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의 설립과 활동 22

1925년 당시 부천군에는 부천공립보통학교(부천군 문학면), 소래공립보통학교(부천군 소래면), 영종공립보통학교(부천군 영종면), 대부공립보통학교(부천군 대부면), 소사공립보통학교(부천군 계남면 심곡리) 5곳의 공립보통학교가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인구수가 적다고 하더라도 학교의 수가 학생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31년이 돼서야 오정면 원종리(遠宗里)에 오정공립보통학교가 세워집니다.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79- 설립인가 소화 6(1931) 916, 개교 예정 소화 6111]

그렇다면 오정공립보통학교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학연기성회조직(學延期成會組織)

오정면에서 교육기관으로는 오로지 오정공립보통학교 하나밖에 없는데 4학년제 2학급으로 운영되어 매년 4학년을 마치는 학생들과 입학을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학생들의 70%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없고 하소연할 데도 없었습니다. 오정면민들은 학급 증설과 학년 연장을 요구하였으며 이를 위해 19351018일 면 회의실에서 면장 변영모 씨 사회 하에 기성회를 조직하고 경비 각출 방법에 대해 의논하였습니다. (19351025일 동아일보)

1937년에는 지원자가 136명인데 수용 능력은 30명 내외밖에 되지 않아 학부형들과 면민들은 학년 연장과 학급 증설을 요구하였습니다. (1937315일 조선신문)

 

애국일 행사

소사 오정 공립보통학교에서 193796일 오후 2시부터 애국일 행사가 이루어졌는데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93799일 조선신문 )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을 만들기 위한 일제의 교육행태를 알 수 있습니다.

1. 일동 경례

2. 개회말씀(사쿠라기 교장)

3. 국가합창

4. 국민정신 고취를 위한 글 봉독

5. 시국에 관한 담화 (사쿠라기 교장, 변 면장)

6. 황군무운장구 기원

7. 황후 요배(참배)

8. 폐회식

 

스토오사다오(須藤定雄)

이런 상황에서 한다(반전) 농장 지배인인 스토오사다오는 학년 연장, 학급 증설 촉진 기성회에 부응하고, 4학년 졸업생을 구제하기 위해 개설된 5, 6학년 강습소 경비를 지원하기 위해 100원을 기부하였습니다. (1937421일 조선신보) 우리 조선 학생들을 위해 기부를 한 것 같지만 스토오사다오의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토오사다오는 193010월 부천군 계남면 중리 3-1에 설립되어 농림업의 경영 및 부대사업을 한 한다농장의 지배인으로 그리고 1936년 부천군 소사면 심곡리 609에 설립되어 가축.비료.상업 등의 자금융통과 농산물 위탁판매등을 한 소사계리(素砂計理) 중역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소사축산시장 개설 당시 평의원

소사역 부근이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축산시장이 개설되었는데 스토오사다오는 여기에 평의원으로 참여합니다. 조합장은 도회의원인 신부정웅(神部正雄)이 그리고 이사는 원인상(元仁常)씨가 맡았습니다.(193517일 조선신보)

 

군사후원연맹 결성 당시 평의원

193789일 오전 10시 부천군회의실에서 <부천군 군사후원연맹 결성식>이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허섭부천군수가 회장으로 취임하였으며 한다농장 대표인 신부정웅(神部正雄)은 주임으로 그리고 스토오사다오는 평의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1937813일 조선신보)

 

소사오정방공단 결성 참여

19381029일 소사소학교 강당에서 소사오정방공단 결성식이 진행되어 황거요배, 국가 합창, 만세삼창 등이 이루어진 후 소사신사에 가서 참배를 했는데 스토오사다오는 고문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소사지주회 회장 참여

1940926일 오전10, 지주회가 결성됐는데 여기에 스토오사다오는 회장으로 참여합니다. 지주회는 이날 회의를 통해 영농법 개선, 자급비료증산, 각종시설조성, 우량소작인표창 등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재향군인소사분회장 : 지원병 소사신사 참배와 환영식

일제는 중일전쟁을 비롯한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지원병을 모집하였는데 부천군에서 특별지원병이 선발되었습니다. 대부면의 이승업(李承業), 소래면의 안병희(安炳熙) 그리고 오정면의 박승순(朴承順)이었습니다. 재향군인소사분회장인 스토오사다오의 안내로 이들 지원병들은 소사신사에 참배하고 오후 419분 관민과 학생 천 명의 환송 속에서 경성으로 출발했습니다. (19401215일 조선신보 지원병)

 

지원병 소사신사 참배
지원병 소사신사 참배

 

부천청년단개조결성

194177일 지나사변 4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부천청년단 개조결성식을 진행하였습니다. 3천여 명의 단원이 참석하여 거행된 이날 행사에서 단장은 부천군수 안동영한(8대군수 장영한)이 맡았으며 스토오사다오는 고문을 맡았습니다. (1941710일 조선신보) 일제는 청년단을 침략전쟁의 자원으로 활용하였기에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역사입니다.

 

|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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