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인천 상륙작전 성공으로 남북통일의 염원이 이뤄지는가 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온 국민은 다시 고향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대대적인 피난을 해야만 했다. 복잡한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가족도 부친께서 군 보급대로 강제 징용되시고, 남은 3남매와 어머니 넷이서 고향을 떠나 매서운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공포에 휩싸인 채 1·4 후퇴 고통스러운 길을 나서야 했다.

용산 기차역 화물열차 속에는 벌써 콩나물시루처럼 한 사람도 들어설 틈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열차 꼭대기에 깔아놓은 판넬 발판 위에 겨우 자리를 잡고 웅크리고 앉아서 보름 동안 밤낮으로 지냈다. 터널을 지날 때는 담요나 천으로 온몸을 덮어 열차에서 뿜어대는 매캐한 연기를 피했다. 캄캄한 야간엔 가장자리에 앉아 깊은 잠에 졸다가 굴러떨어진 사람도 몇몇 있었다고 하나, 그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었으며 그런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증기기관차는 기적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남으로 남으로 향하여 내려갔다. 어느 역에서는 열차 밑을 맴돌며 김밥 사이소!”라며 외치는 소년 소녀 음식 장수도 있어 생소하게 들렸다.

마침내 닿은 종착역이 대구 기차 역사(驛舍). 우리 일행은 위험한 열차 꼭대기에서 버텼지만, 무거운 짐을 메고 또 머리에 이고서 길을 따라 도보로 피난한 행렬 보다는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그랬음에도 종착역에 내린 우리 가족은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역사의 양지바른 벽체에 기대어 네 식구가 굶고 앉아 추위에 떨고 있어야만 했다.

 

UN군을 따라 남하하기 위해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피난민들(사진출처 위키백과)
UN군을 따라 남하하기 위해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피난민들(사진출처 위키백과)

 

이때 어머니는 여동생의 목에 칭칭 감긴 목도리를 푸시며 그것을 냇가로 들고 가셨다. 그것은 고향을 떠나올 때 챙겨 온 고급 비단 한 필(길이:16.35m, 32.7cm)이다. 직접 길쌈하시어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 옷감이다. 깨끗이 세탁한 비단을 햇볕에 말려서 손으로 꼭꼭 눌러가며 정성스럽게 손질하셨다. 고급스러운 비단을 잘 개켜서 가까운 쓰레기장에서 구해온 깔끔한 종이 상자에 올려놓고 인근 시장으로 향하신다.

엄마 곁을 떠나기 싫은 나는 꽁꽁 부풀어 얼어 터진 손등을 비벼대며 뒤를 따라나섰다. 몇 바퀴 시장 주위를 맴도시며 천천히 종이 상자의 비단을 보물처럼 여기시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지나실 때 머리에 화려한 비녀를 꽂으신 한복차림의 고운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시고 어머니의 종이 상자 위에 놓인 비단을 유심히 살피신다. 귀한 물건임을 즉시 알아차린 어르신은 그 당시에 후한 값을 치르시고 구매하여 가셨다고 했다.

장사 밑천을 준비하신 어머니는 그 길로 양은으로 제작한 둥글넓적한 그릇을 구입하시고 즉시 찐빵 도매 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수북이 담아서 시장 안팎을 두루 다니신다. 방금 쪄온 빵이라 하시며 고객들에게 웃음을 보이셨다. 그때가 점심시간이어서 쟁반 위의 빵이 순식간에 팔렸다. 끝까지 뒤따르는 아들을 생각하셨음인지 내 손을 꼬옥 잡으시고 외진 곳에서 팔다 남은 것을 주셨다. 그 빵이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그때의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한참 성장할 어린 나이에 몇 날을 굶주렸던 배를 맛난 빵으로 채웠으니 더욱 그랬었다.

추위를 견뎌내라고 여동생 목도리로 사용했던 비단 한 필을 팔아서 장사 밑천을 장만하신 지혜로운 어머니는 남다른 판매 수완으로 수입을 올리셨고, 그 후 어렵사리 사글셋방을 구할 수 있었다. 신바람 난 동생들이 야산에서 주어온 나무그루터기 등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따뜻한 방안에서 온 식구가 꿀잠을 이루며 삶의 질을 높여갔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 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간절히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옆에서 보았다.

일생을 슬픔과 고통으로 한 세기(世紀)를 넘기시면서 질병과 가난을 벗어나 오늘에 이르러 단란한 가정을 일구어내신 분이 올해 104세의 초고령으로 요양원에서 생존하여 계신다. 지난 주말 예약된 면회 시간에 찾아뵈오니 마스크 쓴 자식과 며느리를 전혀 몰라보셨다. 마스크를 벗고 큰 글자를 써서 우리를 알아보시겠어요?’라며 피켓을 들어 보이니 ! 너희들 왔구나, 애는 큰아들, 재는 작은 며느리, 감사하다.” 하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불효한 자식들로 인하여 한 번도 편안한 삶을 누려드리지 못했었다. 깡마르신 용모에 치매증세로 정신이 아물아물하시어 겨우 가족을 알아보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가엾은 마음과 부끄러움이 앞설 뿐이다.

그 암담했던 순간에도 목도리로 사용한 꼬깃꼬깃한 비단을 손질하셔서 위기(危機)를 넘기시던 어머님을 생각하면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관상(대성방재 근무, 부천 작가회의 흰모래 수필회원)

이관상 수필가
이관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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