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진행법

 

많은 단체들이 2월이 가기 전에 총회를 하려다보니 지난주에는 총회가 많았습니다. 총회는 왜 2월에 할까요? 각 단체들이 회계년도 마감 2개월 이내에 총회를 해야한다고 정관에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2월 31일에 회계년도를 마감하고 이런저런 정리들을 하다보면 2개월 정도는 필요하겠지요. 그러면 회계년도를 12월 31일로 맞추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의 회계연도는 매년 1월1일 시작해 12월31일에 끝나지만 미국은 매년 10월1일, 일본, 영국, 인도 등은 매년 4월1일에 시작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정부의 회계년도에 맞추고 있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사항입니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의 회계년도가 일치하는 것이 좋을까요? 회계년도가 같다보니 정부예산과 지방자치단체 예산의 수립시기도 같습니다. 정부예산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예상만으로 편성하는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많습니다. 국회의 심사 결과에 따라 큰 변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정부예산이 확정된 후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편성할 수 있도록 회계년도를 바꾸면 지방예산의 정확도가 높아지고 행정력의 낭비도 줄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단체들의 회계년도는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니 천편일률적인 2월 총회를 지양하고 단체의 특성을 반영하여 정해도 좋겠습니다.

총회에 참석해보면 단체별로 회의진행방식이 다른 것을 봅니다. 단체마다 면면히 내려오는 회의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최소한의 회의진행법은 따라야 합니다. 회의진행법이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만 회의에만 등장하는 ‘동의, 재청’이라는 용어 때문에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의, 재청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까요? 저는 회의를 직업으로 하는 시의원인지라 늘 회의규칙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시의원이 되기 전에도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회의진행법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의, 재청에 대한 어색함을 날려버리고, 또 잘못 쓰이는 부분도 살펴보겠습니다.

동의(動議), 재청이라는 단어는 회의에서만 쓰는 단어입니다. 흔히 ‘네 생각과 같다’고 말할 때의 그 동의(同意)와는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회의에서 쓰는 동의란 말은 회의에서 제안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동의와 제안을 같은 의미로 써도 무방하겠습니다. 재청은 제안에 대해 두 번째로 찬성한다는 의미입니다. 첫 번째 찬성자는 당연히 제안, 즉 동의(動議)를 한 사람이지요. 재청을 받는 이유는 제안에 대하여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회의체에서 논의할 수 있는 대상, 즉 의제가 된다는 회의의 일반적 규칙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해보면 심의안건이 제출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총회일 경우 감사보고, 사업보고, 사업계획 등이 제출되어 있는 심의안건입니다. 의장은 제출된 각 안건들에 대해 보고를 하게하고 질의와 답변, 토론을 거칩니다. 이를 ‘심의’라고 합니다. 심의를 마치면 의결을 하게 됩니다.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일은 이 때 생깁니다. 의장은 의결을 위해 동의, 재청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회원 중 누군가가 “원안대로 받기를 동의합니다”고 말해 주기를 기다립니다. 이 말이 입에 익지 않아서 발언을 주저하게 됩니다. 어떤 단체는 동의자, 재청자의 이름을 확인하여 회의록에 남기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같은 사람들이 계속 동의, 재청을 하게 돼 회의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십상입니다.

저는 이 과정이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의결하려는 안건들은 이미 제출된 그대로가 동의안(원안)이기 때문에 별도의 동의(動議)가 필요 없습니다. 이사회가 제출한 것이라면 이사들도 회원이므로 이미 복수의 회원들이 찬성하고 있으므로 재청도 불필요합니다. 상급단체, 혹은 감독기관에서 요구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만 하지도 않은 회의를 조작하는 것에 대한 감독일 것입니다. 시 예산을 의결하는 시의회에서도 제출된 안건을 동의안으로 보고 처리합니다. “제출된 000 안건을 원안대로 처리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습니까?”라고 묻고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가결을 선포하는 것이 시의회 방식입니다.

그럼 동의, 재청은 언제 하는 것일까요? 의장이 이의가 없는지 물을 때 누군가가 “이의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자주 했던 일입니다(^^). 원안에 수정할 것이 있거나 표결을 요구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원안에 수정할 것이 있으면 수정동의를 하게 됩니다. ‘수정안을 낸다’는 말을 회의용어로 ‘수정동의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의회 본회의에서는 수정동의를 할 때 미리 일정 수 이상의 찬성서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재청을 따로 요구하지도 않습니다(시의회 상임위원회에서는 수정안을 낼 때 찬성서명을 받아서 내지 않아도 됩니다. 누군가가 수정동의를 하면 위원장은 재청하는 위원이 있는지를 묻고, 재청자가 있으면 ‘의제로 성립됐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의에는 수정동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을 더 받으라고 할 수도 있고 토론을 더 하자고 요구할 수도 있으며, 표결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모두 동의에 속합니다. 굳이 ‘질문을 더 받아주시기를 동의합니다’고 말하지 않더라도 발언자체가 동의가 되는 것입니다. 의장은 바로 재청을 물어야 합니다. 이런 동의들은 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절차 등의 부수적인 내용을 위해 생긴 동의이므로 ‘부수동의’라고 합니다. 부수동의에는 수정동의, 질의종결 또는 토론종결의 동의, 보류동의, 심의방법에 대한 동의, 표결방법에 관한 동의 등이 있습니다.

의장이 가결여부를 묻는 과정에서 나올 성질은 아니지만 휴회, 정회, 폐회 등을 요구하는 동의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규칙적용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고 의장을 불신임하자는 동의를 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보통 의사진행발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긴급동의 또는 우선동의’라고 말합니다.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다음 회의진행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추후에 처리한다면 그 동의를 발의하고 성립시킨 실효성을 상실할 수 있는 동의들입니다. 긴급동의는 안건심사 중에 제출할 수도 있고, 재청을 받아 의제가 된 긴급동의에 대해서는 안건 심사 중이라 하더라도 우선적으로 처리를 해야 합니다.

흔히 “의사 진행 발언입니다”라고 이야기한 것이 바로 긴급동의를 한 것입니다. 회의 중에 시도 때도 없이 긴급동의를 제출하여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다 받아주고 우선 처리해야 하는가라고 물으시면 마땅한 답은 없습니다. 의장이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회의가 제대로 진행되기가 힘들테니 누군가가 정회동의를 할 수도 있고 폐회동의를 할 수도 있겠지요.

회의에서 나온 수정안에 대해 동의, 재청자 이름을 확인하고 기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원회의 등을 통해 제출된 원동의에 대해서는 별도로 동의, 재청을 받을 필요 없다고 확신합니다. 부수동의나 긴급동의에 대해서 회의록에 일일이 기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에 얽매인 회의보다는 유연한 진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표결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붙입니다. 보통 의장이 “원안대로 가결하고자 하는데 이의 없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만장일치 가결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의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으면 가결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만장일치 가결에 이의가 있고 표결을 요구하면 시의회는 재청도 받지 않고 바로 표결에 부칩니다. 표결은 기립표결이 기본이지만 누군가가 무기명비밀투표를 제안하면 재청을 묻고 투표방식에 대해 표결을 합니다.

수정안이 있으면 수정안부터 표결을 합니다. 수정안에 과반이 찬성하면 수정안이 가결된 것입니다. 당연히 원안은 표결할 필요가 없겠지요. 수정안이 부결되면 원안을 표결합니다. 원안만 남았으니 이의 여부를 물어서 결정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이 때 원안에 대해 다시 수정안을 발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수정안부터 표결을 하면 됩니다. 앞서의 표결방식 결정을 사례로 보면 기립표결이 원안이고 무기명비밀투표는 수정안이 됩니다. 수정안이 부결되면 당연히 원안대로 기립표결을 하게 되겠지요. 물론 다른 수정안이 나올만한 것도 없습니다.

□ 동의의 종류와 우선순위 

동의의 종류와 우선순위 동의의 특성
발언차단 재청 토론 수정 결정방법
다음회의 일시, 장소 결정 × × 과반수
폐회 × × × 과반수
휴회 × × 과반수
특권, 규칙, 재표결요구 × × × 의장판단
보류 × × × 과반수
의장제소 × 과반수
토론종결 × × × 2/3
위원회회부 × 과반수
재수정동의(재개의) × × 과반수
수정동의(개의) × 과반수
보류의안 재상정 × × × 과반수
심의반대 × × × 2/3
원동의 × 과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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