통성명을 하니 그 40대 남자는 부천의 B대학교 교수였다. 친구는 대학원 졸업하고 백수 생활을 하는 내게 대학 시간강사 자리라도 챙겨주려는 생각으로 부탁의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술자리는 하염없이 길어졌고 술 하면 부천에서 몇몇을 제외하고 손가락에 들 정도의 주량과 다방면의 넓고 얇은 박식함이 그 교수님 눈에 들었는지 다음 학기부터 B대학에 출강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부천 생활은 시작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1991, 중동 개발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나는 B대학교 외래교수를 스스로 그만 둘 때까지 무려 9년을 근무했는데 그 교수님과의 인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부천 미술협회 야간 지부장이라는 별칭이 있던 그 교수님은 가난한 부천 작가들에게 밤이면 밤마다 술을 사 주시던 두꺼비(진로?) 같은 분이었다.

 

중동신도시가 들어서기 전 중동 벌판
중동신도시가 들어서기 전 중동 벌판

 

| 최의열(화가, 부천시의회의원)

 

최의열 의원
최의열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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