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의 설립과 활동 26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하고 있는 영종도(永宗島)는 현재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중구 속해 있지만 100여년전에는 부천군을 구성하는 15개 면()중 하나였습니다. 영종도는 1973년 부천군에서 경기도 옹진군으로 그리고 1989년에는 인천시로 행정구역이 바뀌였습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천부(仁川府)를 중심으로 부천군(富川郡)이 형성되었는데 인천 앞바다에 있는 섬들이 모두 부천군 소속이었습니다. 영종도, 삼목도, 신불도는 영종면에 속하게 되었으며, 용유도, 무의도, 실미도는 용유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영종도는 4개의 섬이 합쳐져서 생성되었는데 영종도,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가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의 이름은 지명으로 남아 옛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영종도와 옛 영종도가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간척사업이 지도를 바꿔놓았습니다. 영종도는 섬임에도 인천대교와 영종대교로 연결되어 있어 육지와 다름이 없으며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로 통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종면에는 어떠한 역사적 이야기가 있을까요?

영종면과 인천을 오가는 교통수단의 발전과 13년간 면장을 역임한 박원상을 통해 시대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영종 인천간 발동기선 개통 [인천] 인천 영종간은 일의대수를 격한 접근처이므로 소형 목선으로 왕복하여왔는데 왕왕 풍랑의 위험을 입어 교통상 불소한 불편과 지장이 있었던 바, 근일 영종면 유지 박원상 씨의 주선으로  석유 발동기선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종 인천간 발동기선 개통 [인천] 인천 영종간은 일의대수를 격한 접근처이므로 소형 목선으로 왕복하여왔는데 왕왕 풍랑의 위험을 입어 교통상 불소한 불편과 지장이 있었던 바, 근일 영종면 유지 박원상 씨의 주선으로  석유 발동기선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영종도와 인천부 사이의 교통 수단

영종도는 인천에서 매우 가까운 섬으로 1925년 당시만 하더라도 전통적인 배, 즉 범선(帆船)을 통해 왕래가 이루어졌습니다. 말그대로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돛단배가 중요한 교통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종면장 박원상이 석유발동기선을 처음 도입하였습니다.(1925115일 시대일보)

석유발동선의 도입은 기존 범선으로 영업을 하던 사람들의 일 뿐만아니라 생계도 위협하였습니다. 1927년에 이르러 관할서에서는 석유발동기선측에 정식 도선업을 허가해주고 범선측에는 도선업을 폐지하였습니다. 기존에 지속적으로 영업을 했던 범선측은 하루아침에 불법 영업자가 된 것입니다. 범선에 비해 석유발동기선이 안전하다는 이유로 관할서에는 이 상황을 방치하였으며 범선측은 200여명의 조합원을 모아 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1927527일 매일신보)

인천 영종도 간  범선업자 대타격 / 인천서에서 통인조(합)에 특허 / 범선업자의 영업금지 
인천 영종도 간  범선업자 대타격 / 인천서에서 통인조(합)에 특허 / 범선업자의 영업금지 

 

통인조합(通仁組合)의 이익을 두고 벌인 사건

박원상을 중심으로 1924년 영종면에서는 면민 500여명이 800원의 자본금으로 통인조합(通仁組合)을 창립하였습니다. 통인조합은 영종면민의 교통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동시에 1933년에는 기금이 만여원에 달하였습니다. 통인조합 10여년만에 10배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수익이 많아지다보니 박원상, 김동화 등 통인조합 간부들이 1933428일에 용궁사에서 제8회 정기총회를 열고 조합을 해체하고 주식회사로 변경하자고 주장한 것입니다. 통인조합으로 인해 발생한 이익을 전체 조합원이 아닌 주식을 많이 가진 일부 주주들이 가져가는 것이므로 일반 조합원들은 여기에 반대하며 430여명이 궐기하고 인천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하였습니다.(1933612일 조선중앙일보)

 

간부 처사 부당타고(부당 하다고) 조합원 400여(명) 궐기 / 주식변경 불필요를 당국에 반대 진정해 / 영종 통인조합회 대분규  
간부 처사 부당타고(부당 하다고) 조합원 400여(명) 궐기 / 주식변경 불필요를 당국에 반대 진정해 / 영종 통인조합회 대분규  

 

박원상의 행적

박원상은 영종면의 지역유지로서 면장과 통인조합 간부로 활약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1) 부천군농회 의원

1934년에는 차문정과 함께 부천군농회 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193439일 조선신문)

2) 조선총독부로부터 국유미간토지 이용양도허가

첫 번째, 1914년 영종면 송산리(松山里) (조선총독부 관보 제0608)

두 번째, 1916년 영종면 전호리(前所里) (조선총독부 관보 제1142)

세 번째, 1919년 영종면 백운산, 영종면 운남리 19195월부터 19294월까지 10년간 이용허가 받음 (조선총독부 관보 제2030)

 

영종면장 박원상의 행적을 보면 지역에서 일제에 협력하여 면장을 하며 각종 이익이 되는 사업과 일제부역단체에 활동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취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익은 혼자 독취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더 확대됨을 알 수 있습니다. 차문정은 통인조합에서 간부로 함께 일하였고, 김동화는 박원상보다 먼저 영종면장을 하였는데, 그 기간을 살펴보면 1921년부터 24년까지 4년이었습니다.

 

|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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