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YMCA 「진단과 전망」

이태원 참사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9월 필자는 진단과 전망에서 집권의 이유를 묻고 싶다란 글을 기고하였다. 해당 글에서 필자는 현 정권이 과연 무엇을 위하여 집권하였는지 가늠이 되지 않으며, 그리고 참으로 어려운 정세 속에서 국가를 어떻게 운영하면 좋은지에 대한 방향 설정이 없고, 국정 철학이 부재된 상황에 대하여 지적하였다. 함께 공정과 상식이라는 수사(rhetoric)에서 벗어나 정책과 입법을 통해 집권의 이유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 정권이 새롭게 들어서면 정권의 비전과 국정 철학을 밝히고, 집권 초기 강력하게 국정 과제를 추진하게 된다. 집권 6개월 도무지 무엇을 하였는지, 그리고 집권 초기의 강력한 국정 과제 추진의 모습이 있었는지, 보다 새로운 비전과 국정 철학을 밝힌 적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비전과 국정 철학 부재는 이태원 참사라는 비극을 낳고 말았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분석이 나오지만 한 마디로 행정 부재가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국정과제 65번은 선진화된 재난안전 관리체계 구축으로 "일상이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수십만 명, 백만 명 이상이 모인 행사가 한 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고, ‘2002년 월드컵을 시작으로 지난 달에는 백만 명 인파가 모인 여의도 불꽃 축제까지 수없이 많은 대형 행사들을 사고 없이 치러지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대규모 인파 관리는 매우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현장에는 대규모 인파를 관리하는 행정력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행정력 부재의 상황 속에서 시민들의 신고와 사고 접수가 공식적으로 이루어 졌음에도 적절한 대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참사에 대응해야 하는 리더십 역시도 부재한 상황이었다는 점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참사 수습 과정에서도 대통령이나 장관, 정부·지차체 고위직들이 인파를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등, 경찰이 투입되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는 등, 주최가 없어 행정력이 동원될 수 없다는 등, 축제가 아니라 현상에어서 법적 책임 없다는 등, 책임 회피성 발언들은 국민적 울분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태원 참사의 최종적 책임자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은 경찰의 무능에 격노하면서, 경찰을 질타하였다고 보도가 나왔는데, 과연 참사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느끼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행정 부재에 대해 반성하고, 그리고 사죄해야 할 주체는 바로 정권이고, 대통령 자신이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체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란 책에서 "기성 정당이 정권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정권을 잡기위한 기회주의, 혹은 판단착오로 인해 집권을 해서는 안되는 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 대표적 인물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며,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인물들이 집권을 하게 될 때, 오랫동안 축적되고 쌓아온 상호관용과 이해,’ ‘자제,’ ‘균형과 견제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대결과 반목, 이념의 극단화로 인해 민주주의가 침식된다고 우려를 표한다. 이러한 상황은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기대를 허물어 뜨리며, 결국 사회의 후퇴, 역사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트럼프 집권은 불과 4년이었지만, 마치 40년 전으로 후퇴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한때 위대했던 미국의 민주주의는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극우적인 인물을 총리로 선출한 영국은 45일 만에 환율 급등과 경제적 위험 증대로, 그 총리와 내각의 사퇴를 경험하였다. 이탈리아 역시 극우주의자가 총리에 임명되었다. 이탈리아의 앞날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은 입법 경험도, 행정 경험도 없는 검사 출신이다. 현 여당에는 입법 경험과 행정 경험이 풍부한 후보들이 여럿 있었음에도, 정권을 잡기 위해 전 정권에 가장 강력히 저항한 정치 신인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 전 정권의 실정에 강력한 피로감을 느낀 국민은 야당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어찌하겠는가.... 이 모든 것이 국민의 선택이고, 국민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인 것을....

대통령과 정권의, 아니 우리 모두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을 촉구한다.

 

| 정종원(부천YMCA회원,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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