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의 설립과 활동 32 - 부천군 면장에 대하여(10)

부천군 남동면은 현재의 인천시 남동구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100여 년 전 남동면은 장수리(長壽里), 만수리(萬守里), 운연리(雲宴里), 서창리(西昌里), 발산리(鉢山里), 와우리(臥牛里), 도산리(桃山里), 논현리(論峴里), 고잔리(古棧里) 등 총 9개 리()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장수동, 만수동, 서창동, 논현동 등은 지금도 지명으로 사용되는 익숙한 이름으로 인천대공원과 소래습지 그리고 소래포구를 아우르는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부천군 남동면 지도
일제강점기 부천군 남동면 지도

 

그렇다면 그 당시 남동면에는 어떠한 역사가 있을까요?

<역대 남동면장>

1919~1922

1923~1928

1929~1939

박교헌

김정현

오혁근

 

남동면의 면장은 총 3명이 있었습니다.

초대 면장은 박교헌인데 이력이 독특합니다. 1909년 대한제국 재무행정을 맡던 탁지부에서 일하다 1910년부터 16년까지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측량과, 기술과, 측지과 등에서 근무하였습니다. 1919년 남동면장이 되어 22년까지 근무하였는데 대한제국부터 조선총독부까지 섭력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오혁근은 무려 11년간 면장을 지냈으며 주안금융조합 평의원과 조합장, 부천금융조합 조합장 등을 두루 역임합니다.

주안금융조합은 19211221일 다주면 사충리에 설립되었으며 초대 사장은 강신형이었습니다. (1932423일 매일신보)

오혁근은 19271012일 자가용주제조면허증 무효 처분을 받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당시에는 면허증을 가진 사람만 술을 제조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천군 남동면은 단발 색의 보급....오 면장의 간독한 지도로(1934년 2월 14일 매일신보)  
부천군 남동면은 단발 색의 보급....오 면장의 간독한 지도로(1934년 2월 14일 매일신보)  

 

오혁근은 면장을 지내면서 면민들이 상투를 자르고 색깔 있는 옷을 입게 하는 데 공(?)을 세웁니다. 오혁근은 관내 구장과 진흥회장 연합회를 면사무소 내에 개최하고 단발(斷髮) 및 색의(色衣, 흰옷이 아닌 색깔 있는 옷) 장려에 관한 대책을 협의한 후 아직 상투를 자르지 않은 150명에게 <시대에 응하라>는 단발 권고문을 발송하고 구장과 진흥회장에게는 호별방문을 하여 단발에 응하고 색깔 있는 옷을 착용하도록 독려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 80 노인 2명을 제외하고 모두 단발에 응하였으며 면민 5,500명은 정초부터 일제히 색깔 있는 옷을 착용하였다고 합니다. (1934214일 매일신보)

 

소국민의 적심
소국민의 적심

 

1930년대 후반, 남동면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신문 기사에 나옵니다. 중일전쟁에 강제로 끌려 나갔다가 희생당한 가족을 위로하는 내용입니다.

 

소국민의 진정한 마음

약동하는 소국민의 애국열, 부천군 남동면 공립보통학교 생도 일동은 사변 발발이래 다부치(田淵) 교장이 날마다 설명하는 황군장병들의 전투에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지난 6150전을 거출하여 '출정 군인 유족에 대해 국민이 마땅히 해야할 일'이란 제목의 작문을 동봉하여, 소래염전사무소로부터 소집(징발)된 지주 정일씨 유족을 위문하는 한편, 고잔, 논현 양 리()에 사는 생도들은 유족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등 전선의 후방에서 해야 할 정성을 바침으로 관계 관민을 감격시켰다. <19371111일 경성일보>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1945년 패망할 때까지 식민지 조선인들을 강제로 전쟁으로 내몰았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전시 노동력이 필요하자 탄광, 공장 등으로 강제로 데리고가 노동 착취를 하였습니다. 일제는 19384월 국가총동원법, 19397월 국민징용령을 내려 근로보국대, 여자근로정신대 등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끌고 갔습니다. 194111월에는 국민근로보국 협력령을 그리고 19448월에는 여자정신근로령을 공포실시하였습니다.

이처럼 일제가 일으킨 전쟁을 위해 많은 사람이 강제로 끌려가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일제는 군대, 공장, 탄광 등에 필요한 인력을 조선총독부, , 경찰 등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계획하였으며, 하부조직인 군청, 면장, 교장 등은 충실하게 악연을 맡아 일을 성사시켰습니다. 이러한 결과 우리 민족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희생자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군수와 면장의 역할이 가볍게 여겨지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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