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명화로 보는 색채심리’ 21

금수저로 태어났던 화가가 영양실조로 죽어가며 남긴 작품이 천문학적인 가격을 호가한다.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민화가다. 브라운 색깔(brown, 갈색)을 듬뿍 바른 힘찬 붓 터치의 작품 황소에 민족의 기백이 솟구친다. 이 작품에 매료된 말단 영업사원이 굴지의 사업을 일으키고 진품을 소유한 사연이 있다.

1916년 이중섭은 평안남도 평원군의 부유한 가정에서 2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민족교육을 강조한 오산학교에 입학하였다. 조선 화풍을 강조한 미국 예일대 출신의 미술선생 임용련(1901~?)의 영향으로 그림에 한글로 사인했다. 조선의 기개를 품은 소에 관심을 가졌다. 백정과 소도둑보다 소를 많이 봤다는 이중섭은 종일 소를 가까이서 보고 그리다가 소도둑으로 몰려 경찰에 붙잡혀가기도 했다. 소의 강인함과 성실함은 그의 희망과 힘이 되었다.

 

화가 이중섭(1916~1956)
화가 이중섭(1916~1956)

 

1936년 원산에서 백화점을 열어 크게 성공한 형의 도움으로 일본의 분카가쿠인학원(文化學院)에서 미술을 전공하였다.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1921~2022)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1945년 한국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세 아들을 두었지만, 태어난 지 1년도 안 되어 첫째 아이를 디프테리아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그의 가족은 공산화된 북한에서 자본가라는 이유로 반동분자로 낙인이 찍혀 모진 수난을 겪었다. 1950년 한국 전쟁 때 빈털터리로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왔다. 부산 판자촌에 살다가 조카가 있는 제주도로 내려가 서귀포의 초가집 귀퉁이 방에서 험난한 피난살이를 하며 11개월간 머물렀다. 영양실조에 걸린 가족이 게를 잡고 해초를 뜯으면서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전쟁으로 그림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그는 담뱃갑의 은박지를 주워서 못으로 형상을 그렸다. 그 그림이 바로 유명한 은지화(銀紙畵).

 

이중섭, '게와 아이들', 1950년대, 8.5x15.5cm
이중섭, '게와 아이들', 1950년대, 8.5x15.5cm
이중섭, 두아이, 1950년대, 8.8x15.5
이중섭, 두아이, 1950년대, 8.8x15.5

 

1952년 장인의 부고 소식이 들렸다. 폐결핵과 각혈로 건강이 심각했던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기 싫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병든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행을 선택했다. 당시, 한일 간 국교 단절로 이중섭은 여권을 만들 수 없었다. 19537, 오산학교 때부터 친했던 시인 구상(1919~2004)’의 도움으로 대한해운공사 선원증을 얻었다. 일주일 동안 일본 히로시마 여관방에서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그에게 마지막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공예가 유강렬의 도움으로 통영에 온 이중섭은 가족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 시리즈를 그렸다. 소는 그의 분신과도 같았다. 역동성 넘치는 빠른 붓질로 갈색 물감을 두툼하게 발라 역경을 이겨낸 우리 민족의 우직한 끈기와 힘찬 민족정신을 소로 표현했다.

 

이중섭, 황소, 1953. 32.3x49.5.
이중섭, 황소, 1953. 32.3x49.5.

 

부산의 부두에서 막노동을 전전하면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1955년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회는 성공적이었으나 그림값을 받지 못해 여전히 궁핍함을 벗어날 수 없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절망적인 미래에 몸부림쳤다. 뼈저린 가난과 막막한 현실을 술로 달래며 간염과 영양실조, 거식증과 조현병으로 점점 지쳐갔다. 1956년 결국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가족도 없이 쓸쓸히 눈을 감았고 무연고자로 3일 동안 방치되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도착한 구상은 향년 41세로 요절한 그의 장례를 치르며 안타까워했다.

 

이중섭, '황소', 1953, 종이에 유채,  35.5 ×52cm, 서울미술관
이중섭, '황소', 1953, 종이에 유채, 35.5 ×52cm, 서울미술관

 

2005316일 일본 국적의 이중섭 차남 이태성이 서울옥션1950년대 아버지의 미발표 유작이라고 주장하는 8점을 판매 의뢰해 그중 4점이 554백만 원에 낙찰되었으나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위작이라고 하자, 차남은 관계자를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다. 검찰은 작품을 모두 압수하여 국제미술과학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고, 과학적인 감정 결과, 그림에 사용한 물감과 종이가 1960년대 이후 것이라고 발표했다. 위작은 모두 폐기되었고, 이태성은 '기소유예'를 받아 한국 입국이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

작품 황소에 얽힌 기막힌 사연이 있다. 제약회사 유니온 약품을 설립한 안병광 회장(1957~)의 이야기다. 그는 처음 벌인 사업에서 불량품 제조로 망하여, 월세 3만 원의 단칸방에 살면서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수줍은 성격으로 약을 팔지 못해서 판매실적이 늘 꼴찌였다. 1983년 쏟아지는 폭우를 피하려고 약 가방을 안고 액자 가게로 몸을 피했다. 진열대에서 본 인쇄한 그림 속 황소에서 불을 뿜는 듯한 대범한 기운을 느꼈다. 수중에 있는 7천 원을 탈탈 털어 그림을 덜컥 샀다. 진품은 고래등 같은 집 한 채 값이란 인사동 미술품 거래상의 말에, ‘황소처럼 일해서 성공하면 진품을 사서 외양간(미술관)을 짓겠다는 꿈을 품었다. 꿈을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니던 그는 4년 만에 여의도 시범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웃에 이중섭의 절친 구상이 살았다. 그에게 이중섭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작품 황소에 대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제약 유통업을 하면서 여유가 생길 때마다 이중섭 작품을 사들였다.

 

이중섭, '흰소', 1954, 30x41.7cm. 홍익대학교박물관
이중섭, '흰소', 1954, 30x41.7cm. 홍익대학교박물관

 

2010629일 오매불망 기다리던 황소진품이 옥션에 나왔다. 이 걸작품은 세금을 포함하여 약 38억 원이나 했다. 꿈을 가진지 30년 만에 진품을 손에 넣었다. 안 회장은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나아가는 우리 민족의 끈기와 기운이 담긴 이중섭의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세웠다.

브라운 컬러는 자연의 색상이다. 흙과 나무처럼 오랫동안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 편안하고 중후한 느낌을 준다. 갓 구워낸 구수한 빵과 맛깔스러운 튀김 요리가 생각나게 하는 미각의 색깔이다. 클래식한 고급스러움으로 아늑한 공간의 인테리어에 잘 어울린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검은색보다 브라운 계열의 의상을 입으면 차분하고 포용력 있으며 점잖은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다.

안정적이고 곧은 성향의 사람들은 브라운 컬러를 좋아한다. 정이 많고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며, 도리에 어긋나거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찾는 색이다. 성실하고 헌신적이며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편이지만, 이 색상만 고집하면 답답하고 개성이 약해 보인다. 이럴 때는 돋보이는 컬러로 포인트를 주면 좋다.

브라운 색상을 피하는 사람은 보수적이고 수수하며 엄격한 편이다. 예외적으로 어린이가 그림에 브라운을 많이 사용한다면, 양육자에게 어떤 아픔이 있다는 뜻이므로 잘 살펴줄 필요가 있다.

브라운 색상의 심리를 반영한 브랜드가 전 세계 MZ 세대를 매혹하고 있다. 라인프렌즈의 곰을 형상화한 브라운캐릭터다. 2011,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스티커 캐릭터로 탄생한 라인프렌즈는 글로벌 인기 아티스트 방탄소년단과 함께 만든 ‘BT21’, 인기 모바일 게임 IP ‘브롤스타즈카트라이더까지, K 캐릭터로 세계를 홀리고 있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브라운캐릭터는 묵직하고 차분하며 헌신적인 이미지를 가진 브라운 컬러를 캐릭터에 잘 녹여냈다.

브라운 컬러에는 역경을 이겨내고 늠름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담겨있다. 뜻을 향하여 인내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면 느리더라도 원하는 것에 닿는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정신을 품고 있다. 20234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 가을에 일상에서 벗어나 명화를 관람해보자. 지친 삶에 꿈과 힘찬 에너지를 얻을 것이다.

 

| 김애란(화가, 미술 심리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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