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반포 576돌 기념 특별 (가상) 대담

한민족의 자랑이자 세계 문자사(文字史)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한글이 반포 576돌을 맞았다. 오늘날 한글은 다른 어떤 문자보다 많은 소리를 적을 수 있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배우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점 때문에 세계인의 찬사를 받고 있지만, 한글의 이런 성장과 발전이 있기까지는 그 이면에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조선 중종 때 언어학자 최세진은 어린이 한자학습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를 저술하여 한글의 보급과 현대 맞춤법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 책에서 자음의 배열 순서를 훈민정음,,,,,가 아니라 오늘날과 같은 ,,,,,,,으로 변경하였으며, 모음의 순서도 오늘날처럼 ,,,,,,,,.로 정했다. 또 각 자음이 초성에 쓰였을 때의 음가와 종성에 쓰였을 때의 음가를 가지고 其役(기역)’, ‘尼隱(니은)’, ‘池末(디귿)’, ‘梨乙(리을)’, ‘眉音(미음)’, ‘非邑(비읍)’, ‘時衣(시옷)’, ‘異凝(이응)’과 같은 명칭을 만들었다. 이는 글자의 이름을 외우다 보면 저절로 그 글자의 용법을 알게 하는 교육 방법으로 스승을 갖기 어려운 일반 언중들이 스스로 언문을 배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최세진만의 탁월한 발상이었다.

훈몽자회(訓蒙字會)는 조선 중종 22년(1527)에 어문학자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어린이용 한자 학습서이다. 한자 3,360자에 훈민정음으로 뜻과 음을 달았다. (출처 나무위키)
훈몽자회(訓蒙字會)는 조선 중종 22년(1527)에 어문학자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어린이용 한자 학습서이다. 한자 3,360자에 훈민정음으로 뜻과 음을 달았다. (출처 나무위키)

 

개화기 때 서재필은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국민이 한글을 공용 문자로 인식하고 사용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어와 한글 표기법 연구가 이루어지는 데에도 큰 공헌을 했다.

주시경은 <독립신문> 제작에 참여하면서 국어 문법과 한글 표기법 연구에 힘썼을 뿐만 아니라, 서재필의 국민 계몽 운동을 지원하면서 한글 전용, 한글 띄어쓰기, 쉬운 국어 쓰기를 실천했다. 그는 언문, 반절, 암클, 부엌글 등의 이름으로 천대받던 우리 문자에 한글이라는 자랑스러운 명칭을 부여했으며, 190912, 그가 제출한 <국문연구의정안>1933년 제정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기초가 되었다.

이 밖에도 한글 기계화와 정보화의 초석을 놓은 공병우,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창안하여 시각장애인 교육에 헌신한 박두성, 1940년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 광산 김씨 긍구당(肯構堂) 종택 서고에서 발견한 훈민정음해례본을 당시 기와집 열 채 값인 1만 원을 주고 구입한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 등은 모두 한글 발전을 논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인물들이다.

 

‘훈민정음’(국보 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은 ‘훈민정음해례본’이라고도 하며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다. 간송박물관 소장.
‘훈민정음’(국보 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은 ‘훈민정음해례본’이라고도 하며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다. 간송박물관 소장.

 

특히 전형필이 구입한 훈민정음해례본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한글 창제의 원리를 밝혀주었을 뿐만 아니라 20087, 경북 상주에서 동일한 판본이 발견되기까지 전 세계에 단 한 권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책으로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되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화재가 되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세종이 쓴 어제 서문(御製序文)과 예의(例義), 그리고 신하들이 쓴 제자해(制字解), 초성해(初聲解), 중성해(中聲解), 종성해(終聲解), 합자해(合字解), 용자례(用字例), 정인지(鄭麟趾)의 서()로 구성되어 있다.

훈민정음 언해본에는 제자(制字) 원리와 방법, 새로 만든 글자의 특성 등을 설명한 제자해(制字解)가 실려있지 않았기 때문에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글의 창제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난무했다.

500부 정도 인쇄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훈민정음해례본은 한동안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 그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이에 따라 한글 창제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난무했는데 정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는 그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세속에 전하기를 장헌대왕[세종대왕]이 일찍이 변소에서 막대기를 가지고 배열해 보다가 문득 깨닫고 성삼문(成三問) 등에게 명하여 창제하였다고 한다.”라는 허무맹랑한 설을 기록할 정도였다.

하지만 1940년에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면서 이런 억측은 모두 사라지고 한글이 당시 최고 수준의 언어학, 음성학적 지식과 철학적인 이론이 적용되어 창제된 문자임이 밝혀졌다.

 

세종대왕 표준영정. 1973년 김기창 화백이 그린 것이다. (출처 위키백과)
세종대왕 표준영정. 1973년 김기창 화백이 그린 것이다. (출처 위키백과)

 

콩나물신문 더 피플은 한글이 반포 576돌을 맞이하여 지난 2009년부터 광화문 광장에 머물고 계신 세종대왕을 만나봤다.

안녕하세요! 콩나물신문 더 피플입니다. 콩나물신문은 인권, 환경, 생명, 여성, 복지 등 우리 사회의 취약한 부분들을 개선하여 더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언론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언어학자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4,000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하는 데 반해 사용되고 있는 문자 수는 채 50개가 안 된다고 합니다. 한글은 그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문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소감 부탁드립니다.

한글이 뛰어난 문자라는 평가를 받는다니 기분은 좋습니다. 하지만 자만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글은 지금 사용되고 있는 문자 중 가장 늦게 만들어진 만큼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에 축적된 모든 언어학적 지식이 총동원됐으니까요.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리를 적을 수 있는 문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완벽한 문자는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한글로 적을 수 없는 소리도 많이 있습니다.

한글의 우수성은 기본적으로 우리말의 표기 수단으로서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과 창제 당시의 언어학 수준을 최대로 반영했다는 점 정도이지 그것이 다른 문자에 비해 우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언어는 단지 문화의 산물일 뿐, 문화에 우열이 없듯이 문자의 우열을 가리는 것 또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글이 우수하다는 표현은 삼가는 게 좋겠습니다.

 

최근 10년 사이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 남태평양의 솔로몬제도 원주민, 볼리비아의 아이마라족 등을 대상으로 한 한글 세계화 프로젝트가 시도되고 있습니다. 한글 세계화에 대한 세종대왕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는 민족을 위해 한글을 보급하자는 주장은 비록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신중해야 합니다. 세계 모든 나라는 각국의 공용 문자가 있는데 아무리 소수민족이라 하더라도 자국의 문자를 버리고 타국의 문자를 사용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한 소수민족이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공용 문자로 사용하겠다고 한다면 중국 정부에서 이를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겁니다. 당장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비화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마찰이 일어나겠지요.

한글 세계화 프로젝트는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자칫 문화제국주의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다만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한국 드라마, 영화, 음악, 음식 등과 함께 세계는 지금 한국어 열풍에 휩싸여있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한국어를 더 아름답고 풍부하게 가꿀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109일 한글날은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범국민적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기념일이지만 동시에 우리말인 한국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실천하고 촉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7,700만여 명이며 전 세계 언어 중 모어 사용자 수에 따른 한국어의 순위는 14위에 해당합니다.

한국어가 이렇듯 국제적인 언어로 자리매김 한 만큼 우리에게는 모어인 한국어를 더 잘 가꾸고 보전해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제주도, 강릉시 등 몇몇 지자체에서 지역어 보존·육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방언 보전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합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살아있던 전라도, 경상도 등 각 지역 방언들이 표준어 교육과 미디어의 영향으로 빠르게 소멸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말의 기저를 이루는 지역 방언이 사라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말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간다는 반증 아닐까요사투리가 살아야 우리말이 삽니다. 사투리는 우리말을 풍부하게 하는 언어생태계의 보고입니다.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종대왕상. 2009년에 김영원 홍익대 교수가 설계하고 박상규 공간 미술 대표가 제작했다.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종대왕상. 2009년에 김영원 홍익대 교수가 설계하고 박상규 공간 미술 대표가 제작했다.

 

,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한글이 비록 우수한 문자이기는 하지만 문자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씀, 또 한글 세계화가 문화제국주의로 둔갑해서는 안 되며 우리말의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 사투리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끝으로 이번에 창립 9주년을 맞는 콩나물신문을 위해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콩나물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식재료로 무침이나 찜, 국물 등 각종 콩나물요리는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음식문화입니다. 뜨끈한 콩나물 국물은 추위를 물리치고 감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며, 어린 콩나물을 말린 대두황건(大豆黃蹇)은 우황청심환의 원료로도 사용됩니다. 가정에서 쉽게 기를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하여 자주 식탁에 오르니 콩나물이야말로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식재료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품이 올곧아서 부정한 것을 가까이 하지 않고 오로지 맑은 물만 먹고 삽니다.

콩나물신문도 이와 같아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사람과 두루 친하며, 사회에 유익하고 부정을 멀리하는 맑고 깨끗한 신문이 되길 바랍니다.

 

  • 글 / 이종헌(편집위원장)
온유 이주희 글씨/그림
온유 이주희 글씨/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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