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약사의 약이 되는 약 이야기 16

이번에는 부천시 방문 약료 서비스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의학과 약학의 발달로 생명이 연장되면서 노년층들은 몇십 년 동안 건강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노년층은 만성 질환을 앓고 있으면서 다제 약물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어르신 만성질환자에 대한 체계적이고 실제적인 약물 서비스가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한국 약사들의 고민은, 어느 나라보다 의료보험 제도가 잘되어 있고 약 구매율이 높은 대한민국이 오남용 비율이나 중복 약에 대한 위험률이 높아지는 것을 보며, 제대로 된 국민 약물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부천시의 경우 2017년에 시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한 의약품 안전 사용 교육, 방문 약료, 폐의약품 수거·관리 등의 시행과 지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의약품 안전 사용 조례안의 통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활발하게 약물 오남용 교육사업과 방문 약료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방문 약료 사업 초기에는 많은 사람의 우려가 있었습니다. 이미 방문 간호팀이나 생활 지원팀에서 약 정리 등을 돕고 있다고, 또 약국을 방문했을 때 잘 지도하면 되지 않느냐, 굳이 방문 약료 서비스에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냐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방문 약료 시범사업이 진행되면서 약 전문가인 약사가 제대로 된 약물 서비스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방문 약료 서비스 사업 초기에는 대상자들을 선정할 때 독거노인 즉 약물 복용에 대한 조력자가 없는 경우를 우선으로 하였고 취약계층 위주로 선정했으나 지금은 의료보험 공단의 다제 약물 서비스의 경우 그야말로 많은 약물을 복용하는 복합 처방 환자들을 대상자로 선정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대상자분들은 방문 약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개인정보 동의서를 제출하고 먼저 모든 복용 약의 처방전을 제출하게 됩니다. 약사는 그 처방전을 보고 위험 약물은 없는지 중복 약은 없는지 보관 방법이나 기타 중점적으로 상담해야 할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방문하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실제로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해 보니 임의로 중단한 약부터 이 방 저 방 흩어져 있어 약을 제대로 복용을 못 하는 경우도 많았고 오래된 약을 버리지 않고 중복 약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약을 드시는 등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50분 상담을 목표로 갔지만 1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2, 3차 방문을 통해 어르신들의 약에 대한 관점도 달라지고 정확하게 약을 드시면서 건강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은 적도 많았습니다.

 

어르신 방문 약료 상담
어르신 방문 약료 상담

 

첫 방문 했던 어르신이 생각납니다. 그 어르신 집은 철거 예정지역이었고 골목골목 집을 찾아 헤매서 겨우 들어갔는데 어르신은 쥐나 들고양이가 들어 올 수 있으니 어서 들어와 문을 닫으라고 하셨습니다. 악취가 났고 집에는 모든 옷이 걸려 있어 실제 생활하는 공간은 아주 좁았습니다. 빈 포도 상자에 온통 사탕과 약들이 뒤엉켜 놓여있었고, 아침 약 봉투에는 저녁 약이 저녁 약 봉투에는 아침 약이 혈압약 봉투에는 정형외과 약이 들어 있었고 골다공증 약은 석 달 치나 밀려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충격받은 사실은 TV 앞에 놓여있던 수상한 약병들이었는데 그 약병에는 흰 설탕이 들어 있었습니다. 빈 약병에 설탕을 담아 김치찌개에도, 된장찌개에도 입맛이 없다며 이 설탕을 조미료 삼아 뿌려 드셨다고 합니다. 진짜 꼭 복용해야 할 골다공증 약은 3개월간 드시지 않고 뼈에 좋지 않은 그리고 미각을 해치는 설탕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분이 약을 드시는 이라는 공간을 방문했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겁니다.

차분하게 앉아 상담을 시작하니 어르신의 큰 고통은 골절이라고 했습니다. 3년 동안 부위를 바꿔가며, 살짝 넘어졌는데도 골절상으로 몇 달씩 입원하기를 반복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우리 두 명의 약사가 보기에도 약 봉투를 열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바퀴벌레에 악취에 집 먼지에 도저히 건강하게 여생을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인 거 같아 어떻게 상담을 마치고 나왔는지 나중에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일단 바퀴벌레 퇴치제를 구매하시게 하고, 설탕이 골절에 얼마나 좋지 않은지 교육하고, 처방 의사에게 식욕 촉진제를 처방받으시라고 권했고, 무엇보다 만성 질환 약을 규칙적으로 먹을 수 있게 정리하고 어르신이 드시는 약물을 하나하나 교육해드리고 왔습니다.

방문 약료의 또 한 가지 핵심은 중복 약과 약 부작용을 점검하는 것인데요. 한 어르신의 경우 발목이 퉁퉁 부어있었고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신장 MRI까지 찍어도 병명이 나오지 않았는데 결국 혈압약이 몸에 맞지 않아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고 진료 의사와 의논해서 약을 다른 성분으로 바꾸었더니 발목 부종이 가라앉았습니다.

그 밖에도 감기약, 위장약, 수면제를 자주 복용하시다 보니 종일 잠만 자고 운동할 기운조차 없이 가라앉아있는 어르신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오래된 약의 경우 봉투를 버리신다거나 해서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감으로 드시고는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정말 많은 사례가 있는데 다 소개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만 약사들의 이런 방문 약료 활동은 우리 사회에서 약사들이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이제 방문 약료 서비스를 통해 약물과 관련한 어르신들의 문제를 다른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건강이 더 좋아지게 하려면, 또 약물을 줄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졸음을 유발하는 만성 알레르기 약 복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복지팀에서 주거 환경을 개선해 주고, 진통제를 3가지나 드시고 앉았다 일어날 때 골절을 입었던 분에게는 침대 생활을 권유해 드리고, 혈압약을 바꾼 뒤로 마른기침이 나서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는 어르신의 주치의에게는 혈압약 검토를 부탁드리는 다학제 협업 서비스를 구체화하려고 합니다.

부천시 행정복지 센터와 통합돌봄 담당 부서에서 정말 방문 약료 서비스가 필요한 대상자들을 선정해서 안내하고 있으니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윤선희(부부약국 대표 약사, 부천시 약사회 전 회장)

윤선희 약사
윤선희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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