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소성리는 7년째 사드 저지 투쟁 중

안녕히 주무셨어요, 따숩게 입고 나오셨어요?”

221일 새벽 5, 경북 성주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건너편 벽에는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어둡고 길게 붙어있었다. 영하 7도의 추위 속에 구미, 서울, 부천에서 연대 온 사람들은 장작불 앞에 앉아있던 할머니들과 아침 인사를 했다.

20164월 소성리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부지로 선정된 뒤부터 주민들은 새벽 시위가 일상이 되었다.

출근합시다.”

누군가 신호를 보내자 모두 일어나 회관 앞길에 의자를 하나씩 둘씩 놓기 시작했다. 사드 기지로 들어가는 유류차와 물류차를 조금이라도 저지하려는 움직임이다. 주민들과 연대하러 온 사람들은 불법 사드 철거’, ‘No THAAD, Yes PEACE!’가 쓰인 피켓을 들고 의자에 앉아 길을 막았다.

 

소성리 마을회관 앞 사드 시위 현장
소성리 마을회관 앞 사드 시위 현장

 

집회와 시위법에 관한.” 경찰의 확성기 소리가 들릴락 말락 들려왔다. 등 뒤에 대화경찰이라고 쓰인 연두색 조끼를 입은 경찰들이 주민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달마산으로 가는 길목으로 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날의 집회는 신부님 두 분이 집전하는 평화미사로 시작됐다.

일요일만 겨우 농사를 지어. 평일엔 여기 나와야 해서. 사드를 뽑아내야지, 이건 불법이야 불법.” 여든 넘은 욕쟁이 할머니가 장작불 앞에서 하신 말이다. 옛날엔 욕쟁이가 아니었다는 할머니는 사드 이후 욕이라도 쏟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소성리 마을회관 앞 사드 시위 현장
소성리 마을회관 앞 사드 시위 현장

 

팔십 넘은 할매들이 15명 계셨는데 거의 다 돌아가셨어. 크게 잘 살려는 생각은 없어. 소성리 주민들이 평화롭게만 살면 되지.” 옆에 있던 할머니도 거들었다.

처음엔 시쳇말로 멘붕이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밤에 자다가 울분을 토할 길이 없어서 실성한 사람처럼 맨발로 뛰쳐나갔다. 환청까지 들려서.

벌써 7년이 넘었으니 그땐 나도 60대였었지요. 돌아가신 85, 86세 할매들은 12시간 길바닥에 앉아 졸면서 투쟁했어요.” 임순분 부녀회장은 사드가 들어온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이라 언제 경찰이 병력을 깔고 들어올지 몰랐다. 길에 물을 뿌리면 열기가 펄펄 올라왔던 여름철에, 비가 오면 천 원짜리 비옷을 입고, 길을 막고 대치했다고 했다.

한두 달이면 뺄 줄 알았지요. 이렇게 오랫동안 안 나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초기에 국회의원들도 많이 왔었는데 이후론 한 놈도 안 왔어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했죠. 여기는 우리 땅인데.”

 

확성기를 실은 시위 트럭
확성기를 실은 시위 트럭

 

일상은 무너졌다. 농사는 뒷전이 되었다. 농부의 발길로 수확량이 결정되는데 작물들도 온전히 자라지 못했다. “지금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의 투쟁 소리를 외부에 알려야 해요.”

평화미사가 끝이 났다. 경찰들이 의자에 앉은 주민들 옆으로 다가섰다. 조그만 목소리로 일어나 나가달라고 했다. “주한미군 철수하라.” “한국 정부는 무력 행위 중단하라.” “우리가 옳다 끝까지 싸운다.” “사드는 물러가라, 우리가 주인이다.” 확성기로 외치는 주민의 외마디 소리가 처절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주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한사람 두 사람을 의자 째 치켜올려 들어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주민 선동 주동자로 몰려 5백만 원, 괘씸죄로 3백만 원, 제시간에 안 물러났다고 2백만 원씩의 벌금을 물렸기에 주민들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부녀회장인 저와 이장님 등 총 14명에게 물린 벌금이 3천만 원이 넘어요, 글쎄. 기가 막힌 일이지요. 누가 불법인데, 벌금은 저들이 내야 해요.”

 

소성리에 내걸린 '평화' 현수막
소성리에 내걸린 '평화' 현수막

 

평화미래플랫폼 파란과 성가소비녀회 열린 분원 수녀님들은 차를 타고 달마산 초입으로 들어섰다. 사드 기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다. 기지 있는 곳을 알려주려고 따라나선 구미에서 온 여성과 수사님도 함께였다. 가는 길 양편에 사드 물러가라는 현수막이 연달아 붙어있었다. 소성리를 위해 설치한 평화쉼터 원불교 막사를 지나자 경찰 초소가 보였다. 경찰의 저지에 통과하지 못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담당자가 왔다. “저 앞에 가서 시위하지 말고 다녀오세요.”라며 길을 텄다.

예전엔 롯데골프장 자리였던 미군 기지 앞 철조망에 여러 개의 푸른색 비닐 끈이 나부끼고 있었다. 기지 안으로 작은 초소가 보였다. 우리는 사드 배치를 반대하다 세상을 떠난 한 청년의 수목장 묘에 묵념하고 양키 고 홈을 외치곤 길을 내려왔다.

아까 그 여성이 말했다. “사드 투쟁하다가 세 사람의 아까운 청년들이 죽었어요. 분신으로, 병에 걸려서요. 우리 땅을 두고 이들이 불법을 자행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싸울 거예요.”

 

임옥경(평화미래플랫폼 파란활동가)

 

달마산 초입에서 구호를 외치는 평화미래플랫폼 파란 회원과 성가소비녀회 열린 분원 수녀님들
달마산 초입에서 구호를 외치는 평화미래플랫폼 파란 회원과 성가소비녀회 열린 분원 수녀님들
소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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