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갖지 않으면 언제나 행정의 뒤통수만 보게 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행정관청이 일을 기획할 때 시민의 의견을 묻는 과정이 없어 시민들은 일이 착수된 이후에나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 때는 이미 상황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시민의 속도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의견수렴이나 소통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기도나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사업 공모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진 예산을 마련한 후 그 목적에 맞는 사업을 진행할 지자체를 공개모집하는 것입니다. 착수를 앞 둔 심곡복개천 철거사업도 정부의 생태하천복원 사업 공모에 당선된 것입니다. 행정공무원들의 판단만으로 사업에 응모했습니다. 이런 사업이 필요한 지, 시기적으로 적절한 지, 시 부담 예산은 확보가 가능한 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등의 판단을 오롯이 행정공무원들이 한 것입니다.

 

그렇게 제출한 서류를 중앙정부 행정공무원들이 판단하여 채택 여부를 결정합니다. 심곡천 사업의 경우 현장실사도 없이 오직 서류검토만으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2011년에 그렇게 선정이 됐고, 선정된 이후에야 타당성검토 용역을 하고 용역보고회를 하면서 시민의견을 묻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공모사업으로 결정된 이후에 하는 절차들은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국비를 210억이나 확보했는데 포기할 것이냐’는 이야기도 따라 다닙니다. 사업 조건에 시비 부담이 70억 원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전체 사업비의 15%에 ‘불과’하다는 것만 강조됩니다. 정해진 분담예산 외에 추가로 부담해야 할 시 예산이 하나 씩 추가되고 있습니다. 주차장 시공, 하수처리시설 증설, 주변 하수관거 개선, 이용용수관로 매설 등 벌써 드러난 것만 해도 500억 원이 훌쩍 넘은 것 같습니다. 예정된 국비, 도비도 계획대로 지원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공모사업에 응모하기 전에 여러 가지 정황이 충분히 검토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사업을 공모할 때 주민의견 수렴 등을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일 것입니다. 2014년에 중앙정부에 응모한 도시재생 사업은 시의회 의견수렴이 조건으로 제시된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계획서가 마감시한에 촉박해서 시의회에 제출돼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절차로 지나갔다고 기억합니다. 시간이 있었다하더라도 다 작성된 계획을 수정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상지역 선정에서부터 함께 논의하는 소통구조가 없는 것입니다. 그나마 시의회 의견수렴을 조건으로 제시한 자체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우리 시만이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공모사업에 응모할 때 사전 의견수렴 절차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모사업의 성과는 얼마나 될 지, 부대사업비는 얼마나 들어갈 지, 공공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없는지 등 여러 영향요인을 검토하기 위해 주민의견도 수렴하고 전문가 자문도 받아서 주민의 대표인 시의회 의결(간단한 사항은 보고)을 거치게 하자는 내용입니다. 공모사업 뿐 아니라 시 자체사업이라도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시민들이 행정의 뒤통수만 보면서 원망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구상을 조례로 만들어보려고 연구했는데 불가능한 일이 돼 버렸습니다. 이미 1995년에 대전시 유성구의회에서 이런 취지의 조례를 제정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유성구의 조례는 구청장이 불복하여 재의결까지 해가며 제정했는데, 결국은 법원에 제소했고 법원은 이 조례가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유성구 조례의 핵심은 ‘국·도비 보조사업 중 총 사업비 2억 원 이상의 신규사업이나 총사업비 1억 원 이상의 토목사업은 사전에 의회의 의결을 받은 후 보조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 외의 사업은 신청 시 의회에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예산안 편성 또는 국·도비 보조금 예산신청 등은 지방자치단체장의 고유권한이고 지방의회는 예산을 심의, 확정할 권한만 있다는 것입니다. 지방재정법이나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어디에도 지방의회 동의 절차를 만들 수 있다고 규정하지 않았으니 이런 조례를 제정할 수 없고, 만일 국·도비 보조 사업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지방의회는 예산심의를 통해 감시, 통제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인 것입니다. 지방의회가 어떤 사안을 숙의하고 계획하는 일에는 신경을 끄라는 말이고 단지 통과 여부만 결정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1995년 이후 관련법이 바뀌었나 확인해보니 그대로입니다. 결국 법률에 정해져 있지 않으면 조례를 제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참여예산제를 만드는 등 주민참여 기회를 확대한다면서도 중요한 권한의 대부분을 지방자치단체장 재량에 맡겨두고 있는 셈입니다. 주민소통 제도를 하나 더 만들려는 노력은 불발됐지만 숙제를 하나 더 안게 됐습니다.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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