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의 설립과 활동 24

지난 23<부천군(富川郡) 면장(面長)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부천군의 15개면에서 1919년부터 1941년까지 근무한 면장의 이름과 근무연수 그리고 일반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핵심은 면장 또한 부천군수와 더불어 조선총독부의 임명장을 받고 행정조직의 말단에서 일제의 지배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것이며, 그 댓가로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조선 민중들은 정치사회적으로 억압을 받는 동시에 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해 곤궁한 삶을 이어갔지만 적극적으로 협력한 면장들은 부유하고 넉넉한 삶을 살았습니다. 면장들이 친일인명사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적극적 친일파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 당시 부천군 상황에서 면장이 주도적으로 행한 활동을 살펴보면 면장들의 친일행위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부천군 면장들의 개인별 행적을 추적하면 파편화되고 활동 내용이 적어 잘 구체화가 되지 않으므로 15개면 면장들이 참여한 단체들을 다 모아서 단체들의 성격을 살펴보면 친일행적이 뚜렷해집니다.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면장들이 참여한 단체들의 이름을 모아 성격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금융조합, 산업조합, 부평수리조합 평의원 등과 같은 조합의 임원 참여

2. 경기도 평의원, 각 부읍면의원, 학의(學議), 등 일제의 지배정책을 수행한 기구의 선거를 통한 참여

3. 부민회, 부천군 농회, 경기도 수산회 등과 같은 농업, 어업, 축산, 산림 등 착취 단체 참여

4. 부천유도회, 부평명덕회 등 유교를 통한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추진한 단체 참여

5. 도제시행기념, 시정25주년 기념, 우량단체와 공로자, 납세공로자, 가절맞아 일제가 내린 표창 및 포상을 받음

6. 천장절, 황기2600년 등과 같은 일본 천황 및 전통 명절의 자발적 축하 광고

 

이번에는 각종 조합(組合)의 성격과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제강점기 부천군 뿐만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 각종 조합이 생깁니다. 특히 금융조합이 많이 생기는데 금융조합은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조직되지만 일제강점기 시기의 금융조합은 그 성격이 조금 달랐습니다. 식민지 전시경제체제하 조선금융조합 금융업무의 특성에 관한 연구(김호범, 2000)에 따르면 금융조합은 농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의 지배정책에 철저히 복종합 기관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금융조합이 자작농 창설과 부채정리 등의 사업에 방대한 자금을 투하한 것은 지주제의 모순을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으면서 농업증산을 달성함으로써 전쟁 수행에 필요한 조세, 생산물, 금융수탈을 강화하는 방편의 일환이어였던 것입니다.

 

각 지역 금융조합. 중앙에 '소사금조' 가 보인다.
각 지역 금융조합. 중앙에 '소사금조' 가 보인다.

 

일제강점기 금융조합 여수순천 사회상(최재성, 2007)이라는 논문은 20세기 전반기 여수와 순천지역에 설립되었던 식민지 금융기관의 활동을 분석함으로써 일제 식민정책이 지역 말단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금융조합에 참여한 사람들은 지역의 유지로서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금융조합의 조합장과 감사를 했습니다. 이처럼 금융조합은 지역의 유지들이 일제의 협력 댓가로 임원을 해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천군에는 소사금융조합, 부평금융조합, 주안금융조합이 있었으며 설립시기와 위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소사금융조합은 1939416일 제28기 정기총대회를 열고 감사를 선출하고 표창식을 하는데 이 당시 감사로 변영모, 남길우가 됩니다.(1939419일 매일신보) 변영모는 1931년부터 1939년까지 오정면장을 하였으며, 남길우는 1919년부터 1921년까지 소래면장을 하였습니다.

부평금융조합은 1933417일 정기총회를 열고 감사와 평의원을 뽑는데 감사에 강석조, 정태국 평의원으로 안병혁, 박용재가 뽑혔습니다. 강석조는 1923년부터 1932년까지 계양면장을 하였으며, 정태국은 1921년부터 1936년까지 서곶면장을 하였습니다. 안병혁은 1919년부터 1920년까지 계양면장을 하였으며, 박용재는 1934년부터 1939년까지 부내면장을 하였습니다.

 

부평금융조합 정시총회 개최
부평금융조합 정시총회 개최

 

주안금융조합은 1932419일 감사로 김동화, 평의원으로 오혁근, 김창진 등을 선출하였습니다 (1932423일 매일신보) 오혁근은 1931년부터 1939년까지 남동면장을 하였으며, 김창진은 1930년부터 1932년까지 문학면장을 하였습니다.

부천군에 존재했던 3곳의 금융조합의 감사와 평의원 등의 구성을 통해 면장은 금융조합 감사를 겸임하기도 하고, 면장을 마친 후 또는 면장이 되기 전 금융조합 감사와 평의원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면장이 되기전에는 면장이 되기 위한 실적으로 마친 후에는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보입니다. 마치 지금의 전관예우처럼 공직을 마친 후 유관기관 취직하여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행태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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