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숙의 생태환경 리포트

동지가 지났으니 하늘의 봄은 시작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던 봄기운이 언 땅을 풀기까지는 아직 석 달여 더 남았네요. 부지런한 까치는 동지가 지나자 내년 봄을 위한 집수리에 들어갔습니다. 나무마다 가장 높은 곳에 둥지를 만든 까치 부부들이 나뭇가지를 연신 물어 나릅니다. 우리 사람들에겐 무뎌진 절기()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다음 절기를 준비하는 새들을 보면 나도 빨리 철들어야 할 텐데 생각해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때를 알고 찾아온 겨울 손님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손님은 기러기들이구요, 기러기 떼와 함께 도착하는 말똥가리를 비롯한 맹금류들, 그리고 작은 쑥새들과 멧새들, 떼까마귀들까지 이제 사람들의 추수가 끝난 농경지는 새들 차지입니다.

먹이를 찾아 먼 길을 날아온 손님들에게 올해는 비교적 풍성한 먹거리가 준비되어있습니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볍씨와 풀씨들이 가득합니다. 이 씨앗들은 내년 농사를 결정하게 될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씨앗들은 월동을 무사히 마쳐야만 내년에도 대를 이어 살아갈 수 있기에 번식을 위한 씨앗과 겨울이면 찾아올 새들을 위한 씨앗까지 넉넉히 준비하였습니다. 찾아온 새들은 씨앗만 먹지 않고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의 손과 발이 되어 씨앗을 퍼트려주고 식물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곤충들을 함께 해결해 주는 고마운 친구들이니까요. 새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식물의 작전(?)인 셈입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노랑턱멧새 2. 멧종다리 3. 멧새 4. 동박새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노랑턱멧새 2. 멧종다리 3. 멧새 4. 동박새

 

식물의 씨앗과 열매는 새들의 겨울 양식입니다. 올해로 부천 대장동 들녘의 마지막 농사가 끝났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멧새들이 많이 와 있습니다. 부천에서 멧새들을 만난 건 처음입니다. 노랑턱멧새들과 겨울새인 쑥새들이 주로 찾아왔었는데 올해에는 멧새들이 대부분입니다. 방울새와 멧새들 그리고 종다리들이 농경지를 무리 지어 날아다니며 남아있는 볍씨와 풀씨들을 먹습니다. ~! ~! ~! 멧새들이 납니다, 뒤이어 또르르 또르르 방울새들이 내려앉습니다, 비용비용~! 종다리들도 뒤질세라 이리저리 휩쓸려 날아다닙니다. 새들에 관심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쓸쓸한 허허벌판이지만, 저처럼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활기 넘치는 겨울 농경지입니다. 갑자기 작은 새들이 우왕좌왕할 때는 어김없이 맹금류가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몸을 숨기기엔 너무 앙상한 풀들 사이사이로 잠시 몸을 숨겨보지만 결국 잡히고 마는 아이가 있습니다. 말똥가리와 황조롱이, 부엉이들과 개구리매까지 무서운 사냥꾼들이 작은 새들을 호시탐탐 노립니다.

우리 도심 곳곳에 번식하는 큰부리까마귀와 까치들은 작은 새와 설치류, 양서파충류를 주 먹이로 이용하고, 맹금들이 먹다 남긴 잔재들을 깨끗이 뒤처리하는 새들입니다. 큰부리까마귀가 누군가 먹다 버린 새의 잔재를 들고 전깃줄에 올라앉아 오래도록 먹습니다. 맹금들이 사냥을 위해 또는 사냥한 식사를 위해 전봇대에 앉으면 어김없이 까치들과 큰부리까마귀들이 나타납니다. 이 싸움의 승자는 역시 우리나라 텃새인 까치와 큰부리까마귀입니다.

 

사진 왼쪽 상단 (좌) 오색딱따구리 (우) 먹이를 찾는 황조롱이 / 사진 왼쪽 중단 (좌) 먹잇감 탐색 중인 때까치 (우) 쥐 사냥에 성공한 쇠부엉이 / 사진 왼쪽 하단 (좌) 휴식 중인 칡부엉이  (우) 남은 살을 발라먹는 까마귀
사진 왼쪽 상단 (좌) 오색딱따구리 (우) 먹이를 찾는 황조롱이 / 사진 왼쪽 중단 (좌) 먹잇감 탐색 중인 때까치 (우) 쥐 사냥에 성공한 쇠부엉이 / 사진 왼쪽 하단 (좌) 휴식 중인 칡부엉이  (우) 남은 살을 발라먹는 까마귀

 

개인적으로 겨울이 되면 늘 안부가 궁금한 새가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아주 독특한 환경에서 겨울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작년 겨울 습지에서 만난 멧도요와 태백의 바람의 언덕에 날아오는 갈색양진이’, 겨울 명물이 된 서울 불암산의 바위종다리’, 갈대 습지의 요정 스윈호오목눈이를 꼭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유라시아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날아온 멧도요는 얼지 않은 습지에서 겨울 동안 지내며 긴 부리로 탐침 하여 땅속 지렁이를 잘도 찾아 먹습니다. 올해는 가까운 굴포천의 작은 습지에도 두 마리가 찾아와 탐조인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바닷가 갈대 습지에도 많은 새들이 겨울을 나지만 그 중 스윈호오목눈이를 소개합니다. 중국 몽골 등 유라시아에서 찾아온 이 아이들은 갈대에 매달린 채, 갈대 속 곤충을 먹는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봄까지 소래 생태습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갈대밭의 작은 요정입니다.

 

사진 (좌) 굴포천 멧도요  (우) 스윈호오목눈이
사진 (좌) 굴포천 멧도요 (우) 스윈호오목눈이

 

하지만 좀 더 특별한 두 아이가 있습니다. 바로 서울 상계동에 있는 불암산에서 만날 수 있는 바위종다리와 강원도 태백 바람의 언덕에서 만날 수 있는 시베리아에서 온 갈색양진이입니다. 겨울이면 꼭 찾아가 보고 싶은 두 아이는 척박한 환경에서 잘 적응하여 산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도대체 생명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바위틈과 거센 겨울바람이 매서운 바람의 언덕 돌밭에 사는 녀석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없던 용기가 생겨나곤 합니다.

 

갈색양진이
갈색양진이

 

갈색양진이는 주로 고랭지 채소밭에서 풀씨들을 먹습니다. 불암산 바위종다리는 산 정상부 바위틈에서 바람을 피하고, 풀씨나 솔씨를 먹지만 등산객들이 나눠주는 간식을 훨씬 좋아합니다. 강원도 농가의 지붕에 살며 집안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찾아 먹던 습성이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불암산 정상부 바위틈에서 겨울을 나며, 등산객들이 쉬기 위해 앉으면 여기저기 숨어있던 바위종다리들이 내려와 자리를 함께 잡습니다. 등산객이 나눠주는 간식을 얻어먹기 위해서 입니다. 올해도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녀석들을 만나러 가보려 합니다.

 

사진 (좌) 바위종다리  (우) 초코파이 먹는 바위종다리
사진 (좌) 바위종다리 (우) 초코파이 먹는 바위종다리

 

우리가 먹거리를 찾아 주거지를 옮기듯 새들도 먹이를 따라 옮겨 다닙니다. 그래서 생태환경을 보며 만날 수 있는 새를 가늠해 보기도 하고, 이 일이 탐조의 시작인 셈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새들이 지낼 수 있는 농경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장동과 인천 동양동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부천 일대의 농경지들입니다. 이 두 지역이 개발로 곧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인천 동양동 지구는 통행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농사를 포기하고 농부들이 떠난 들에는 벼와 잡초들이 무성합니다. 인천녹색연합에 협조를 요청하여 남아있는 벼를 수확해 기러기들이 쉴 공간과 먹이를 제공하자는 제안을 드렸었답니다. 공사를 맡은 LH에서도 긍정적으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벼가 남아있지만, 아직 추수가 안 된 논의 벼를 수확해 논바닥에 놓아주셨습니다. 덕분에 많은 기러기들이 배불리 먹고 굴포천에서 휴식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수확할 벼   2. 벼수확   3. 기러기들   4. 큰부리까마귀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수확할 벼   2. 벼수확   3. 기러기들   4. 큰부리까마귀

 

지난해 마지막 날 초록교사 몇 분들과 동양동을 방문했습니다. 벼 수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점검하고 남아있는 볍씨를 수확해 두었다가 배고픈 봄에 뿌려주기로 했습니다. 이 행사는 다시 확대하여 17() 인천녹색연합 회원들과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참여도 관심도 너무 소중한 마음입니다. ‘기러기 밥이 뭐 중요해라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지구는 우리 사람만 사는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이 함께 살아가야 할 공간임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김동숙(인천녹색연합 초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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