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의 설립과 활동 25

부천군농회(富川郡農會)1926(대정 15) 320일 경기도지사 미전심태랑(米田甚太郞)으로부터 인가받고 여주군농회, 진위군농회와 함께 설립됩니다. <조선총독부 관보 제4085호 대정 1545>

이에 따라 부천군농회는 부천군청 내에 자리를 잡고 여러 사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부천군농회에 대해서는 디지털부천문화대전“1920년대 이후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농민단체로는 북도부민회(北島富民會), 부천군농회, 부평농민조합, 삼도어민연합어업조합, 경기도 농촌진흥위원회 등이 있다.”라고만 간단히 실려있을 뿐 자세한 내용은 나와있지 않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경제와 산업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조선의 농민들과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되겠지만 자세히 들어가면 조선 농민들을 착취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만든 단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들은 넓게는 부천의 유력자들, 좁게는 면장들이었습니다. 큰 착취는 조선총독부와 일본인들이 담당하고 작은 착취는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일제 부역자들이 담당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가 농회(農會)를 설치한 이유

농회의 설치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고 토지를 수탈하고 농민들을 몰락시킴으로써 농촌 경제가 파탄됨에 따라 이를 무마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면서 곧바로 토지조사사업을 시작합니다. 이 사업의 목적은 토지 수탈이었습니다. 동시에 일제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경제 수탈을 진행합니다. 고리대금, 각종 금융조합 등의 일본 자금의 진출로 농민들은 이중고를 겪게 됩니다. 일본 재벌들의 농촌침식으로 다수의 농민은 소작농으로 전락하였으며, 산미증식계획과 각종 세금으로 가난의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농민이 만주, 연해주, 일본으로 이주하였으며, 화전민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전국적으로 농민들의 소작권 확보와 소작료 경감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으므로 농민운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 일제는 농회를 설치합니다. 1926년에 조선총독부는 조선농회령(朝鮮農會令)을 발표하고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농회(農會)를 설치하였습니다. 결국 농회(農會)는 농민들을 위한 기관이 아닌 일제의 농민 착취기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천군농회의 사업

부천군농회에서 시행한 사업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일본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농업 생산을 늘리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업을 진행합니다.

부천군농회의 사업
부천군농회의 사업

 

1. 강습강화회(講習講話會) - 농촌의 자제로 하여금 농업을 이해하며 근로의 정신을 함양시켜 중견 인물을 만들 목적으로 각 면에서 진행

2. 전습회(傳習會) - 상원(桑園) 즉 뽕나무밭 개선 및 양잠기술 전수를 통한 진면(眞綿) 제조 보급

3. 품평회(品評會) - 퇴비 품평회, 못자리 품평회, 뽕밭 품평회 등

4. 재상지도원(栽桑指導員) 설치 뽕나무 심는 방법, 가지치기 방법, 퇴비 등을 수행하는 지도원 설치

5. 지주간담회 - 지주와 농업 종사자의 중요 인물에게 군 방침의 철저를 도모하여 그 실행을 촉진하기 위한 지주간담회 진행.

6. 감저(甘藷) 재배 장려 고구마재배 장려 <이상 출처 - 1931227일 매일신보>

7. 소금가마니 제조 장려 농한기 부업 장려 및 부천군내 주안과 군자 염전 사용 가마니 생산 목적, 1931년 전까지는 인근 수원, 강화 등지에서 구매하여 사용하였음. <1931613일 매일신보>

8. 수도 원종답(水稻原種畓) 설치 논벼 우량품종의 보급.

9. 비료 개량증식시설 퇴비증식, 인분뇨 및 기타 액비의 이용을 촉진하기 위한 비료유 설치.

10. 공동판매 및 구매알선 농기구, 비료, 종묘의 공동구입과 생산품 판매 알선. <1932313일 매일신보>

11. 양계부란개량(養鷄孵卵改良) - 계란의 부화 촉진 <1938121일 매일신보>

 

부천군농회 구성 지역유지와 면장들

부천군농회를 구성하는 의원은 38명으로 정해졌습니다. 부천군 15개면 중 섬 지역인 북도면, 용유면, 덕적면의 3곳은 빠지고 12개 면에서 각각 2명씩 선출하고, 특별의원으로 14명을 선임하였습니다. 1938318, 부천군농회 총회를 진행하였는데 출석의원이 34(흠석 3)으로 나와 있습니다. 1명이 부족한 이유는 영종면장 박원상이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출처-1938323일 매일신보>

1934년 당시 부천군농회 임원 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193439일 조선신문> *표시-면장

1. 당선의원명

2. 특별의원

 

|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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