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열의 내고장 부천

흔히 부천에는 자랑할만한 문화 유산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고강동 선사유적을 비롯하여 변종인 신도비, 청평군 한언 묘표, 한준 신도비, 이한규 묘역, 화유옹주 묘, 귀인조씨 묘, 경숙옹주 묘, 석왕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만불선원의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등과 세시풍속으로 원종동 도당우물제, 윗소사산신제, 깊은구지도당제, 석천농기고두마리, 장말도당굿, 경기도 무형문화재 61자리걷이등 제법 많은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존재한다.

우리 부천시가 시민들의 정주의식을 고취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내 고장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문화유산을 제대로 관리하고 전승보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강동 적석환구유구
고강동 적석환구유구
고강동 발굴 유물 마제석촉
고강동 발굴 유물 마제석촉
경인선 개통(1899년) 직후의 소사역(현재의 부천역) 모습
옛 소사역(현 부천역) 전경
옛 소사역(현 부천역) 전경

 

부천에는 근현대사와 관련한 유적들도 많다. 100년 전 경인 철도가 관통한 부천역은 아직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고 1960~70년대 우리나라 농촌 교육의 본거지였던 한미재단 4-H 훈련농장 또한 여우고개 아래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1970~80년대 산업화 시대 접어들면서 부천에 많은 공장이 들어섰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으로부터 소규모 공장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의 공장들이 밀려들어왔다가 빠져나갔지만 그런 역사는 정리되어 있지 못하고 옛 모습만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 부천에는 한시대를 주름잡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이 꽤나 많았다. 지금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삼성반도체의 출발지 또한 우리 부천이었다. 반도체 공장을 수원 영통으로 옮기기 전, 도당동에서 상동으로 이전하겠다고 요구했을 때 부천시가 반대하여 무산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송내동에 있었던 아이디얼 미싱 공장 전경
송내동에 있었던 아이디얼 미싱 공장 전경
점말 옹기가마
점말 옹기가마

 

70년대 까지만 해도 미싱이 한집에 한 대씩은 있었다. 옷을 수선하고 크기를 줄이고 늘리며 어려운 살림에 큰 몫을 해 주던 고마운 기계였다. 그 미싱의 대명사인 아이디얼 공장이 부천시 송내동에 있었다. 우리나라 자동펌프, 선풍기의 역사로 일컬어지는 신한일 전기와 함께.

여월동 옹기 도요지는 조선후기 흥선대원군 집권 시절 병인박해를 피해 도망쳤던 천주교인들이 그곳에서 옹기를 굽기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당시 그곳 점말에는 질 좋은 마사토가 널리 분포 돼 있었다고 한다. 근대에 와서 그곳에 사기그릇의 대표 브랜드인 세라트공업주식회사가 건립되었는데 회사가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사기그릇의 대명사가 회사 이름과 같은 세라믹이 되고 말았다는 재미난 이야기도 전해온다. 그 후 수많은 사기그릇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지만 한번 굳어진 이름은 끝내 변하지 않았다.

 

최의열(화가, 부천시의원)

최의열 의원
최의열 의원

 

 

키워드

#내고장부천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