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아의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 03

점심시간마다 함께 일하는 고등학교 선배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일상적인 이야기와 업무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주로 나누었다. 그러다가 조심해야 하는 이용자에 대한 얘기도 듣게 되었다.

자료실 직원들을 음흉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있어요. 아마 보게 되면 , 저 사람이구나.’ 할 거예요.”

음흉하게 쳐다본다니. 도서관에 와서 책을 볼 것이지, 왜 사람을 쳐다본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때에도 계속 얘기를 들려주었다.

한 번은 다른 직원이 지나갈 때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쓱 만졌대요. 그 직원은 너무 수치스럽고 놀라서 곧장 사무실로 가서 팀장님께 말씀드렸대요. 그러자 그분을 사무실로 불러서 팀장님이 주의를 주셨대요. 그렇게 하시면 안 되는 거고 성희롱이라고요. 이 말을 들은 분은 일부러 만진 거 아니라고, 지나가다 스친 거라고 계속 그랬대요. 참나, 정말 뻔뻔한 사람이에요. 팀장님이 계속 주의 주면서 완강하게 말하니, 결국엔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얘기했대요. 그러니까 조심해요. 언제든지 주위를 살피고 보이면 피하세요.”

! 도서관에 저런 사람이 있다니. 그때부터 그 사람은 나에게 각인되었다. 다만 내가 아동 자료실 근무자라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래도 누군지 모르니, 자료실과 연결된 복도를 다닐 때 경계하며 다녀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특히 화장실을 갈 때 더더욱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3개월 후, 도서관 내에서 직원 재배치가 이루어지면서 나는 종합자료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각인된 사람을 마주할 수 있어서 걱정이 앞섰다.

? 웬 시선이 느껴지지? 이용자가 내 앞에 한 명도 안 와있는데? 이상하다?’

고개를 드니 한 남성이 직원들이 근무하는 데스크 쪽으로 앉아있었다. 의자 등받이에는 등이 아닌 오른쪽 팔이 마주 보고 있었다. 책상은 필요 없는 자세였다. 두 손으로 펼친 정기간행물을 들고 있었다. 얼굴의 상당 부분은 정기간행물로 가려져 있었지만, 눈은 빼꼼 나와 있었다. 선배가 얘기했던 음흉한 눈빛을 뿜고 있었다.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정기간행물을 보는 척하면서 데스크 쪽을 보다 말다 하였다. 이따금 정기간행물로 눈이 가려질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입이 보였다. 뭐가 그리 좋은지 히죽거리는 입 모양을 자주 보았다. 나와 옆 직원을 번갈아보면서 그런 눈빛과 입 모양을 하고 있으니 불쾌했다. 사람을 왜 그런 식으로 쳐다보는지. 나는 종합자료실에 근무하며 처음 보는 이용자라 옆 직원에게 물어봤다.

"혹시 저분이 조심해야 할 사람인가요?" 그랬더니 맞아요. 저 표정과 시선이 신경 쓰이겠지만 신경 쓰지 마요.”라고 했다. 어려웠다. 신경이 쓰이는데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래서 빠르게 데스크에서 할 일을 마무리하고, 서가 정리를 하기 위해 일어났다.

다른 도서관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에서는 2주마다 서가 정리를 했다. 직원마다 구역을 나눠서 청구기호 순으로 책이 올바른 자리에 꽂혀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책들이 서가에서 튀어나온 정도가 똑같이 되게끔 각도 잡아준다. 책은 서가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례차례 꽂히고, 위 칸이 다 꽂히면 아래 칸으로 내려가서 꽂는다. 맨 아래 칸을 정리할 때 쭈그려 앉아서 정리하고 다음 서가를 정리하기 위해서 일어날 때, 나는 이따금씩 어지럽기도 했다. 그래서 창가 쪽을 잠깐씩 보면서 정리했다.

 

백승아 그림
백승아 그림

 

이날도 약간 어지러워서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 보았던 음흉한 눈빛이 데스크에서 업무할 때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내가 정리하는 서가의 끝부분에 서서 몸을 기대고 있었다. 얼굴은 왼쪽 부분만 보였는데, 왼쪽 눈과 입꼬리가 나를 향해 히죽거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치고, 피해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전에 다른 직원한테도 그랬듯이, 내 뒤로 와서 엉덩이를 쓱 만질 것 같아서. 냉큼 서가에서 데스크 쪽으로 종종걸음으로 나왔다. 데스크에 내 자리에 앉으니 안도감이 들었다.

, 다행이다.’

요즘도 계속 성희롱과 관련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직도 성희롱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니 화가 올라온다. 그때마다 도서관에서 겪었던 일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피해 보기 싫어서 피했던 내가 안쓰럽다. 당시에는 그 방법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던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피해볼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피해를 준 적이 있는 사람이 또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을까. 성희롱 가해자가 없으면 정말 좋겠지만 아직 많기에,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정신이 번쩍 드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또한 피해자들이 잘못한 것처럼 몰아가는 사회의 시선들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성희롱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백승아(아티스트)

 

백승아 작가
백승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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