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명화로 보는 색채심리’ 25

학교를 퇴학당한 가난한 소년이 국제적인 명사가 되었다.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2~ )남미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콜롬비아의 화가다. 따뜻한 색채와 유머가 담긴 그의 그림 속 인물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2000년 작품 춤추는 사람들은 보는 이에게 행복한 미소를 선물한다. 춤추는 여인의 드레스 색깔인 코카콜라 레드(cocacola red)의 심리를 알아본다.

1932년 페르난도 보테로는 안데스 산맥의 가난한 산골 메데인에서 태어났다. 4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랐다. 교과서에서 본 명화를 보고 베끼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16세에 학비를 벌기 위하여 지역신문(El Colombiano News for Today)에 일요일마다 삽화를 연재했다. 잡지에서 '입체파의 형태 파괴는 일종의 마르크스 개념'이라는 기사를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썼다. 당시 콜롬비아는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열풍이 불던 때였다. 이 글이 화근이 되어 학장은 그를 썩은 사과라고 부르며 전교생 앞에서 망신을 주고 학교에서 쫓아냈다. 그는 60세 때, 이 아픔을 성모 마리아가 사과를 들고 눈물을 흘리는 작품 성모(1992)에 고스란히 담았다.

 

페르난도 보테로
페르난도 보테로

 

19세의 보테로는 콜롬비아 살롱전에서 2등을 차지했다. 상금으로 이탈리아 피렌체로 유학을 떠나 여러 미술관을 다니며 르네상스의 걸작품을 탐구했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작품에 주목하고 누구나 잘 아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었다. 1952년에 귀국하여 전시회를 열었지만, 혹평이 쏟아졌고 작품은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1956년 멕시코에서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을 만났다. 라틴미술의 정신을 배우고, 인물을 과장하여 부풀리는 조형성에 단초를 얻었다. 생계를 위해 타이어를 팔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1963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모나리자를 전시했다. 최초로 해외에서 전시하는 세기의 명화를 보기 위하여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 근처의 뉴욕 현대미술관은 입구에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보테로의 작품을 걸었다. 모나리자를 뚱뚱하고 익살스럽게 그린 1959년 작품 12세의 모나리자는 돌풍을 일으켰다. 미술관에서 이 작품 구매했고, 그는 국제적인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그는 90세의 고령에도 세계 각국에서 왕성한 전시회를 이어가고 있다.

 

페르난도 보테로, '12세의 모나리자', 1959년
페르난도 보테로, '12세의 모나리자', 1959년

 

필자는 2009년 덕수궁미술관에서 개최한 <보테로 >을 관람했다. 92개의 회화와 조각품 중에 특히 춤추는 사람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185x122cm의 거대한 캔버스에 그린 풍만한 여인이 코카콜라 로고와 비슷한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관능미 넘치는 뒷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원피스의 레드 컬러에서 뿜는 흥겨움과 정열에 필자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녀의 손을 잡고 춤추는 연인의 표정이 궁금했는데 의외로 무표정했다. 1970~1990년 콜롬비아는 암울한 시기였다. 독재 정권에 맞서는 반란군과 마약상의 무력 충돌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다. 보테로는 예술은 기쁨을 주는 오아시스가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차가운 현실의 무게에도 화가의 영혼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해주는 피난처 같은 작품을 그리며 힘을 얻었을 것이다.

 

페르난도 보테로, 『춤추는 사람들』, 캔버스에 유채, 185x122cm, 2000년
페르난도 보테로, 『춤추는 사람들』, 캔버스에 유채, 185x122cm, 2000년

 

필자는 다문화센터에서 미술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오는 인도네시아 어머니는 매번 수업 시간에 지각하였다.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고 의사소통도 어려웠다. 남편보다 23세나 어렸지만, 결혼 초에 골프를 즐기며 부유하게 살았다. 가부장적인 한국인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자 단칸방에 살면서 급속히 무기력해졌다. 아이보다 그녀의 심리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미술 치료 시간에 각종 그림 검사를 통해 자신과 환경에 자포자기하고 우울한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림을 그리는 선이 흐릿했고 연한 색을 선호했다. 빨간색은 싫어했지만, 관심을 갖도록 지도했다. 집단으로 어울리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면서 의욕이 조금씩 살아났다. 하루는 예쁘게 화장하고 빨간색 블라우스 차림으로 나타났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가는 모습이라고 격려하였다.

 

코카콜라 로고
코카콜라 로고

 

레드 컬러는 의욕과 활력을 준다. 신경계를 자극하여 혈액순환을 돕고 에너지를 회복시키는 마법 같은 색상이다. 목표가 강한 적극적인 행동파가 좋아한다. 이 색상에 끌린다면 현재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옷이나 소품으로 레드를 가까이하여 기력을 충전하기 바란다. 레드 마케팅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구매욕을 자극하는 브랜드 전략이다. 인간의 눈은 이 컬러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한다. 고혈압이 있거나 급한 성격은 피해야 하는 색상이다. 심장박동수와 맥박수를 증가시켜 쉽게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이 색깔을 기피하는 사람은 스트레스와 불안이 있어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카콜라 레드는 열정과 즐거움의 색깔이다. ‘크리스마스를 말하면 산타클로스가 떠오르지만, 원래 예수의 미사(Christ’s Mass)’라는 뜻이다. 서기 354년 교황 리베리우스는 12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선포하였다. 산타클로스는 가난한 자에게 선물을 몰래 주던 성 니콜라스의 영어식 발음이다. 산타의 옷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있다. 1931년 코카콜라 회사는 겨울에 콜라 판매가 급감하자, 공격적인 홍보 전략을 펼쳤다. 산타의 옷에 회사 로고의 레드 컬러를 입히고, 수염에 콜라의 신선한 거품을 상징하는 하얀색을 더했다. 산타가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아이들과 콜라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하는 광고가 전 세계로 퍼졌다. 매출은 급상승했고 코카콜라 레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컬러 중 하나가 되었다.

 

영화 슈퍼맨의 망토
영화 슈퍼맨의 망토

 

히어로 영화에서 레드는 주인공을 한눈에 알아보게 한다. 영화 <슈퍼맨>의 망토와 <아이언맨>의 슈트는 할리우드 영웅의 강인함과 권력을 상징하는 레드 컬러다. <아이언맨>의 영화감독 존 파브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붉은 대한민국 유니폼을 입은 윤성빈 선수가 과학적으로 설계된 아이언맨 헬멧을 쓰고 얼음 트랙을 거침없이 질주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종목에서 아시아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레드는 복수와 투쟁을 상징한다.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주인공인 이영애는 억울하게 옥살이한다. 복수를 암시하는 장치로 눈가에 빨간 아이섀도를 발랐다.

썸네일 로고의 색상은 클릭 수와 직결된다. 동영상 공유 서비스인 유튜브(YouTube)의 로고는 선명한 레드다. 이 컬러는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으며 호기심을 자극하고 오랫동안 즐기게 만든다. 튜브(Tube)는 브라운관 TV의 은어이고 유튜브는 당신의 TV’라는 뜻이다. 유튜브는 미국의 전자상거래 회사인 페이팔 출신들이 비디오 영상을 쉽게 공유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수익 창출에 실패했다. 2006년 구글이 인수하였고 로고를 눈에 잘 띄게 만들기 위하여 색상을 여러 번 바꾸었다. 빨간색의 볼록한 네모에 하얀색 세모 모양의 플레이 버튼으로 최종 완성하였다. 2017년 유튜브는 국내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앱 사용 시간 1위에 등극하며 동영상 플랫폼의 왕좌에 올랐다.

코카콜라 레드는 활기를 불어넣고 승리를 향해 가도록 돕는 컬러다. 이 컬러를 가까이하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열정과 의욕이 생길 것이다. 기쁨을 주는 영혼의 오아시스 같은 보테로의 작품을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다. 빨간색의 영화 캐릭터 모형이나 화사한 포인세티아 화분 등의 소품으로 주변을 꾸며보기를 추천한다.

그동안 김애란의 명화로 보는 색채 심리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유익한 내용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사랑과 기쁨이 풍성한 2023년을 기원합니다.

 

| 김애란(화가, 미술 심리 강사)

 

김애란 작가
김애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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