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우리나라 5000년 역사의 축소판으로 많이 일컬어집니다. 강화도가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작으나 신석기의 고인돌부터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마니산(摩尼山) 참성단, 고려시대에 몽골에 대항하여 수도를 천도한 고령궁지, 조선시대에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설치한 규장각(奎章閣), 조선후기 개항을 겪으며 일어난 운요호사건, 병인양요, 신미양요 유적까지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습니다. 근대에 와서는 국내 최초의 한옥성당인 성공회 강화성당, 천주교 박해의 현장인 갑곶순교지, 한국전쟁 당시 국가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학살 등 종교와 전쟁의 가슴 아픈 역사 또한 품고 있습니다. 어떠한 주제로 강화도를 답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강화도의 느낌은 달라집니다.

민주평통 부천시협의회(협의회장 정인조)에서는 지난 1022일 토요일 자문위원과 시민 30여 명이 참여하는 평화기행을 연미정, 평화전망대, 망향대로 다녀왔습니다. 이번 평화기행의 해설은 이영동 ()민화협상임집행위원장님께서 해주셨습니다.

 

 

첫 번째 답사지는 연미정(燕尾亭)이었습니다.

서해에서 인천으로 흐르는 물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고 하여 정자 이름이 연미정인데 이곳은 예부터 월곶진(月串鎭)이 있었습니다. 연미정 앞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으로 이곳을 통해 중국 또는 삼남 지방으로 갈 수 있어서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또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연미정을 품고 있는 월곶진은 많은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연미정 아래에 황형(黃衡) 장군(1459~1520) 집터가 있습니다. 황형 장군은 1510(중종 5)에 일어난 삼포왜란과 1512(중종 7) 함경도에서 일어난 여진족 반란을 진압한 장군이었습니다. 그 공으로 왕으로부터 이곳을 하사받았으며 만년을 여기에서 보내셨습니다.

 

 

연미정은 조선 인조 5(1627) 정묘호란 시 청국과 강화조약(講和條約)을 체결한 곳으로 치욕의 역사현장이기도 합니다. 변화하는 동아시아의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몰락해가는 명나라에 사대하고 새롭게 등장한 청나라를 무시한 결과 청나라의 침입을 받게 되었습니다. 연미정 앞에는 유도(留島)라는 섬이 있습니다. 남북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 이 섬은 뱀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무인도다 보니 철새와 야생동물의 천국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특히 뱀이 많다고 합니다. 1997년 북한에 발생한 홍수로 황소 한 마리가 떠내려왔고 이를 인지한 우리 당국은 군인들을 동원하여 구출하였습니다. 서울신문에 의하면 이 황소를 평화의 소로 이름을 지었고, 제주도 우도 출신 암컷 소를 통일 염원의 소로 이름을 지어 결혼시켰다고 합니다. 그 결과 199811평화통일의 소를 낳았고 그 후로 많은 자손이 번성하여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서울신문 제목-20년 전 북한서 떠내려온 황소자손 100여 마리 남기고 떠난 사연. 2016.1.3.)

2년 전에는 북한이탈주민이 우리나라에 적응하지 못하고 월곶진을 통해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답사지는 강화평화전망대였습니다.

말 그대로 전망대라 북한을 가장 가깝고 크게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거리는 1.8km밖에 되지 않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개풍군과 배천군을 흐르는 예성강과 북한 식량의 30%를 담당하는 연백평야, 개성의 송악산과 개성공단 등과 북한 주민들까지 볼 수 있습니다. 이영동 강사님께서는 70여 년간 배가 다니지 못하고 준설이 되지 않아 모래톱이 형성되어 있어 수로가 막혀있는 상황이라 추후 남북관계가 호전되면 모래 준설을 통해 경제협력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전망대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오면 망배단(望拜壇)이 있습니다. 실향민들께서 북한을 바라보시며 단체로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우리 부천시민이 방문한 때 연세가 많으신 실향민들께서 제사를 마치시고 음복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희에게 따뜻한 말씀으로 음복하실 사람들은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음식은 나누어 먹는 전통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평화전망대를 해설하시는 강사님의 말씀으로는 휴전 70년 가까이 되다 보니 실향민들이 모두 연로하셔서 근래에 들어 방문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눈앞의 고향을 두고 평생을 가슴에 한을 품고 계시는 분들이 한 번만이라도 고향을 방문하기를 바라봅니다.

 

 

오전 답사를 마무리하고 점심은 교동으로 넘어와서 대룡시장에서 했습니다. 여기의 특산음식인 젓국 갈비였습니다. 고려시대 때 천도를 하여 왕을 위해 강화의 특산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강화도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 되었습니다. 특히 대룡시장은 12일 팀이 방문한 이후로 유명해져서 주말에는 식당이 예약을 받지 않을 정도로 관광객이 많아졌습니다. 이영동 강사님께서는 개발로 인해 옛 정취가 사라지고 현대화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교동 인구의 70%는 북한에서 내려오신 실향민들로 대룡시장은 그 특유의 색깔이 있었는데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동 또한 옛 정취가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답사지는 망향대(望鄕臺)였습니다.

망향대는 실향민 중 특히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 출신 분들이 모여 망배비, 망배제단, 협찬자 안내석을 만드신 곳입니다. 이곳에서 연안읍의 진산인 비봉산을 비롯해 남산, 남대지 등 연백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직선거리로 불과 3km밖에 안 되기에 실향민들에게는 희망보다는 아픔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이 망향대가 1988년에 완성되었으므로 휴전 이후 35년간 고향을 그리워했던 분들의 간절한 마음이 모인 곳인데 이러한 간절한 마음이 평화를 여는 마음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부천에서 오전 830분에 출발하여 시작한 강화도 평화기행은 망향대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육지의 접경지역과 다르게 강화도는 강을 두고 북한을 접하고 있어 남북을 잇는 다리를 하나 놓으면 70여 년간 단절된 숨통이 한순간에 확 트일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듭니다. 대결로 인한 전쟁의 공포가 아닌 협력을 통한 평화의 시대를 강화도에서 열어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 좋겠습니다.

 

| 박종선(민주평통 부천시협의회 간사)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