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삼십 삼 년의 직장생활이 끝이 났다. 훈장 같은 서른세 개의 나이테가 만들어진 셈이다. 직장생활이 특별히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았지만 늘 규칙적인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기는 했다. 시어머니가 서류 가방 들고 회사 다니는 것을 어쩜 그리 잘하느냐고 농담을 하실 정도로 천직인 줄 알고 다녔다. 이러저러한 사유로 퇴직을 하면서 서른세 개의 나이테를 가지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문학에 발을 들이며 직장생활에서 얻은 서른세 개의 나이테와 내 삶의 희로애락이 구슬꿰미처럼 풀려나오기를 빌어본다.

집안의 기둥이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우리 집 가세는 기울었다. 아버지는 가난한 농촌 살림에도 한량 같이 사는 바람에. 우리 가족들은 가난을 견딜 수 없었다. 나보다 세 살 많은 언니는 옆 동네 친척 집으로 보내지고 나는 유학을 겸한다는 명분으로 인천 고모네로 올라왔다. 고모의 어린 막내딸을 봐주고 집안일 도우면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 열한 살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고향집엔 보리타작을 하면서 탈곡기에 한쪽 팔을 내어 주고 한쪽 팔로 두 쪽 팔을 가진 것같이 사시는 할머니와 한량 같은 아버지, 초등학교 일학년인 남동생이 남았다. 밤마다 동생이 가여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무능한 아버지가 미웠다.

심한 경상도 사투리에 햇볕에 그을린 검은 피부, 영양실조라 그랬는지 키까지 작은, 한눈에 봐도 촌스러운 시골 아이는 전학 첫날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 어깨에 내려앉은 눈 털어 내듯이 촌티도 털어내고 싶었지만, 하루아침에 교양이 쌓이지 않듯 촌티를 털어내지 못했다. 중학교에 가면서 표준어다운 말을 하고 미장원도 가고 세수하면 얼굴에 화장품도 바르면서 도시 사람으로 변해갔다. 도시 사람으로 변해갈수록 동생과 함께 살 수 있는 시간도 멀어져 갔다.

 

 

고모네 가족들 모두 따뜻하게 대해주었지만 내 처지는 겨울밤 창밖 나뭇가지에 걸린 초승달처럼 외로웠다. 낯선 곳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극적 세계로 들어갔다. 소설책은 참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책 읽는 동안은 행복했다.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눈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되었다. 박경리의 토지주인공 서희는 양반집 규수로 자기 집 하인인 길상과 결혼하며 독립운동을 하는 모습은 퍽 감동적이면서 파격적이었다. 극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며 고모 집에서의 생활도 안정이 되어갔다.

고모 슬하에는 사남매가 있었다. 고종사촌 언니는 월급 타서 가족들에게 선물할 때도 나를 차별하지 않았다. 내가 들어가 오남매가 된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작은오빠는 나와 네 살 차이가 났다. 비슷하게 사춘기를 보내면서 친해졌다. 주로 친구 네다섯 명이 뭉쳐 다녔는데 그중에 깎지 않으면 덥수룩한 수염마저 멋져 보이고, 굳게 다문 입이 강인해 보이는 철이 오빠는 내게 책 선물을 많이 했다. 내가 극적 세계에서 삶을 위로받는 것을 아는 것처럼. 이청의 김삿갓, 황석영의 장길산, 이병주의 지리산등 주로 장편소설이었다. 가끔은 아침 출근길에 자가용으로 우리 회사까지 태워주곤 했다. 고향 떠나온 내가 무척이나 안쓰러워 보였나보다 생각했는데 혹시 연정은 아니었을까? 사실 옥림아하고 부르던 오빠의 묵직한 저음 목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내가 결혼하면서 작은오빠와도 연락이 끊어졌다는데 지금은 무엇 하고 있을까. 혹시라도 동네 서점을 지날 때면 날 생각할지 궁금하다.

매년 입시철이 되면 신문에 나오던 대학별 국어국문학과 경쟁률은 내 가슴을 뛰게 했지만 한편으론 주머니 속에 숨겨둔 송곳처럼 내 가슴을 찌르기도 했다. 꿈은 멀었고 욕망은 고통스러웠다. 대학은 내 힘으로 가야 했는데 고모한테 더 이상 신세 질 수가 없었고 직장생활과 결혼으로 대학의 꿈은 멀어져 갔다. 허전한 가슴을 안고 살다가 마흔여섯 살에 만학도가 되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평생의 지기인 언니들도 만났다. 처음에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던 언니들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으로 다가왔다. 변신 로봇 트랜스포머처럼 적재적소에서 자기의 역할을 해내는 커리어 우먼들이었다. 한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중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문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대학생활을 즐기며, 꿈의 능선을 거뜬히 넘었으니 복 받은 인연이었다. 실력 있는 개인이 모여야 좋은 회사가 된다는 철학을 가진 사장님의 배려로 출석 수업에 빠짐없이 나갈 수 있었고 틈틈이 책도 볼 수 있었는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맞는 것 같았다.

검은 머리가 반백으로 변해가는 세월을 어찌하지 못하고 아버지는 무탈하게 사시다 돌아가셨다. 친척집으로 갔던 언니는 천둥과 먹구름 속에서 고된 날들을 이기고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부산에서 평범한 가정을 꾸려 살고 있다. 동생은 창원에서 단조공장을 운영하며 바쁘게 사는데 뒷모습은 늘 안쓰럽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가난도 가지고 가셨을까. 이제 우리는 가난하지 않고 어렸을 때의 가난을 탓하지 않으며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을 만큼 성숙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저마다의 몫을 해내며 살아왔고 여유가 되는대로 만나고 있다. 흩어졌던 삶이 제자리를 찾았다. 꿈결 같은 시간이라며 한마디씩 거든다. 귀천하신 아버지가 다독이시나 내 어깨가 따뜻해진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온다고 노래한 푸시킨의 시가 처진 어깨에 날개를 돋게 한다. 나는 또 다른 꿈의 능선에 섰다. 참으로 오랫동안 찾았던 길을 발견했다. 늘 내 가슴을 뛰게 했던 문학,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문학은 얼마나 위대한 작업인가. 서른세 개의 나이테를 자양분 삼아 정교하게 사용해 보려 한다. 문학이 내 삶의 주치의이며 천직이라 말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 조옥임(경남 함안 출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22년 계간 에세이문예수필 등단, 부천시민연합 회원)

조옥임 수필가
조옥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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