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칼럼

더 나은 삶과 행복은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더 나은 삶과 행복을 위해 갖춰져야 하는 것 중 한 가지는 좋은 일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먹고 사는 것 앞에 무엇이 있을까?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정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하겠지만 흔히들 말하는 좋은 일자리는 정말 갖기 힘들다. 우리가 입시비리, 채용비리에 분노하는 이유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과의 평등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회는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기회만 열려 있을 뿐이다. 시험 응시 자격, 채용 지원 자격 등에서의 차별은 없어 적어도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과정에서의 차이는 어떻게 드러날까?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대학생들의 취업준비 과정에서의 차이다. 대학에서부터는 대다수 학생이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하게 되는데 이때 경제적 여건은 불평등을 심화하는 큰 요인이다. 취업준비에는 기본적으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대학 등록금, 생활비가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취업에 필요한 각종 스펙을 갖추기 위해 학원비, 교재비, 응시료 등의 비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에 충분한 공부시간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학업과 취업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취업시장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경쟁은 이와 더불어 더욱 치열해지는데 먹고 살아야 하는 고민부터 해야 하는 대학생들은 학업보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돈벌이부터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대학생의 노동은 어떨까? 공고에 올라와 있는 시간에 맞추는 것부터 힘들다. 대학 강의 들으러 가야 하는 시간은 피해야 한다. 주로 평일 저녁과 주말이다. 평일 저녁과 주말, 자본주의가 빛을 내는 시간이다. 손님이 가장 많이 오고, 노동 강도가 가장 높은 시간이다. 아르바이트 자리는 그런 시간에 있다. 사장님이 힘든 시간에 일했으니 덜 힘든 시간에 일한 사람보다 임금을 더 줄까? 다 똑같다. 최저임금이다. 그마저도 주휴수당 아까워서 15시간 미만으로 고용한다. 그런데 그 15시간 미만의 시간도 하루에 가장 바쁜 시간대에만 서너 시간씩 끊어서 일하게 한다. 낮에는 공부, 저녁에는 강도 높은 노동, 그리고 늦은 저녁에는 낮에 하지 못한 과제. 대학생의 일상이다. 어른들이 말하는 대학생의 낭만은 정말 옛이야기.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사진출처 알바몬)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사진출처 알바몬)

 

현실은 이런데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으니 기회를 잡는 것은 개인의 노력에 달려있다라는 어른들의 말은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가와 사회는 이러한 불평등, 불공정한 구조를 인식하고 그 격차를 좁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러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국가장학금제도, 취업지원제도 등 국가에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지원해주는 것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들의 생계를 전적으로는 책임져주지 못한다. 생계를 위한 노동은 이들에게는 의무다. 부모의 경제적 여건이 좋은 친구들과 절대로 같은 위치에서 시작할 수 없다. 필자는 이 격차를 줄이는 데에는 최저임금, 주휴수당, 퇴직금, 실업수당 등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해주는 최소한의 보호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저임금은 수많은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학생 노동자들에게는 불평등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기능을 한다. 즉 청년들의 미래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년 최저임금은 9,620원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물가상승률, 경제성장률, 소득분배율 등을 결정요인으로 고려한다. 올해 최저임금의 인상률이 높지 않았던 이유는 최저임금의 핵심 지불 주체인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의 지불 능력을 고려한 까닭이다. 우리 사회는 최저임금의 핵심 수급 주체인 대학생들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했다. 과연 공정한 처사였을까? 최저임금의 인상은 미래 경제 주체가 되는 청년들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소상공인, 영세, 중소기업의 지불 능력도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만 그로 인해 청년들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비정규직들의 희생을 간과해도 되는 걸까? 그리고 청년들의 희생을 강요한 어른들은 청년들에게, 대학생들에게,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최저임금을 포함해 주휴수당, 퇴직금 같은 정당하고 적절한 노동의 대가들은 대학생들에게는 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며 희망이다.

 

| 장한새(부천시 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