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성 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1967년 북베트남의 지원으로 탄생한 캄보디아의 급진 좌익 무장단체 이름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였다. 크메르 루주란 우리나라 말로 붉은 크메르라는 뜻이다. 크메르 루주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캄보디아 농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약 4년간 캄보디아를 지배했다.

크메르 루주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직간접적인 영향도 크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의 군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미군은 베트남이 아닌 캄보디아에도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사료에 의하면 미군은 캄보디아에 베트콩이 주둔하고 있다는 첩보를 이유로 1969년부터 1972년까지 20만 발 이상의 폭탄을 투여하였다. 미군의 캄보디아 폭격에 죽은 민간인은 최소 5만 명에서 최대 15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에 캄보디아는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지는 않았으나 미국과 단교하게 된다. 이로 인해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은 1966년 캄보디아 내에 그들의 기지를 설립한다.

1960년대 캄보디아는 노로돔 시아누크가 독재 정치를 행하였고, 경제적 상황 또한 악화일로에 있었다. 이를 빌미로 우익 쿠데타가 일어났고 론 놀에 의한 친미 정권이 수립되었지만 론 놀 정권은 미군의 민간인 학살에도 무책임하였고, 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무능하였다. 이에 시아누크는 자신의 세력을 회복하기 위해 크메르 루주와 연합하여 지지기반을 확장하게 된다. 결국 1975년 론 놀 정권은 무너졌고 캄보디아의 실질적인 권력은 크메르 루주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시아누크는 크메르 정권에 있어 허수아비에 불과하였다. 크메르 루주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명분으로 시아누크를 이용한 후 바로 축출해 버린다. 이후 크메르 루주는 대중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킬링 필드라는 참혹한 대학살극으로 캄보디아 전체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영화『『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2017) 포스터
영화『『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2017) 포스터

 

크메르 루주가 정권을 잡고 있었던 4년간의 캄보디아는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아수라였다. 이후 자신들의 힘을 맹신한 그들은 베트남과도 전쟁을 벌이게 되고, 베트남군과 베트남을 지지하는 캄보디아 공산 동맹군에 의해 무참하게 붕괴되고 만다.

크메르 루주의 정권은 붕괴되었지만, 그들의 핵심이었던 폴 포트와 그 잔당 세력은 여전히 게릴라전을 벌이게 된다. 이것은 국제사회로까지 확장되어 캄보디아뿐만 아닌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호주, 중국, 미국의 세력 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더 이상의 확전에 국제사회는 양자의 주장을 절충하여 망명 중이었던 노로돔 시아누크를 국가주석으로 옹립하고 민족주의자였던 손 산을 수상으로 새로운 민주 연합정부를 수립하게 한다. 그 후에도 캄보디아의 정치적 환경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크메르 루주 정권이 붕괴된 지 30년이 지난 후 전범 재판소가 설립되었고, 학살에 가담했던 크메르 정권의 세력들은 차례대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당시 크메르 루주의 핵심이었던 폴 포트는 이미 죽은 뒤였다. 전범 재판소는 사망하지 않은 크메르 정권의 인사들을 재판하였지만, 그 과정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재판은 끝났지만 이미 학살로 인해 세상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크메르 루주가 정권을 잡았던 당시 캄보디아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 영화의 원작은 로웅 웅이 쓴 회고록이고 회고록의 제목은 영화제목과 같다. 안젤리나 졸리에게는 입양한 아들인 매덕스가 있는데 그는 캄보디아 출신이며 현재 우리나라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 영화는 5살 소녀에게 갑자기 닥친 잔혹했던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군복을 입고 있는 강해 보이기만 했던 아빠는 어느새 초라한 신세가 되어버린다. 크메르 루주 권력에 의한 일상의 파괴였다. 아빠는 오직 사랑하는 가족의 평범한 생활을 지키는 것이 소원의 전부였다. 하지만 가장 인간적이고 기본적인 것도 보장되지 않는 것이 독재 권력의 통치에 따른 현실이었다. 당시 크메르 루주의 권력에 의해 죽은 사람은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약 1/5에서 1/4 정도였다고 한다. 몇몇 개인들에 의한 정치적 욕망이 한 국가 전체 국민을 지옥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영화에서 로웅의 아버지는 공산당의 부름을 받아 갑자기 사라지게 된다. 로웅의 오빠들 또한 징병으로 끌려간다. 아빠가 공무원이었기에 로웅의 가족들은 살아남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가족들과 헤어진 채 혼자 길을 떠나야만 했던 5살 소녀의 발걸음은 어떠했을까?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길래 그녀는 그런 힘겨운 삶을 감내해야 했던 것일까? 그녀에게 주어지는 인생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무거워야 했던 것일까?

역사는 반복된다. 로웅 같은 소녀는 과거에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 아마 미래에도 그 소녀는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역사를 반복되게 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 정태성(한신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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