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YMCA ‘진단과 전망’

 

천연기념물이 될 수 있었던 나무

부천시 여월동 기와집오리촌 식당의 주차장 곁에 약 540년 된 측백나무 보호수가 있다. 크기가 높이 10m, 둘레 3.4m로 느티나무, 은행나무 거목과 비교해 아름드리나무가 아니지만, 측백나무 중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크다고 볼 수 있다. 측백나무 중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의 측백나무가 약 350년생으로 높이 13.5m, 둘레 2.23m 정도이다.

부천시는 이 측백나무의 수세가 왕성하고 수목이 군상으로 형성돼 특이한 형태로 자라고 있다며 20212월 천연기념물 우수 잠재자원으로 신청했고, 문화재청은 20213월 측백나무에 대해 규모 및 고유 수형과 생육 상태가 양호하고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뛰어나다며 천연기념물 지정 추진대상으로 선정했다. 이 측백나무는 최종 천연기념물 지정을 앞두고 국가지정 문화재 지정 시 토지주의 동의절차만 남은 상태였다.

여월동 540년 측백나무 보호수
여월동 540년 측백나무 보호수

 

마을의 안녕을 지켜 온 나무

측백나무는 중국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단양, 달성, 안동, 영양 지역의 석회암 지대에서 자라고 있다. 이 측백나무는 조선 연산군 때 민심을 수습하고 부락의 안녕을 위해 고을 수령이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측백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선비의 절개와 고고한 기상과 불로장생을 상징하여 양반집의 정원, 절이나 문묘, 무덤가에 주로 식재되었다. 특히 가지를 잘라서 달여 마시면 임산부의 하혈에 특효가 있다 하여, 몰래 가지를 꺾어가는 사람들로 인해 몸살을 앓았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 측백나무에 산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가지를 자르기 전에 반드시 제사를 지내 화를 면했다고도 전해진다. 이 나무는 웅장한 자태를 간직하고 있어 지난 82년 경기도 보호수 5-5호로 지정돼 보호받아왔다.

여월동 540년 측백나무 보호수
여월동 540년 측백나무 보호수

 

주민의 지극한 간호로 살아난 나무

보호수로 지정되고 10년이 지나서 고사 위기에 처했는데 주민의 지극한 간호로 되살아난 이야기가 언론에 소개되기도 하였다(“고사 위기 측백나무, 주민 간호로 살아났다중앙일보 1993-08-17).

1992년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하는 잎마름병을 앓고 나무 밑동에 지름 20나 큰 구멍이 뚫리는 중증으로 시달리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여 고사 직전에 처하게 됐다.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주민들은 부천시에 알리고 광릉 임업시험장과 전문가 등을 찾아다니며 자문 치료를 호소하는 등 측백나무 살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나무 밑동의 썩은 부분을 제거하는 외과수술을 실시하고 링게르 영양 주사액을 주입하며 물과 복합 비료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뿌려주는 보살핌으로 나무를 되살렸다고 한다.

주민 김인영씨 (52)주민들이 10개월간 자신의 일처럼 이 나무에 많은 관심을 쏟아 모두 나무 박사가 됐을 정도라며 마을 수호신으로 웅장하고 당당한 제 모습을 찾은 측백나무를 다시 볼 수 있게 돼 정말 다행스럽다고 말했다*출처: 중앙일보 1993-08-17

 

개발에 몰려 존중받지 못한 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됨에 손색이 없다고 밝혀졌던 이 측백나무는 안타깝게도 최종적으로 토지주의 동의를 받지 못하여 신청절차가 취소되었다. 나무가 있는 곳은 아파트와 상가로 개발되는 사업부지에 포함되어 있는데 부천시는 얼마 전 성골지구 도시개발사업 실시계획인가를 고시하였다. 이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 성골지구 개발은 물론 인접한 부천종합운동장역세권 개발계획까지 건축물의 규제가 강화되어 일각에는 부천시의 미온적 행정이 아니었는지 의심을 사고 있다. 부천시 도시전략과에 따르면 측백나무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그 자리를 경관녹지로 지정하여 현재 실시설계가 진행되고 있으며, 공사는 내년 하반기에 착공하여 2025년 하반기에 완료할 예정이라고 한다. 토지소유권은 공사완료 시기에 진행되기에 천연기념물 신청은 그때 다시 검토될 수 있을 것인데, 과연 그 모습이 온당할지 의문이다.

성곡지구 도시개발사업 토지이용계획의 경관녹지와 보호수(자료출처:부천시 도시전략과)
성곡지구 도시개발사업 토지이용계획의 경관녹지와 보호수(자료출처:부천시 도시전략과)

 

존엄성을 갖추어야 하는 나무

측백나무와 70m 떨어진 거리에 150년생 느티나무 보호수 1주가 더 있다. 토지이용계획에는 이 두 보호수를 포함하여 경관녹지가 지정되어 있는데 녹지폭은 최소 7.6m, 최대 22.1m이다. 부천시 도시전략과는 공동주택부지내 건축한계선이 부천시 조례에 따라 최소 3m이므로 10.6~17.6m의 녹지폭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녹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관건이다. 경관녹지에는 법적으로 각종 조경시설이 조성될 수 있다. 보호수의 뿌리가 뻗을 수 있고 가지가 자라기에 침해받지 않고 경관적으로 여유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내년 상반기에 실시설계 초안이 나오면 녹지과와 협의하겠다고 하니 시민단체에서 관심있게 지켜보고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호수가 부지 경계에 위치하여 경계 바깥의 개발에 따른 영향을 막을 도리가 없다. 늦었지만 2025년에는 천연기념물 지정을 반드시 추진하여 인접한 지역의 개발을 규제하고 보호조치를 확대해야 한다.

성곡지구 도시개발사업 경관녹지와 보호수 시뮬레이션(안)(자료출처:부천시 도시전략과)
성곡지구 도시개발사업 경관녹지와 보호수 시뮬레이션(안)(자료출처:부천시 도시전략과)

 

부천의 일곱 그루 보호수와 마을의 큰나무, 이제 시민이 보살펴야

보호수는 역사적·학술적 가치 등이 있는 노목(老木), 거목(巨木), 희귀목(稀貴木) 등으로서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나무를 말하며, 산림보호법에 의해 도지사가 지정하는 나무이다. 경기도에는 무려 1,386그루의 보호수가 지정되어 있다. 부천에 보호수는 측백나무를 포함하여 느티나무 네 그루, 은행나무 두 그루 등 고작 일곱 그루가 전부이다. 소사본동에는 1,000년 넘은 은행나무와 8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그리고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수백 년 된 나무들이 마을에 더러 남아있다. 오래된 나무들은 대개 시가지 내부에 위치하여 온전하게 자라지 못하고 있으며 나무의 내력이 담긴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오늘날 주민들과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크고 오래된 나무의 생태문화적 가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관심과 태도에 달려있다. 부천에서 다 합해도 스무 그루가 안 될 텐데, 이제는 나무를 사랑하는 시민이 나무와 공생관계를 돈독히 하고 보살피는 데 앞장서야 한다. 도시개발로 마을의 오래된 큰나무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새롭게 심어져 크게 자란 나무들도 있다. 아파트단지와 사잇길의 큰나무, 학교와 공공기관의 큰나무, 거리의 가로수들도 시민들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소사본동 800년생 느티나무 보호수
소사본동 800년생 느티나무 보호수

 

최진우 박사(환경생태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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