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달이 그루잠 들기 전에 구름이 다가와 꽃잎에게 말을 건넵니다

일찍이 고추라는 시를 써서 주변을 놀라게 한 정령 시인이 네 번째 시집 구름이 꽃잎에게를 출간했다. 2019년 제3시집 자자, 나비야이후 4년 만이다.

정령 시인은 부천문인협회 회원이자 부천여성문학회 회원으로 시 창작에 힘쓰면서도, 벌써 10년째 부천시아동복지교사, 독서지도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콩나물신문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시인은 지난 2021년부터 올해 2월까지 콩나물신문에 정령 시인과 함께하는 엄마와 아이를 위한 독서지도를 연재한 바 있다.

시집 출간에 맞춰 정령 시인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시는 좋은 시와 나쁜 시로 구별하기보다 가슴에 남는 시와 그렇지 않은 시로 구분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가슴 한구석에 꼭꼭 묻어두었던 내밀한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들려준 시인께 감사드리며 시인의 맑고 순수한 영혼이 독자들에게 크나큰 기쁨과 용기와 감동으로 다가가기를 기원한다.

 

정령 시인
정령 시인

 

정령 시인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네 번째 시집 구름이 꽃잎에게발간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간단한 소감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이렇게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번 시집 구름이 꽃잎에게는 좀 더 특별하게 부천시의 지원을 받는 만큼 부천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출판사는 <미디어저널>이구요, 엊그제 인쇄에 들어갔으니 신문에 제 기사가 보도되고 나면 곧 초판이 나올 것입니다.

제가 세 번째 시집 자자, 나비야2019년에 내고, 금년에 부천문인협회에서는 단독으로 부천시 문화예술발전기금을 받게 되어 조금은 부담되고 다른 문인들께도 송구합니다. 하지만 4년을 준비하고 다듬고 하면서 마음속에 품었던 여러 가지 숨겨놓은 많은 것들을 꺼내어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합니다.

 

이번 시집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이번 시집에서 저는 제가 제일 고민하고 감추어야 했던 것들을 꺼내놓았습니다. 그동안 반백 년을 넘게 살면서 부모님에게 못 한 이야기도 많고, 형제들에게 못한 이야기도 얼마나 많은지요. 제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시집을 덮으면서 다는 아니지만 제 할 말을 몇 자 적어 보태었으니 시집을 보면 제 속마음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면서 독자들과 거리낌 없는 소통을 하고 싶습니다.

 

정령 시인 네 번째 시집 『구름이 꽃잎에게』(2023, 미디어저널) 표지
정령 시인 네 번째 시집 『구름이 꽃잎에게』(2023, 미디어저널) 표지

 

이번 시집에서 특별히 이 시만큼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것 같다는 작품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글쎄요. 독자들에게 보이지도 않고 이 시가 이렇게 좋습니다 하고 소개하려니 갑자기 부끄러워지네요. 이번 시집은 모든 시가 제각각 품은 뜻이 있어 소개하고 싶은 시가 많지만, 그래도 추천을 해보자면, 부천 도당동에 있는 백만송이장미원, 우리 어머니들의 인생을 담은 차 한 잔을 감상해보시는 것이 어떨지요.

 

화르르 불사르고

죽어도 좋을

꽃송이가 백만 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보이는 누구라도 덥석 잡고서,

고백을 해도

따귀 안 맞을

수만 가지 핑계가 섬섬한

우르르 백만 가지

사랑 비법이 터진다는

비밀의 정원

‒「백만송이장미원 전문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우리는 웃음이 납니다.

한 모금을 축이고

서로의 세상을 다 마십니다.

집 나간 남자가 남기고 간 자식도

제 갈 길로 떠났습니다.

 

두 모금을 마시고

우리는 모두 느긋해집니다.

차 한 잔이 사람을

웃겼다 울렸다 가지고 놉니다.

여자의 흰 머리카락 한 올

주름살 끝에서 흔들거립니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우리는 콧노래를 흥얼댑니다.

기나긴 여정이 한가득 일렁입니다.

희끗한 차 한 잔 헤벌쭉

지난한 삶을 주워 담습니다.

‒「전문

 

이번이 네 번째 시집인데, 쓰면 쓸수록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시인들도 많습니다. 정령 시인이 생각하는 시란 무엇인가요?

시는 제게 있어서 도피처였고, 피난처였습니다. 나중에 시집을 보게 되면 제가 왜 시가 도피처였고, 피난처라고 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저에게 시는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제게는 딸이 둘이 있는데, 한 아이는 태어나면서 아픈 데 없이 자라 튼튼했지만, 한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부종에 조산기로 온갖 고생을 하였습니다. 결국엔 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늘 나쁜 생각만 했는데, 신기하게도 듣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하다가 보니 끄적거리게 되고 오늘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시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 집 아이에게도 행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김유정 문학촌에서 홍명근 시인과 함께
김유정 문학촌에서 홍명근 시인과 함께

 

그렇다면 시인의 꿈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오늘의 정령 시인이 있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소개해 주세요.

아이가 제 인생의 한 획을 그은 거죠. 그 애가 장애 진단을 받을 무렵 초등학교에는 특수반이 없어서 통합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항시 대기상태로 제가 늘 학교에 가 있거나 학교 주변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학부모교육으로 시 공부하는 문학반을 열어 핑계 삼아 등록하고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배운 것 같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대학 동기가 회장으로 있던 부천여성문학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시 수업을 듣고 합평도 받으면서 배우기를 십여 년.

등단은 꿈도 안 꾸다가 이것 역시 지인이 소개해 준 계간문예지 리토피아에서 신인상을 받고 등단하게 되어 본격적인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되어 매일 이젤과 화판을 들고 빵모자를 쓰고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게 꿈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댐 건설로 얄팍한 보상금을 받아 부천으로 전학하면서 가난을 이유로 포기하게 되었지만요. 하지만 가끔은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아서, 제 첫 시집 연꽃홍수에는 제가 그린 연꽃 그림이 들어 있고, 두 번째 시집 크크라는 갑에는 각 부마다 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부천여성문학회 회원들과 함께한 새만금 문학기행(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정령 시인)
부천여성문학회 회원들과 함께한 새만금 문학기행(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정령 시인)

 

정령 시인은 부천시 아동복지교사, 독서지도교사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활동하게 된 계기와 활동 내용, 보람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벌써 십년 차 아동복지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동복지교사는 부천시 아동청소년과 소속으로 부천 관내 아동 돌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에서 교육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분야는 미술, 영어, 기초학습, 독서지도가 있는데 저는 그중 독서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독서지도교사를 하면서 복사골예술제 백일장이나 전국대회에서 매년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시를 써서 상을 타기도 하였고요, 그렇게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독서지도 강연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정령 그림 「연꽃홍수」(2014)
정령 그림 「연꽃홍수」(2014)

 

제가 이렇듯 활동을 하게 된 데에는 시를 쓰고 책을 내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준 것 같습니다. 시를 쓰다 보니 많은 책을 보게 되고, 책을 많이 보다보니 그게 직업이 된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함께 보고 듣고 말하고 쓰기를 합니다. 그게 독서의 기본인 것 같습니다. 책을 함께 보면서는 감정이입이 되어 어떤 아이는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 이러한 정서적 감정표출이 아이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보람이라고 하자면, ADHD 진단을 받은 아이가 시를 써서 상을 받아 온 센터가 들썩인 일이며, 툭툭 제 성질을 못 이겨 아무에게나 덤비고 쌈질을 하던 아이가 저랑 같이 책을 보고 난 후 느낌을 말하면서 저도 이런 상황이라 이렇다고 말해줄 때 감싸 안아 줬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쪼록 이번에 출간되는 네 번째 시집 구름이 꽃잎에게가 많은 분께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이종헌(콩나물신문 편집위원장)

정령 시인(온유 이주희 글, 그림)
정령 시인(온유 이주희 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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