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20세기의 우리나라에서 피아노는 자동차와 카메라, 냉장고, 컬러TV 등과 함께 부의 상징이었다. 나는 영문학과에 재학 중 약학과 선배들을 따라 작은 교회에 다녔는데 예배실에는 빨간 카펫이 깔려있고 아름다운 여집사님이 피아노 반주를 하셨다.

뒷좌석에 무협영화의 주인공처럼 준수한 남 집사님이 돌이 막 지난 아기를 무릎에 안고 있던 모습과 피아노 선율에서 느껴지던 뭐라 단정하기 어려운 따뜻한 아픔 같은 미묘한 울림도 기억에 남아있다. 잠자는 숲속 미녀나 라푼젤 같은 동화를 읽을 때처럼 몽환적 아름다움이 잔잔하게 스며오는 것 같았다.

여름 어느 날 예배가 끝나고 학생부를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 햇살이 가득한 거실에 뚜껑이 열린 채 건반을 드러낸 검은색 피아노가 있었고 흰색 니트를 입은 집사님은 아직도 소녀처럼 눈이 부셨다. 앨범을 보다가 와아~~ 하고 한목소리로 탄성을 높였다. 생머리를 허리 부분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잔디에 앉아있는 흑백 사진 때문이었다. 살짝 올려다보는 호기심 담긴 표정과 바람에 조금 흐트러진 긴 머리와 청초한 소녀는 완벽했다.

강의실을 향해 가방을 메고 걷고 있거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풋풋한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 앨범을 가득 메웠고 컬러 사진 사이 흑백의 사진이 하나 있었는데 A4 사이즈였다. 모두가 와아~하고 탄성을 올린 것도 그 흑백 사진이었다.

대체 이사진은 누가 찍었어요?”라고 물었을 때 잠시 망연하게 나를 보셨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쏟아질 같은 표정이었다. 작은 얼굴은 백지장보다 더 희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사진 출처 (픽사베이)

 

캠퍼스에서 찍은 사진 대부분은 어떤 남학생이 촬영한 사진이었다고. 유복한 집의 낭만과 꿈이 가득한 지적인 도련님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이면 정원에 핀 꽃들을 꺾어오곤 했다는 말에 나는 여리고 섬세한 성향의 낭만적 시인을 연상했다.

사진을 들고 이른 아침에 찾아온 날 느닷없이 프러포즈를 했다고 한다. 아직 군 복무도 안 마쳤고 또 둘 다 학생 신분이어서 당연히 안 된다고 하자 매우 단호하게 자신이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고. 그 말을 할 때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듯 집사님은 거의 넋이 나가 심산유곡 바위 사이의 고드름처럼 시리고 고독하고 투명하였다.

후회 안 하겠다고 하자 꿩이나 야생 짐승 잡을 때 미끼 속에 넣는 독약인 싸이나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자신의 눈앞에서 입속에 넣고 삼켰다고. 병원에 실려 갔지만 목숨을 잃었고 그 사건은 일파만파로 소문에 소문을 더하고 캠퍼스에서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아주 유명했다고 한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고 가족이 된 남 집사님. 그분은 말수가 적었다. 내향적이고 누구에게나 깍듯하고, 준수하여 무협영화의 한 장면처럼 현실 밖의 몽환적 풍경을 떠오르게 했다. 죽은 남학생과 너무 비슷한 성향이라고.

 

너무 사랑한다는 것.

목숨을 버리도록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

 

목사님이 미국으로 가시고 나도 서울에서 멀리 이사 왔고 세월도 아주 많이 흘러 이제 먼 전설로 남아있는 지금, 그때보다 훨씬 더 선명한 것은 피아노 선율이다. 순수한 영혼의 다잉 메시지의 여운이며 소녀의 간곡한 기도를 담은 긴 울림처럼 남아있다.

 

홍명근(시인, 부천시티저널 대표)

 

홍명근 시인
홍명근 시인

 

홍명근 프로필

2018년 부천예술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부천문인협회 총무

시집 말못할 설움과 그리움으로』 『꿈의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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