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경의 제로웨이스트 부천

부천은 문화예술이 특화된 도시이다. 문화도시로 지정되었고, 만화축제, 판타스틱 영화제 등 전국 규모의 행사뿐 아니라, 각 광역동 별로도 축제와 행사가 많은 도시이다.

흥이 많은 부천시민으로서, 한때는 그러한 축제와 행사들이 마냥 반갑고 즐거웠다. 그러나,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로 인해, 그러한 축제와 행사를 마냥 즐길 수만은 없게 되었다.

행사가 끝난 후, 쓰레기통이 넘치게 쌓여있는 일회용 컵과 일회용 빨대, 그리고 다양한 일회용기들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저 쓰레기들을 줄일 수 있을까? 저 쓰레기들은 과연 분리되어 자원으로 순환되는 걸까? 저것들은 쓰레기인가? 자원인가?

행사 후 쓰레기통이 넘치게 쌓여있는 일회용기.
행사 후 쓰레기통이 넘치게 쌓여있는 일회용기.

 

작년, 산학교 웃음꽃 장터때 환경동아리 아이들과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제로웨이스트 장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먼저 행사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분리배출함을 만들어 배치하고 분리배출 방법을 게시하는 활동을 했다. 그리고,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기를 대여했다.

산학교 자체가 생태교육을 지향하면서 되도록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해 왔기에 짧은 시간의 준비에도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평소보다 쓰레기양이 거의 3분의 2가 줄었다. 물론, 이렇게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다회용기를 준비하는 일에서부터 수거하고 설거지까지 그 과정이 쉽지 않지만, 끝나고 나서 깨끗한 분리배출함, 줄어든 쓰레기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마냥 흐뭇하기만 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작년 말 부천문화재단 시민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발의를 했다.

문화 특별도시인 부천에서 모든 축제와 행사를 제로웨이스트로 진행하자. 탄소중립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문화예술 분야가 발달한 부천에서의 쓰레기 없는 행사와 축제는 그 의미와 가치가 매우 클 것이다.”

그 발의 후, 지난 3일 열린 부천문화재단 사업설명회를 제로웨이스트로 진행했다. 사전에 텀블러 지참을 공지하고, 다과회 때는 공유 텀블러와 공유 용기를 대여했다. 이런 모습을 본 참가자들은, ‘~’하고 탄성부터 질렀다.

비록 먹을거리를 이것저것 담느라 시간이 좀 걸리고 줄이 좀 길기는 했어도 불편한 내색 없이 모두 즐겁게 동참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 순간, 문득 3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코로나로 위축된 분위기 속에 일회용 컵이 당연했던 그 시절에,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한 카페에 가서 공유 텀블러 정거장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때, 카페 사장님은 사람들이 위생을 이유로 다회용 컵을 싫어한다며 내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이제 때가 된 걸까? 사람들은 다회용 컵을 거부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쓰레기를 줄이는 데 앞장서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분들도 계셨다.

다회용 텀블러와 용기 회수도 문화 시민답게 잘 이루어졌다. 물론, 텀블러가 너무 예뻐서 갖고 싶다며 줄 수 있냐고 묻는 참가자도 있기는 했지만.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날로 높아지면서 시민들의 의식도 많이 달라졌다. 제로웨이스트만이 지구를 살릴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라는 믿음 아래 행정당국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규제를 과감히 시행하고, 시민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각종 행사 주체들도 비록 조금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행사 후에는 산더미 같은 쓰레기 대신 오직 순환할 수 있는 자원만 남지 않을까? 그날을 기대해본다.

 

이하경(산제로협동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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