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부탁해』 / 박서현 소설 x 정영롱 만화 / 문학동네

일찍 들어와라, 오늘 할아버지 제사다.”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할아버지 기일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사를 은근히 기대하곤 했다. 평소에 배곯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제삿날이 기다려지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제사상에 올라오는 특별한 음식들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일, 떡 등 다양한 음식이 차려지지만 내가 유독 좋아했던 것은 산적이다. 제수를 준비하시는 어머니께서도 가장 많은 정성으로 마련하시는 것이 산적이다. 귀한 소고기를 넓적하게 썰어 갖은양념을 입히고 구운 산적은 제삿날이 아니면 구경하기 쉽지 않았다.

어린 우리에게 유식(혼령이 음식을 드실 수 있도록 술잔을 채우고 밥에 숟가락을 꽂고 절을 하는 행위)과 합문(문밖에 나가 잠시 기다리는 행위) 시간은 참 길게 느껴졌다. 할아버지 혼령이 오셔서(때로는 친구들도 함께 오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해서 더욱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드시는 동안 우리는 돌아앉아 있거나 옆 방에서 대기하며 군침을 삼켜야 했다.

지방을 태우고(불이 꺼지지 않고 지방이 온전히 다 타야 조상이 제사를 잘 받은 것이다) 나면 드디어 기다렸던 산 사람들의 차례가 된다. 어머니는 식은 산적과 제수들을 내가서 따뜻하게 데우고 아버지는 제기를 정리하신다. 드디어 상 중앙에 산적이 올라오면 젓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먹기 시작한다. 약주를 전혀 못 하시는 아버지도 이건 할아버지께서 주시는 술이니 다들 마셔도 된다.” 하시며 한 두 잔 음복하시고 어린 우리에게 주시기도 하셨다.

이제는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제사를 모시지 않은 지 30년이 넘은 것 같다. 해서 딸들은 제사를 지낸 적이 없다. 아이들 외가는 3대째 기독교 신앙이라 아내도 제사에 참여해 본 일이 없단다. 그러나 딸 친구들이 제사를 지낸다고 말하면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제수를 장만하여 상을 차리고, 예에 따라 절을 하고 축문 등을 하지 않을 뿐이다. 부모(조상)의 기일을 맞아 가족들이 모여 옛 추억을 나누고 고인을 추모하며 (가능한)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마찬가지다.

제사의 가장 큰 의미는 제사 행위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사는 고인을 추모하지만 궁극적으로 산 사람(남겨진 사람)을 위해야 한다. 고인이 베푼 사랑과 남긴 추억들, 그리고 바라던 바들을 기억하면서 공동체를 확인한다. 허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라는 진지한 성찰에 이른다. 이는 어느 민족이나 비슷해 보이고, 이 덕분에 역사가 발전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제사를 부탁해』 표지
『제사를 부탁해』 표지

 

제사를 부탁해는 재밌는 책이다. 소설가와 만화가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작품으로 소설 x 만화’, ‘보이는 이야기를 선언한다. 소설은 제사상을 준비하는 제사 코디네이터 권수현의 시각으로, 만화는 자신의 1주기 제사상을 차리는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는 귀신 박정서의 관점이다. 등장인물들의 티키타카를 통해 떠난 자와 남은 자들의 진심이 전해지니 코끝이 찡하다. 영화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난 후, 드디어 완성된 영화를 보는 듯, 뭔가 충만해서 부족함이 전혀 없는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지난 325. 암 발견 후 40여 일 만에 서둘러 지구별 여행을 마친 경숙 누님, 누나라고 불러줘서 고맙다고 했던 참 선했던 경숙 누나. 내년 3, 1주기에는 상에 홍어를 올릴 거야. 귀한 홍어를 구했다고 한 상 가득히 차려내며 세상 행복해하던 누나. 알고 보니 부부가 먹지도 못하는 음식이었는데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일평생 자신의 선물로 삼았던 누나를 생각하면서 말이야. 누나, 하늘나라에서도 그 밝고 맑은 미소로 언제나 행복하길.

 

| 남태일(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 광장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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