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다. 청한 적도 없건만 제멋대로 들어와 어퍼컷을 날리고 한 자리 떡하니 차지한 거추장스러운 놈이다. 허락 없이 무단 침입한 그를 내쫓기엔 이미 늦었다. 원치 않아도 괴로운 동거를 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고 보니 방심하고 살아온 날들이 후회된다. 지금보다 관계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다독이는 중이다. 섭생을 즐기는 나지만 불편한 손님이 달가워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없앨 수도 없으니 다독이며 공존할 수밖에. 녹록지 않은 내 콩팥의 일상이다.

생긴 모양이 강낭콩처럼 생겼다고 콩팥이란다. 몸속의 노폐물을 처리하고 생체 항상성을 유지하면서, 체내 수분량과 전해질 산성도를 조절해주는 기관이다. 콩팥의 기능이 심하게 저하되면,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다. 생명을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뚜렷한 통증이나 증상도 없어 인지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콩에는 식물성 단백질이 많아 몸에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콩의 텁텁함을 싫어했다. 정월대보름에 먹는 오곡 찰밥에 들어있는 콩과 팥조차 골라내고 먹을 정도였다. 콩찰떡은 물론이고 시루떡의 팥도 모두 걷어내고 먹어야 하는 별스러운 식성을 가졌다. 콩과 팥을 싫어해서 콩팥에 문제가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몸의 장기는 어느 한 부분이라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각각의 기관이 하는 일이 다르고 기능도 다르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양소가 부족하면 신호를 보내어 부족함을 알린다. 통증 없는 신호는 무시되기 일쑤다. 아직 젊으니까, 설마 내게? 하는 안일한 호기를 부리면서.

언니가 쓰러져서 입원했다는 연락이 왔다. 평소 우리 자매 중에 건강을 제일 자부하던 언니여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언니는 부도 위기에 몰린 회사를 수습하느라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몸에서 오는 신호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생기는 현상쯤으로 가볍게 여겼다. 위기에 위기가 겹친 순간 찾아온 언니의 병은 치료받을 새도 없이 급성으로 치달았다. 일상생활이 엉키고 정신을 잃고서야 심각함을 깨달은 셈이다. 급성으로 찾아온 신장염은 투석으로 이어지고 하루걸러 병원 신세를 지면서 삶에 대한 의지마저 약해져 가고 있었다. 호흡곤란이 오는 횟수가 잦아지고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증세도 점점 악화하였고, 뒤이어 큰 수술로 이어졌다.

젊은데? 무지해서?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너무 쉽게 생각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살아갈 날이 많은 딸이 쓰러졌다는 소식은 팔순 노모의 가슴을 후벼 팠다. 딸을 살려주고 대신 당신의 목숨을 가져가라시며 눈물로 밤샘 기도를 하시던 어머니, 병간호를 자처하신 어머님의 희생에 언니의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파고드는 그놈의 에너지에 언니는 매일 매일이 전쟁 중이다. 건강할 때의 입맛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입이 반기지 않아 음식 냄새도 역겹단다. 가끔 메스꺼움이 일어 헛구역질을 해대고 근육도 경련을 자주 일으켰다. 얼굴도 기미 주근깨가 덮여 오더니 호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런 자기 모습이 보기 싫다며 방안의 거울도 모두 치우고 외출하기도 꺼린다. 종일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먹는 것이 부실하고 운동을 하지 않으니 몸을 일으키려 해도 기운을 차릴 수가 없단다. 머리카락도 한 움큼씩 빠진다며 머리빗을 버리고 모자를 썼다. 면역력이 떨어져 축 늘어져 있는 언니를 보며 나는 덜컥 겁이 나서 마음을 다잡았다. 큰 병을 앓는 이가 없다가 언니의 지병은 우리 가족 전체의 삶에 변화를 주었다. 자연에서 나는 귀한 약재를 찾아 수소문하게 되고 건강검진에다 건강 불안증까지 생겼다.

나는 언니와 같은 질병을 앓고 있기에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 손과 발이 부어오르고 주먹도 쥐어지지 않는다. 하루의 일과처럼 주먹을 쥐어보면서 건강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가족의 지병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건강검진을 했다가 역시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빨리 발견했다는 거다. 언제 들어왔는지 나의 몸에 조용히 자리를 하고 있는 불청객. 언니와 똑같은 상황이 되었다. 일찍 발견하고 스트레스가 덜했던 나는 잘 다독이면 현상 유지는 가능하단다. 원하지 않는 동거지만 서로 거슬리지 않게 함께 가야 한다.

생활이 달라졌다. 건강해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에 건강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운동도 시작했고 일도 줄였다.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 몸에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따지며 좋아하는 토마토, 수박과 참외 등도 삼가고 적당히 먹어야 한다. 먹는 즐거움을 빼앗긴 기분은 영 떨떠름하다. 먹을 수 있는 종류도 한정되어 있고 조리하는 방법도 번거롭고 까다롭다. 채소도 데치거나 물에 담가 칼륨을 제거하고 먹어야 한다. 원하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먹고 마실 수는 없어도 그 불청객에게 지기는 싫다. 나의 일상도 예전 같지 않다. 피로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휴식에 들어간다. 그놈에게 지지 않으려는 나의 자구책이자 처방전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소홀히 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중이다.

 

글 ㅣ전해미 (수필가. 2016년 부천신인문학상에 수필 갯벌당선. 한국문인협회, 부천문인협회, 에세이문예, 부천여성문학회 회원.)

 

전해미 수필가
전해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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