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바니에미 만화방 이야기 1

어느 날 동네 은행이 사라졌다. 아이들 학교와 연결된 계좌, 공과금 납부 계좌가 있는 은행인데 지점 축소로 인하여 자동화 기계만 남겨두고 철수했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고 은행이 없어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에 당장에 불편함보다는 허전한 마음이 훨씬 크다. 사실 인터넷이나 기계를 이용하는 일이 창구 직원을 통하는 경우보다 많기는 하다. 그래도 맞아주는 사람 없이 기계만 덩그러니 있는 은행이 아직은 낯설다.

모처럼 맥도날드에 갔다. 주문을 위해 키오스크라고 불리는 기계 앞에 선다.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아 당혹스럽고 화면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숨은그림찾기를 하게 된다. 뒤에 서서 답답해하는 친구들의 눈총과 호흡을 느끼면 초조해지고, 긴장하게 된다. 결국 원하는 메뉴는 포기하고 눈에 띄는 메뉴를 터치하기 일쑤다. 소금 안 묻힌 감자튀김을 키오스크에서는 주문할 수 없다. 굳이 벨을 누르고 사람을 불러야 가능하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도대체 누구냐?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든 사람이!

휴대폰과 연결한 유선 이어폰을 사용하다가 얼마 전부터 무선 이어폰을 사용한다. 덕분에 두 손이 자유롭다. 운전이나 장을 볼 때, 추운 겨울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어도 괜찮다. ‘세상 참 좋아졌다싶다. 덕분에 여러 행동이 동시에 가능해졌다. A를 하면서 B를 하고, B를 하면서 독립적으로 CD를 추가로 할 수 있다. 그렇다, 실로 그렇다. 역설적으로 우리의 손은 자유로워졌지만, 우리의 삶은 갈수록 분주해진다. 손의 자유가 여유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처리할 일을 얹어주고 있다. 정말 효율적이고 낭비 없이, 언제나 역량 최대치를 살아간다.

과학 문명이 발전하며 질서 정연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그린 고전 소설 멋진 신세계’. 제목과 달린 과학 문명에 대한 비판적 내용으로 3대 디스토피아 소설 가운데 하나다. 자신의 신분에 불평하지 않도록 출생부터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학습시키는 세상, 근심이 생기면 누구나 언제든지 소마라는 알약을 먹음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그린 헉슬러의 소설이다. 헉슬러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성이 사라진 채 행복과 편리만을 추구하는 세상은 아무리 멋진 신세계라 불러도 끝내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 그래서 읽고 나면 적잖이 우울해진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사진출처 픽사베이

 

빠르게 변하는 과학. 기술 문명을 쫓아가느라 숨이 차오른다. 좀 천천히 발전했으면 좋겠다 싶은 상황이 있다. 앞서 말한 상황들이 그렇다. 사람한테 주문했으면 좋겠고, 손이 편해진 만큼 옆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고, 정해진 날에 적금을 넣으면서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다면 효율은 떨어져도 사람 냄새는 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사람의 소중함, 체온으로 전해지는 비언어적 교감 같은 것이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라틴어로 지식’, ‘’, ‘과학의 여신을 뜻하는 스키엔티아. 2017년에 나온 만화 스키엔티아는 일곱 가지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과학 문명에 기대어 사랑, 그리움,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전신이 마비된 부호 노인에게 몸을 빌려주는 젊은 여성, 사랑의 묘약을 마신 남자, 그리움에 딸을 복제한 여인, 소문의 환각제를 구하려는 여고생, 로봇과 함께 생을 마감하는 남자,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두 명의 뮤지션 이야기까지.

헉슬러의 멋진 신세계스키엔티아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간직해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스키엔티아는 과학도 따뜻할 수 있음을 그린다. 하여 만화를 보고 나면 사람에 대한 기대와 희망 덕분에 전혀 우울하지 않다.

먼 거리를 가기 위해서 KTX도 필요하지만, ‘여행을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궁화도 꼭 있어야 한다. 만화 스키엔티아를 통해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남태일(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장)

 

키워드

#남태일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