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허리가 문제였다. 내 허리는 일 년에 한두 번씩 말썽을 부린다. 아파도 죽을 만큼 아프다. 이유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의료상의 모든 검사를 시행했지만, 허리통증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지난주 금요일, 허리가 또 말썽을 부렸다. 공부방 청소를 하다 허리가 찌릿하더니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눈에서 별이 보이고 허리를 옥죄는 느낌과 함께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통증이 따랐다. 다행히 손은 움직일 수 있어 급한 마음에 119에 전화를 걸었다. 허리가 아파 전화했다고 하니 웃으면서 그런다. 그 정도는 가족들과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고. 진짜 응급환자 전화를 못 받으니 그만 끊으란다. 어이가 없다.

다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응급환자들이 대기하는 바쁜 119에 전화 걸어 농담할 정도는 아닌 상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다. 옆에 돌보아 줄 가족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나는 그 누구보다 힘들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다. 긴 통화가 끝나고 응급구조사를 보내 주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병원에 가려면 우선 지갑을 챙겨야 하는데 식탁 위에 있는 지갑을 가지러 가려해도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고목처럼 그 자리에 서서 응급구조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공부방에 복도 쪽 창문이 있어 창문에 대고 소리 질렀다. 문을 열어 줄 수가 없으니 복도 창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마침 청소 중이라 창문은 열려 있었고 한 사람이 창문으로 들어와 현관문을 열었다. 스트레처카(stretcher car)가 들어오고 또 한 사람의 응급구조사가 들어왔다. 문제는 나를 카 위에 눕혀야 하는데 내가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니 어쩔 줄을 모른다. 반강제로 나를 들어 카에 눕히더니 물어보지도 않고 집 근처 5분 거리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내려놓고 가 버린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응급실은 부산했다. 간호사가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고 물었고 허리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어 왔다고 하니 원무과에 가서 접수를 해 오라고 한다.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는 나에게. 보호자 없이 혼자 왔다고 다시 설명하자 접수하지 않으면 진료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두 번째로 어이가 없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휴대폰뿐이라 전화기로 ○○병원 원무과에 전화했다. 지금 응급실에 와 있는데 보호자 없이 혼자 와서 접수하러 갈 수가 없으니 응급실로 와서 접수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5분쯤 지나 남자 직원이 왔고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적어 가지고 갔다. 그때부터 나는 인생을 잘못 산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응급실 안의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다른 환자나 보호자까지 이상한 눈으로 나를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았으면 응급실에 같이 올 사람 하나 없단 말이야.” 이 소리가 귓가에서 왕왕거린다.

의사나 간호사는 본인이 근무하는 병원이 아닌 다른 의료기관에 가서는 본인의 신분을 숨긴다. 같은 의료인인 줄 알면 불편한 점만 있을 뿐, 득이 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동종업계라고 봐주는 것도 없다. 다행히 정형외과 전문의가 진료를 보고 있었고 사정 이야기를 했다. 진통제 먼저 달라고. 그렇게 링거를 달고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X-ray를 찍었는데 보호자가 없으니 사진을 찍고 복도에다 내가 누운 카를 밀어 놓았고 벽 쪽에 누운 나는 방치 아닌 방치를 당하고 있었다. 보호자가 없으니 서두를 일도 없고 출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방사선과 복도에서 30분이나 방치를 당한 후에야 응급실 간호사가 나를 데리러 왔다. 결과는 뻔했다. 단순 촬영으로는 알 수 없다. C-T를 하거나 MRI를 해봐야 원인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모든 치료를 거부했다. 링거가 끝나면 집으로 간다고 이야기하니 그렇게 하라고 한다. 응급실 가장 외진 곳에 나는 링거가 끝나기를 누워서 기다리고 있었고 응급실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링거가 끝나갈 즘 내가 고함을 질러 간호사를 불렀고 주삿바늘을 뺀 간호사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은근 부아가 치밀었다. 보호자 없는 환자라고 이렇게 무시하고 방치하고 함부로 하다니. 수모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병원 직원들로부터 당한 냉대는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순순히 병원에다 진료비를 주기가 싫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꼴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닌 것은 아니다 싶었다.

원무과에 갔더니 아까 접수하러 온 남자 직원이 보였다. 진료비가 275,000원 나왔다고 한다. 할증이 엄청나게 붙은 모양이다. 주말 야간에 응급실을 왔으니 오죽할까. 일단은 지갑을 가져오지 않아 현금이 없다고 했다. 집이 가까우니 집에 가서 지갑을 가져와 계산해주겠다. 당연히 곤란하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으니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이체를 시켜 달라고 한다. 나도 오기가 발동했다. 119 타고 응급실에 혼자 온 사람이 가족이 있겠느냐 생각해 봐라. 연락할 가족이 없다고 버텼다. 웃기는 상황은 지금부터다. 언제부턴가 보안요원이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먹튀를 예상하고 나를 감시할 요량인 듯했다.

그렇게 5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내가 한마디 했다. “선생, 지금 생각해 보니 응급의료비 대불 제도가 생각납니다. 나 그거 해주면 되겠네요. 서류 주세요. 작성해 드릴 테니.” 이 말을 들은 직원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지면서 당황하는 기색이 보인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다는 말이 나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한다. “선생, 대한민국 국민이고 법률에 따른 응급증상이고 응급의료비 지급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상자 아닌가요? 119구급차를 타고 왔고 응급진료를 받았고 지금 당장 지급능력이 없으니 세 가지에 모두 해당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걸려도 잘못 걸렸다는 표정이었고 눈치를 보니 아예 그 서류를 본 적도 없어 보였다.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잠시 뒤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고 품위 있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나를 데리고 작은 상담실 같은 곳으로 가더니 음료수를 권했다.

그런 제도가 있긴 하지만 환자들이 잘 이용하지 않아 서류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귀가하고 정산은 내일 해도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직원의 응대에 실수가 있었다면 이해해달라는 애원 아닌 애원을 한다. 살짝 당황스럽다. 어차피 내가 시작한 일이니, 마무리도 내가 해야지 싶어 응급실 이야기를 했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은 응급실에 올 자격도 없냐? 몸이 아파서 온 병원에서조차 독신자는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사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 항의 아닌 항의를 한 것이다. 청구서 가져오면 이 자리에서 계산해주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중년 남자는 자신의 명함을 나에게 건네주고 청구서를 가지러 갔다. 주고 간 명함에는 원무팀장 아무개로 되어 있었다. 잠시 뒤 청구서를 받아 그 자리에서 휴대폰에 있는 pay로 진료비를 지불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병원은 혼자 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 알고 살았다. 외래 진료를 하러 가도, 입원해도, 수술을 하려 해도 가족 중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동의를 받아야 수술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많이 변했다. 보호자 없는 병동이 운영 중이고 간호간병통합병실이 생겼고 보호자가 없어도 수술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고 추가적인 서류도 있어야 한다. 참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1/3이 독신가정인데 앞으로 이 일을 어찌할까. 배우자가 없는 건 물론이요, 자녀까지 없는 나로서는 큰 스트레스이다. 일이 있을 때마다 떨어져 사는 형제들을 부를 수도 없고 장황하게 부연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도 저도 다 싫으면 건강하고 튼튼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참 쉽지 않다.

 

윤 강 (경북 청송 출생.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졸업. 2009 수필등단. 2021 시 등단. 수필집 아득한 그리움, 공저 서정 뜨락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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