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우리 주변에 병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의료 보험이 없는 이주민, 혼자 살고 있어서 자신의 아픔을 알릴 수 없는 노인, 거동이 불편하여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 등 보이지 않는 곳에 홀로 아픔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로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고립된 사람들은 더 고립됐다. 국민 건강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비만한 사람들이 늘고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주변에 자원이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위기를 겪어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정신적 건강, 신체적 건강 모두 악화됐다.

쿠바는 코로나 위기 속에 지역주민 건강을 살피기 위해 의료인들이 집으로 찾아갔다. 매일 의료인이 방문하여 감염의 위험 요인이 발견되면 빠르게 대응했다. 이런 과정 덕분에 쿠바는 코로나 위기를 잘 겪어낸 나라로 유명하다. 누적 확진자 수, 사망자 수 모두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적다.

쿠바의 이런 독특한 의료는 풍부한 의료진 덕분이다. 쿠바는 국가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국민의 건강을 지켜내기 위해 의료인의 수를 늘리고 가정 주치의 제도를 도입했다. 지역주민들 모두 주치의를 통해 건강을 관리받는다. 코로나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는 더 많은 의료진이 필요하여 의대생들이 투입된다. 의과 대학생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주민의 건강을 살피고 문제가 발생하면 지역 주치의에게 알려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 의학은 과학적인 권위를 얻고 있다. 의학의 과학적 발전은 놀라울 정도다. 의과 대학생들은 인간의 신체와 질병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학습한다. ‘사람’에 대한 인문학적 배움을 얻을 기회가 적다. 하지만 사람의 건강은 기술로만 해결될 수 없다. 한 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에 관심을 갖고 소외된 사람의 손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의과 대학생들이 지역주민들을 직접 만나고 부딪히면서 사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환경을 갖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의대생의 농촌 의료봉사로 시작됐다. 안성 농민과 주기적으로 만나서 의료 봉사를 하던 의대생들이 안성 지역주민들과 함께 공동으로 소유하는 병원을 만든 것이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시작이었다. 최근 서울대학교에서는 일차 의료에 관심 있는 의과대학생이 지역사회 의료 실습을 할 수 있도록 의료협동조합과 같은 일차의료기관과 연계하고 있다. 우리 부천의료협동조합에도 3년째 서울대학교 의대생들이 방문하여 지역의료를 경험하고 간다.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에는 ‘찾아가는 청진기’라고 하는 봉사동아리가 있다. 현재 부천시민의원 주치의로 있는 조규석 원장이 순천향대학교 교수 시절에 만들어진 의과대학 봉사동아리가 현재까지 이어져 지역사회 주민들과 만나고 있다. 의과대학생들이 부천 내 복지관과 연계하여 의료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직접 찾아가 건강을 챙기는 방문 활동을 한다. 학생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건강에 대해 문진하고 도움이 필요한 주민을 발견하면 복지관에 알린다. 사회복지사는 다시 지역사회 의료와 연계하여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재 부천시민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하정은 원장은 ‘찾아가는 청진기’ 활동을 통해 6년간 매달 꾸준히 지역주민을 만나온 의과대학생이었다. 마을 주민들의 건강, 일차 의료에 관심 있는 의과대학생으로서 다른 환경을 접하고 어르신들을 만나며 지역사회 의료를 몸으로 먼저 익힐 수 있었고, 이제 지역사회의 든든한 주치의가 되었다.

“의사의 일차적인 역할은 병이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지만, 더 넓게는 사람들이 건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환자들이 왜 아픈지, 왜 병이 생기는지 관심을 가지고 원인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일차진료를 하는 사람들은 마을의 사람들이 어떤 환경과 상황에 있는지, 무엇이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정은 부천시민의원 원장)

글 ┃이선주(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전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