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의 설립과 활동 21

일제는 대한제국을 1910년 강제 병합하면서 식민 지배를 원활하게 하고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펴는데 그중 하나가 교육정책입니다. 일제는 민족의식 고취를 막기 위해 민족말살정책을 폈으며 교육의 기회도 줄였습니다. 1919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독립 의지가 강한 것을 확인한 일제는 전보다 유연한 교육정책을 시행하였는데 그로 인해 학교 설립이 약간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 계남면 심곡리에 소사공립보통학교(素砂公立普通學校)가 세워졌습니다. 현재의 부천역 남부에 위치한 소사공립보통학교(소사공보)를 통해 그 당시 생활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설립 허가와 준공

조선총독부관보
조선총독부관보

소사공립보통학교는 1924(대정 13) 510일에 부천군 계남면 심곡리에 설립 허가가 납니다. 이러한 내용은 <조선총독부관보>(대정 1366, 3543)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해 101일 공사를 시작하여 11월 말 또는 12월에 준공이 되어 2달 정도 소요되었으며, 공사비는 총 일만 삼천팔백오십 원(13,850)으로 도지방보조금 5천 원과 면내 유지의 기부금 8,800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학생들은 계남면을 중심으로 소래면, 오정면, 부내면 일부의 학생 420명 정도 수용되었으며, 운영은 1천 원의 보조를 받고 나머지는 학생들의 수업료로 충당되었습니다. (동아일보, 매일신보 1924118)

1925년 당시 부천군 내 공립보통학교는 총 5곳이 있었는데 학교 명단은 부천공립보통학교(부천군 문학면), 소래공립보통학교(부천군 소래면), 영종공립보통학교(부천군 영종면), 대부공립보통학교(부천군 대부면), 소사공립보통학교(부천군 계남면)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소사공립보통학교가 우리 부천시 관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천공립보통학교는 부천이 붙어 부천 관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천시 문학에 위치하였습니다.

소사공립보통학교의 학생 수 증가와 이전 증개축

소사공립보통학교는 경인선 소사역 인근에 위치한 관계로 1930년대 급속히 발전하면서 학생 수가 증가하게 됩니다. 이에 늘어나는 학생을 수용하지 못함에 따라 교실을 증축하기 위해 면장 원영상은 유력자들을 모아 증급기성회를 창립하였으며 도()에도 진정을 냈습니다. 최병희는 즉석에서 천원을 기부하였습니다. (매일신보 1936119)

1935210일 소사공보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오전 11시에 진행하였으며 기념아동관을 건설 기증하기로 하였습니다. (동아일보 193526)

1937년에는 조종리(朝宗理), 지금의 원미동에 14개 교실을 지어 이전하기로 합니다. (매일신보 1937424)

19378, 이전 증개축을 위한 기부금을 모금했는데 기부자 명단과 금액은 다음과 같습니다. “천원(千圓) 박주순(朴周淳), 천원(千圓) 최병희(崔炳熙), 오백원(五百圓) 이성환(李聖煥), 삼백원(三百圓) 이필하(李弼夏), 삼백원(三百圓) 수등정웅(須藤定雄), 이백원(二百圓) 원인상(元仁常)”(동아일보 1937811)

 

소사공보증축 기부금 답지
소사공보증축 기부금 답지

 

소사공립보통학교에서 진행된 행사

소사공립보통학교에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행사를 통해 그 당시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민회(富民會) 조직

심곡리는 경인선 소사역 인근에 위치하여 농산물이 풍부하고 과일의 생산이 적합할 뿐만 아니라 부업도 상당히 보급되어 근검 저축의 미풍을 양성하고 자타의 구별이 없는 일대 모범촌을 건설하기 위해’ 61일 오후 8시부터 소사공보 교실에 백여 명이 부민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시대일보 1926.6.4.)

부천군 8개교 연합 운동회

613일 소사공보 운동장에서 부천군내 8 공보 및 소학교가 연합 운동회를 개최했는데 관중이 1만여 명이 되어 소사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시대일보 1926615)

부평수리조합 문제로 관계지주회

부평수리조합은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1923(대정 12) 공사를 시작하여 1925(대정 14) 준공한 것으로 부천군의 계남면, 계양면, 부내면, 오정면, 김포군의 고촌면 양서면 등에 농업용수를 공급하였습니다. 하지만 건설 초기부터 부실 공사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해 지주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중외일보 1927826)

품평회와 풍년무(豊年舞)

114~5일 양일간 졸업생과 재학생의 1개년간의 근로 교육으로 생산된 곡물, 야채, 과일, 양계 등의 품평회를 개최하였습니다. 4일에는 학부형들이 참관하였고, 5일에는 오후 2시부터 여학생들의 풍년무와 시식회 그리고 경매가 이루어졌습니다. (매일신보 1933118)

 

여생도의 풍년무- 소사보교의 품평회 성황(사진은 풍년무)
여생도의 풍년무- 소사보교의 품평회 성황(사진은 풍년무)

 

|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장)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