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어느 해부터인가 나물을 캐는 것으로 봄을 맞고 있다.

이른 봄나물 중에 으뜸은 뿌리가 튼실한 묵은 냉이이다.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한겨울을 이겨 냈으므로 그 풍미가 남다르다. 또한 산이나 들에 다른 나물이 나오기 이전에도 맛을 볼 수 있는 것이라서 더욱 귀하다. 그런데 올해 봄엔 캐지 못하고 냉이 철을 지나쳤다. 내가 코로나에 감염되고, 감염된 어르신들을 직장에서 돌보느라 봄의 통과의례를 치를 겨를이 없었다.

오늘 점심시간에 봄 햇살이 좋아 모처럼 내 근무지의 옥상 하늘공원에 올라갔다. 지난해 갖가지 꽃나무와 채소, 한 철 꽃들로 시끌벅적했던 모습과는 달리 화분마다 휑하고, 꽃나무에는 이제야 물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옥상 봄맞이를 미리 준비 못 한 서운한 마음이었으나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보노라니 양지쪽 꽃나무 밑에 심어 놓지도 않은 쑥들이 빼곡하게, 음지에는 드문드문 새싹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한 잎 따서 코끝에 대어보니 봄 향이 그 안에 다 담겨 있는 듯했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사진 출처(픽사베이)

 

어린 쑥이 나오는 봄철이면 어머니는 쌀뜨물에 된장을 풀고 조갯살을 넣어 쑥국을 끓여 주셨다. 그때는 씁쓸한 쑥 맛이 영 내키지 않았으나 나이를 먹어 가며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쑥을 뜯어서 된장국을 해 먹기로 마음먹고 퇴근 후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손톱 밑에 검푸른 물이 들도록 쑥을 뜯었다. 생각보다 양이 넉넉하여 흐뭇했으나 추위를 이겨 내고 따뜻한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뜯긴 내 손 안의 쑥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조갯살 대신 아들이 좋아하는 소고기를 샀다. 쌀을 씻어 뜨물을 받아 끓이며 다시마를 우리고, 표고버섯 가루와 소고기를 넣고 끓이다가 향긋한 쑥을 넣었더니 풍기는 봄 내음이 온 집안을 감돌았다. 가족들이 돌아와 쑥국을 내어놓았더니 모두 맛있게 먹었다.

내일은 친구 향숙이네 모네정원엘 갈 예정이다. 그곳에 가면 해마다 나의 봄맞이 의례에 빠지지 않는 나물 소루쟁이를 캘 것이다. 지금쯤 잎이 서너 개 나온 소루쟁이는 아주 맛있는 국거리이다. 아차, 시기를 놓치면 신맛이 나서 먹을 수 없다. 더 자라기 전에 캐다가 소금에 박박 문질러서 된장국을 끓이면 보드라운 식감에 목 넘김이 좋은 그 맛은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T.S.엘리어트는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코로나 감염으로 점철됐던 지난 3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었으므로 4월은 오히려 행복한 달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되고, 점차 몸 상태도 회복이 되어가니 못다 한 봄맞이 의례를 마저 해 나가련다.

 

김명숙(수필가)

김명숙 수필가
김명숙 수필가

 

프로필

작가회의 흰모래 수필 동인

2021 디지털 백일장 수필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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