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의 설립과 활동 28

덕적도(德積島)는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82km 정도 떨어진 섬으로 덕적군도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덕적군도에는 소야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승봉도, 굴업도, 선갑도, 백아도, 울도 등 여러 섬이 있으며 기암절벽이 아름답고 해수욕장이 발달하여 관광지로 유명합니다. 또한 예부터 새우, 조기, 갈치 등의 수산물이 유명하여 어업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현재 인천시 옹진군 소속되어 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부천군에 속한 15개 면 중 하나로 덕적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덕적면에는 어떠한 역사가 있었을까요? 덕적면장 송재붕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 면장은 지역의 유지가 맡았다고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면장의 지위를 기반으로 다양한 직책을 겸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게 특징인데 송재붕 또한 7년간의 덕적면장을 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경기도 평의회 의원과 인천부의회 출마

송재붕은 1930년 경기도 평의회 의원에 출마합니다. 이 당시 선거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각 면협의원으로 한정되어 있어 유권자 수는 적고 상대적으로 출마자가 많아 경쟁률이 높았습니다. 제한된 표 속에서 당선되기 위해 경쟁했으므로 그만큼 선거운동은 치열했습니다. 부천군에서는 6명이 출마하였는데 그 이름과 소속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계현(계남면), 강석조(계남면), 김범수(영종면), 박용균(부내면), 송재붕(덕적면), 신부정웅(계남면) 이상 6(1930315일 매일신보)

 

경기도 평의회 선거를 알리는 신문 기사
경기도 평의회 선거를 알리는 신문 기사

 

부천군의 유권자를 분석해보면 육지 9면에 80, 도서 6면에 49명으로 총 129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입후보자들은 각 후보자의 운동원만으로는 안심하지 못하고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고두(叩頭)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193347일 매일신보)

송재붕의 인천부회의원 당선사례 신문광고 
송재붕의 인천부회의원 당선사례 신문광고 

선거 결과는 신부정웅이 37, 송재붕이 31표를 받아 신부정웅이 당선되었습니다. (1933512일 매일신보)

송재붕은 2년 후인 1935년에 인천부회 의원에 출마합니다. 인천부회 입후보자 중 조선인들은 총 11명이었는데 그 명단은 장광순, 황윤, 정욱현, 김윤복, 송병철, 송재붕, 김태훈, 김택규, 김기영, 김종섭, 송운학이였으며(1935521일 매일신보), 여기에서 당선이 되었습니다. (1935523일 조선신문)

인천부회 의원이 된 송재붕은 1937년에 다시 경기도 평의회 의원에 도전합니다. 인천부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센 경기도 평의원 의원선거에서 이번에는 4년 전의 패배를 설욕하며 55표를 획득하여 41표에 머문 신부정웅을 14표 차로 따돌리며 당선이 되었습니다. (1937511일 매일신보)

 

경기도수산회 활동

경기도수산회는 1924년에 전국 12개 도에 동시에 설립되었습니다. (조선총독부 관보 3192, 1924) 조선총독부가 직접 육지 농업 생산을 증진시켜 수탈하기 위해 부천군농회를 설립하였듯이 수산업을 통해 수탈하기 위해 경기도수산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경기도수산회에 송재붕은 1932년에 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됩니다. 여기에 용유면 면장이었던 조종악도 함께 의원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193278일 매일신보)

1932년에 덕적어업조합 이사로 있는 송재붕이 안봉으로 출장을 다녀온 뒤 신의주 조선인 측 해산물 위탁판매업을 하는 동흥상회의 중개로 만주국에 민어와 말린 새우[乾蝦]를 판매함으로써 인천시장에 비해 4배나 많은 이득을 취하게 됩니다. 그전에는 생새우가 인천 근해와 황해도 연안에서 많이 잡혀 어획량은 많았으나 판로가 조선 내로 협소하여 소득을 올리지 못해 어민들은 항상 가난하였다고 합니다. (1932128일 매일신보 )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나중에 사장인 후등리와 충돌하게 됩니다. 송재붕의 부친은 7월 하순쯤 시세가 월등히 이로운 관계로 가공한 건하 일만여 근을 만주국 방면에 수출하였으나 후등리 사장은 당시의 덕적어업조합 이사인 송재붕에게 조합의 이사임에도 불구하고 가공품을 인천에서 판매하지 않은 것은 그릇된 일이라며 반대하였습니다. 이 충돌로 인해 송재붕은 이사에서 사임을 하였습니다. (1936915일 매일신보)

 

인천수산시장 개장과 평의원

19341018일에 인천부는 인천수산시장을 개설하고 조합을 창립합니다. 회장은 인천부윤이 맡았으며 송재붕은 여기에 평의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19341023일 매일신보)

 

부천유도회 결성 참여

부천군의 유림 대표 300여 명은 19391215일에 국민정신 총동원으로서 일반 민중을 지도 교화하고 황도 정신을 높이기 위해 소사 공회당에 모여 부천군 유도회를 결성합니다. 부천군 유도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유학자이면서 일제의 침략전쟁과 강제 동원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것을 의미합니다. 회장은 부천군수 장영한이 맡았으며, 송재붕은 고문을 맡았습니다. 여기에는 평의원으로 현직 14개면 면장들이 참여하였으며, 전직 군수였던 김동완은 부회장으로 참여하는 등 부천지역의 적극 조력자들이 많았습니다. (19391217일 매일신보)

 

'부천유도회 결성' 신문기사

 

울도 어장의 무전 시설 설치 노력

예나 지금이나 바다에서 어업은 항상 기상이변으로 인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1935년에 울도 어장에 폭풍경보를 위한 무전 시설 설치를 위해 노력합니다. (1935817일 매일신보)

 

|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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