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도시는 좋은 것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사건으로 오명(汚名)을 뒤집어써 도시 안의 좋은 것들도 다 가려져 버릴 때가 있다. 순식간에 벌어진 안 좋은 일로 긴 세월에 걸쳐 쌓아온 도시의 이미지가 훼손되기도 한다.

말뫼의 눈물은 스웨덴 남부 항구도시 말뫼가 2002년 지역 대표 조선업체인 코쿰스의 크레인을 울산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면서 슬퍼했던 풍경을 묘사한 말이다.

말뫼는 1970년대까지는 스웨덴의 조선 산업을 이끄는 대표적 공업단지였다. 그러나 조선 산업의 쇠퇴로 인해 1979년 말뫼 시는 코쿰스의 조선 설비를 매각했고 1986년 조선소는 폐쇄됐다. 곧이어 들어선 사브-스카니아의 상용차 조립공장도 1990년 스웨덴 재정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코쿰스 크레인(스웨덴어: Kockumskranen)은 스웨덴 말뫼의 코쿰스 조선소에 있었던 높이 138m 갠트리 크레인으로, 2002년 여름에 해체되어 대한민국 울산에 있는 당시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 도크로 이전하였다.(출전 위키백과)
코쿰스 크레인(스웨덴어: Kockumskranen)은 스웨덴 말뫼의 코쿰스 조선소에 있었던 높이 138m 갠트리 크레인으로, 2002년 여름에 해체되어 대한민국 울산에 있는 당시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 도크로 이전하였다.(출전 위키백과)

 

이후 말뫼 시는 지속 가능한 도시에 대해 고민했다. 1995년 기업인과 노조, 대학교수 등이 참여한 위원회를 만들었고 두 가지 답을 얻었다. ‘과거 노동집약적 제조업은 버리고 IT, 바이오 등 첨단산업을 육성한다친환경 주거공간을 만든다라는 것이었다.

말뫼 시가 첨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는 바로 옆 외레순 해협을 건너 위치한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과의 협력을 통한 도시개발이다. 우선 말뫼 시는 인재 육성을 위해 1998년 말뫼대학을 개교했다. 조선·자동차 산업 중심의 말뫼를 지식경제 중심의 도시로 변화시키기 위해선 대학 유치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2000년 코펜하겐과 연결하는 해상 교량인 외레순 대교를 개통했다. 길이가 7,845미터에 달하는 외레순 대교는 도로와 철도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병용교(倂用橋)이다. 다리가 개통된 이후, 대도시 코펜하겐과 작은 항구도시 말뫼는 국가는 다르지만 같은 지역으로 분류되어 공동으로 도시행정을 운영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며, 행정이란 이용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효율적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좋은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바라본 외레순 대교
코펜하겐 공항에서 바라본 외레순 대교

 

차량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외레순 대교는 말뫼와 코펜하겐 노동력의 초 국경적인 이동을 촉발시켰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말뫼에 거주하면서 코펜하겐으로 출퇴근하려는 덴마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조선소가 문을 닫으며 일자리를 잃은 말뫼 지역 근로자들이 대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 문제도 말끔히 해결했다. 부동산 시장이 살아났고 이들의 소비가 말뫼 상업을 지탱하는 효과를 냈다. 조선소가 문을 닫고 23만 명까지 줄었던 말뫼의 인구는 현재 약 32만 명이며 수도 스톡홀롬과 예테보리에 이어 3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변모했다,

외레순 대교 개통 후 제약과 바이오산업이 발달한 코펜하겐(메디콘밸리)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말뫼의 바이오·제약 산업도 성장하기 시작했다. 게임 산업의 경우, 지난해 유럽연합(EU)이 스웨덴을 비롯해 덴마크, 노르웨이 3개 나라로 구성된 스칸디나비안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말뫼의 지역 우수 개발 사례로 꼽기도 했다. 한 대학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면 해당 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에 속한 기업도 그 모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게 이 프로젝트의 핵심 내용이다. 국가 간 산학협력의 유연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또한 말뫼 시는 2001친환경 주거단지도 만들었다. 말뫼 시와 중앙 정부, 스웨덴 신재생에너지 업체들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 유럽연합도 자금을 지원했다. 이 단지는 말뫼 시가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풍력과 지열,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냉난방과 전력을 100% 해결한다. 말뫼에는 풍력발전소 48개가 있고 건물은 태양열 집열을 위한 지붕구조를 채택했고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는 지역난방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주거환경이 바뀌자 스웨덴은 물론 외레순 대교 건너에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까지 이주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쇠락을 거듭하던 도시의 인구는 자연스럽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말뫼의 인구 유입 정책은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말뫼 시 야경(사진출처 픽사베이)
말뫼 시 마천루 '터닝 토르소' 야경(사진출처 픽사베이)

 

하지만 '말뫼의 기적'이라 칭하며 새로운 생태계를 가꾼 것의 이면에는 또 다른 '말뫼의 눈물'이 생겨났다. 도시의 인프라는 혁신됐지만, 사회 격차는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도시가 요구하는 나이나 학력에 부합하지 못하는 가난한 저학력 청소년들이 범죄조직에 연루됐고 마약, 폭력, 총격, 폭발사건까지 이어지고 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나라가 벌였던 재개발사업을 생각해 보면 말뫼의 상황도 짐작이 될 것이다. 가난한 시민은 더 열악한 지역으로 밀려나고 있고 그들의 삶은 말뫼가 개발되기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 우리나라도 여러 도시에서 도시 재생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인구가 사라진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정책을 만들고 새로운 도시로 변모하기 위해 재생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그 사업의 성공은 사회적 격차나 불평등이 없는 사업이어야 하고 가능한 많은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어야 한다. 눈으로 보이는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도시에 사는 시민의 삶이 변화되어야 성공한 사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윤강(시인, 수필가)

프로필

경북 청송 출생.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졸업. 2009 수필등단. 2021 시 등단. 수필집 아득한 그리움, 공저 서정 뜨락에 핀 꽃

 

키워드

#윤강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