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방조제로 연결되어 육지처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대부도(大阜島)는 옛날에는 배로만 다닐 수 있는 먼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접근성이 좋아 해수욕장, 낚시, 캠핑, 골프 등 관광휴양지로 큰 인기를 얻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되었으며, 특히 구봉도의 낙조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명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행정구역상 안산시에 속해있는 대부도도 예전에는 부천군을 구성하는 대부면(大阜面)이었습니다. 100여 년 전에는 섬이었으므로 해상교통이 매우 불편하였고 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부천통운조합(富川通運組合)이 설립됩니다. 부천통운조합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김완수와 송병철이었는데 이 두 사람과 부천통운조합을 중심으로 대부면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부천통운조합(富川通運組合) 설립
부천통운조합은 1934년 6월 1일 창립되었고, 그해 9월 25일 38톤의 발동기선 2척을 진수하여 인천항을 기점으로 부천군 내 여러 섬을 운행하였습니다. 노선은 크게 3개로 인천-마산 선은 영흥, 대부 기항을 매일 출항하였으며, 인천-덕적 선은 용유, 자월 기항을 격일로 출항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천-외포 선은 북도, 강화의 선수․건평․석포 기항을 격일로 출항하였습니다. 이 당시 덕적면, 영흥면, 대부면, 용유면, 북도면 그리고 영종면 6개면은 섬으로 부천군에 속해있었으므로 영종면을 제외한 5개 면의 해상교통을 부천통운조합이 담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종면의 해상교통은 1924년 설립된 통인조합(通仁組合)이 담당하였습니다. 섬 주민 340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하였고 자본금 2만 원이었으며 조합장은 김완수가, 이사는 송병철이 그리고 서무는 이병상이 담당하였습니다. (1934년 9월 20일 조선중앙일보), (1935년 11월 20일 매일신보)
5개 면을 담당한 부천통운조합은 급격한 승객 증가로 불과 2년 만에 새로운 배를 도입하게 됩니다. 1936년에 발동선 증가계획을 세우고 12월에 그 당시 가장 속력을 잘 내고 최신식인 배를 약 8천 원에 구입하였습니다. (1936년 12월 10일 매일신보)
대부 면장 김완수
김완수는 1928년부터 1939년까지 12년 동안 대부 면장을 역임하였는데 1937년에는 <10년근속축하>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부천군수 허섭, 판사 김세완, 인천서장 등을 비롯하여 각 면장, 유지, 면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1937년 7월 1일 매일신보)
<역대 대부 면장>
19~21년 |
22~23년 |
24~27년 |
28~39년 |
40~41년 |
홍남표 |
김종윤 |
노겸수 |
김완수 |
김성향창 |
이사 송병철
송병철은 농교 출신으로 1934년 추석까지 부천군청에서 근무하다가 10여 년의 관직 생활을 그만두고 부천통운조합 이사로 전직하였습니다. (1935년 5월 21일 매일신보)
송병철은 1935년에 인천부회의원(仁川府會議員) 선거에 나가 당선이 되었고, 1936년에는 인천 조선인 교육진흥회 실행위원이 되었습니다. (1936년 3월 6일 매일신보)
해운 및 정치에서의 활동이 활발하였는데 1940년 한 언론에서는 해운계의 거성(海運界의 巨星)이라고 칭찬할 정도였습니다. (1940년 7월 17일 조선시보)
부천통운조합의 각종 광고
부천통운조합의 특징 중 하나가 일제의 침략전쟁과 일왕 등을 기념하는 행사에 광고를 많이 한 것입니다. 조합장 김완수, 이사 송병철의 이름을 걸고 하였습니다. 광고의 수가 많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1) 시정 25주년(施政二十五周年) 광고
시정 25주년 기념 표창은 1935년 10월에 진행된 사업으로 장기근속자, 재만(在滿) 한인 보호와 각종 사회활동에 공이 있는 자 등에게 수여한 기념 표창입니다. 관료에게는 표창과 포상을 민간인에게는 서위, 서훈, 포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총 5,300여 명이 표창을 받았습니다. (1935년 10월 3일 조선신문)
2) 천장절(天長節) 기념 광고
과거 쇼와 시대(히로히토가 재위한 시대로,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기간을 말함)에는 4월 29일이 천황 탄생일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천장절로 불렀습니다. 이날에 맞추어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였는데 이 광고는 거의 매년 진행되었습니다. (1936년 4월 29일 조선신문)(1937년 4월 29일 조선신문)(1939년 4월 29일 조선신문)(1940년 4월 29일 조선신문)
3) 기원 2600년 기념 광고
기원 2600년은 일본의 개국신인 진무천황의 즉위를 기념한 행사입니다. 황기 2600년을 맞이하여 봉축회 관련자에게 기념장을 수여하였으며, 봉축회는 일본 도쿄, 조선의 경성, 만주국의 신경 등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당시 조선인 약 300여 명이 봉축회에 참석하고 기념장을 받았습니다. (1940년 1월 1일 조선신문)
4) 기타
이 외에도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한 광고(하전첩지신춘병이사황군지분투-1939년 1월 1일 경성일보, 근하대륙건설신춘-1939년 1월 10일 조선신문), 조선신문 창립 50주년 기념하는 광고(1937년 10월 28일 조선신문) 등 다수가 있었습니다.
글┃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