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올봄에 제가 동네 꽃집에서 바질 모종을 샀습니다. 화분에는 세 개의 모가 심어있었는데, 화분에 옮겨 심으면서 깜박하고 첫 화분은 모종을 그냥 통째로 심어 버렸습니다. ‘아차하고 두 번째는 똑같은 화분이지만 간격을 조금씩 띄워서 심었습니다. 그런데 두 개의 화분이 자라는 게 확연히 달랐습니다. 다시 간격을 띄워서 심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포기나누기를 하지 않은 화분이 점점 비실비실해지길래 다시 심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른쪽 화분은 두 번 정도 잎을 따서 바질페스토를 만들어 먹고, 지금도 잎이 꽤 무성하고 꽃도 피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포기나누기를 하지 않은 바질은 한 포기는 시들어서 뽑아버리고, 두 포기 남았는데, 결국 자라지도 못하고 꽃도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은 식물도 적절한 환경과 돌봄이 제공되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데, 사람은 어떠할까 생각해보니 많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개인적 혹은 사회적인 다양한 사유로 인하여 자신을 잘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압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마음도 아픈 경우가 많고,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은 대부분 질병과 함께합니다. 거기에 빈곤도 함께 나란히 친구 하게 됩니다.

196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 로제토 마을 이야기입니다. 1800년대 후반 이탈리아 로제토마을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펜실베이니아에 마을을 형성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미국 LA에 한인타운을 만들고, 중국인들은 가는 곳마다 차이나타운을 만드는 것과 같은 모습일 겁니다.

오클라호마대학의 의과대학 교수이며 의사였던 울프 교수는 로제토 마을에서는 55세 이하의 사람들은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도 없고, 심장병의 흔적조차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했지만, 45년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마을 공동체였습니다. 겨우 2,000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로제토 마을에는 낚시와 사냥클럽, 독서 모임, 스포츠 모임 등 마을 사람들 단체 모임이 22개나 되었습니다.

로제토 마을 사람들의 삶은 즐거웠고, 활기가 넘쳤으며 꾸밈이 없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비슷하게 행동했습니다. 로제토 마을은 계층이 없는 소박한 사회였으며, 따뜻하고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였으며 서로를 도와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진정한 가난은 없었습니다. 이웃들이 빈곤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으며, 특히 이탈리아에서 이주해 오는 소수 이민자들에게 그러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와 똑같은 마을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부러워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펜실베이니아 로제토 마을(사진출처 한겨레신문)
펜실베이니아 로제토 마을(사진출처 한겨레신문)

 

로제토 마을 이야기가 집단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면,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건강과 관계는 동의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79년간 종단연구를 해서 나온 결론이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건강하고 오래 산다였다고 합니다. 1938년부터 724명의 인생을 추적해보니,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겁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79년씩이나 연구했다고 하니, 과학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자세가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사회복지 관련 상담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내담자들의 공통적 감정은 외로움이며, 그들은 소화가 잘 안되고 항상 두통에 시달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 다양한 신체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마음속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저도 많은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혼자여서는 안 된다는 것, ‘함께, 같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요즘의 제 생각인데요, 79년간의 연구 결과와도 같은 맥락입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가훈을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이제는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단어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워낙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생겨나기도 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낳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말은 나이와 관계없이 혼자 사는 사람들,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젊고 건강할 때야 혼자 살고 싶다는 것이 로망이기도 하지만, 몸이 아파지거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로망이 실망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아플 때 가장 좋은 것은 가족이 나를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런 일이 모두에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나를 돌보아 줄 가족이 별로 없다면, 이웃이라도 함께 한다면 좋은 일이 될 겁니다. 그런데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지금은 집안마다 90세 이상의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계신다는 말이 그다지 낯설지 않은 시대이지요. 하지만 해방 시기인 1945년에도 평균수명은 35세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영아 사망률이 높고, 영양결핍이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등의 생활 수준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0년 전만 해도 부모님 환갑잔치, 칠순 잔치가 흔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노인의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는 거의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장수 노인들은 집에 계시기보다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오랫동안 수명만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것은 건강보험공단이 매우 큰 금액을 부담하고 있으며, 국민의 부담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건강보험 재정도 중요하고 돌봄 가족의 어려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존엄한 노후를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수명을 늘려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년기의 사회활동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노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이며, 외로움은 우울감을 동반하고 치매로 이어집니다. 친구를 만나고, 취미활동을 하고 여력이 되면, 나보다 더 힘든 노인을 조금이라도 돕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노화 방지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고, 인지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든다면, 가장 좋은 노인복지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어야 할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 이영주(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부천시장기요양요원지원센터장)

이영주 이사장
이영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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