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부천노동영화제 후기

9회 부천노동영화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나의 노동에 말 걸기라는 부제로 11일간 진행이 되었는데요. 영화제가 전년도에 비해 더 커진 만큼 많은 부천 시민분들께서 영화제를 찾아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글은 영화제가 잘 마무리되었다는 이야기도 드릴 겸 제가 영화 많이 보러 다녔다는 이야기도 자랑할 겸 해서 영화제 기간 동안 본 영화들에 대해서 기억에 남는 부분들 위주로 짤막하게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순자와 이슬이

순자와 이슬이는 간단하게 보면 20대 청소부와 60대 청소부의 우정 이야기입니다. 20대의 청소부는 꿈을 잃고 염세적인 반면에 60대 청소부는 자유롭고, 유쾌하고 자신의 취향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60대 청소부가 던지는 이야기들이 흔히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던지는 어른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짧은 영화가 끝나고 저도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정의 시대:서비스 노동의 관계 미학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 미학은 처음에 내레이션으로 들리는 노동자의 인터뷰 내용과 화면에 비치는 무용수들의 정지된 모습에서 오는 부자연스러움에 깊게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담담한 인터뷰 내용과는 다르게 고통스러워하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일견 서비스 노동자들의 모습을 바꿔 보여주는 것 같아 저도 덩달아 손을 말아쥐고 영화를 봤습니다.

 

씨티백

처음에 영화를 보면서 인터뷰하는 친구들이 너무 밝고 명랑해 보여서 놀랐습니다. 제가 흔히 생각했던 오토바이 타는 청소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예상치 못하게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그렇게 편견만을 앞세워 판단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영화가 끝나고 이후 토크콘서트에서는 배달 노동자들의 이야기 더 나아가 배달 청소년의 노동 현실에 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열악한 노동시장에서 더 열악한 청소년들의 노동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마을 방과후 교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예전 학교 방과후 선생님 같은 느낌 아닌가? 하고 보기 시작한 영화였는데 그들과는 아주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영화의 큰 부분은 교사들의 회의 시간입니다. 코로나가 길어질수록 교사들의 고민도 깊어집니다. 교사이지만 사회적으로 교사로 불리지 않는 사람들,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미래, 그럼에도 아이들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어른들의 치열함이 스크린 너머로 또렷하게 전해져왔습니다.

 

소공녀

유일하게 두 번째 보는 영화입니다. 그때도 지금도 담배, 위스키, 사랑하는 너만 있으면 된다는 주인공 미소의 삶을 깊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취향이 확고한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담배와 위스키만 기억이 날 것 같은 영화지만 저에겐 몇 가지 생각하게 하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장면, 가사노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엔 팍팍한 세상 등등. 그러고 보면 미소는 집이 없을 뿐 취향과 생각은 있네요. 저는 집도 없고 취향도 없고.

 

우리는 노동자다&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 2020년 노동의 기록

그래도 얼마 전에 장애 인권 관련 강의도 한 달 정도 들었겠다. 아주 자그마한 자신감을 가지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뭐 예상 가능하시겠지만 영화의 제목부터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권리중심? 과연 어떤 말인가. 이런 혼란스런 와중에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인간이니까 일을 하고 싶다는 당사자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일을 하는 지금 자기 모습이 너무 예쁘다는 이야기까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나에게 노동은 어떤 것이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동에서 돈 이외에 다른 것을 느끼거나 얻으려 하고 있는지. 나도 일하는 나를 예쁘다 해주고 있는지.

 

미싱 타는 여자들

푸른 들판에서 미싱을 돌리는 세 분의 여성들로 시작합니다.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노동교실은 누군가에겐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고 누군가에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알려주었습니다. 사실 이날 제일 좋았던 것은 이순자 선생님이 직접 이야기해주는 그날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올 수 있나? 싶어질 정도로 단단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시는 내용엔 즐거움도 분노도 슬픔도 함께였습니다. 스크린에 비친 청계 피복 여공의 역사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운이 좋은 하루였습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

센터장님이 좋은 영화야. 좋은 영화야. 하시길래 그래서 얼마나 좋은 영화인가 눈을 부릅뜨고 봤습니다. 처음엔 그저 좋은 음악이 나오는 영화인가 했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그의 인생이 보이는 순간부터 영화의 장르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의 굵직한 사건들마다 노래로 투쟁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이번 제9회 부천노동영화제는 나의 노동을 들여다보고, 나의 노동을 존중하는 것에서 모든 노동에 대한 존중이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나의 노동에 말걸기라는 부제로 진행되었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단체와 부천의 더 많은 장소에서 노동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0회 부천노동영화제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제9회 부천노동영화제 (사진출처 호태원afreedom 페이스북)
제9회 부천노동영화제 (사진출처 호태원afreedom 페이스북)

 

| 김슬비(부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권리지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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