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민주주의의료기관연합회 탐방기

6월 중순, 일본 민주주의의료기관연합회(민의련) 소속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 연수에 다녀왔다. 일본 민의련은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일본 민의련 소속 의료기관은 무차별 평등을 기본 이념으로 삼으며 모든 의료복지활동에 이 가치를 반영한다. 일본 민의련 소속 의료기관의 직원들은 이 이념에 따라 교육을 받고 일한다. 1953117개 병원·진료소로 시작해 현재는 500여 개의 병원을 포함해 1,800여 개의 의료기관과 복지기관이 회원기관으로 소속되어 있다. 일본 총 병상 수의 1.5%를 차지한다고 한다.

민의련 기관 소속 의료기관 방문 중에 가장 눈에 띈 것은 병원 한쪽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다. 포스터에는 전쟁 반대(No War)’, ‘모든 생명을 지켜라(Save all life)’ 가 씌어있다. 민의련 소속 직원들은 전쟁 반대 교육을 받고, 일본 정부의 호전적이고 극우적인 정치에 반대한다. 민의련 연수 중에 중요한 역사 유적으로 들른 곳은 야스쿠니 신사였다. 처음엔 왜 이곳을 방문할까 의아했는데, 일본의 전쟁 범죄를 뼈아프게 반성하고 호전적인 일본 정부에 반대하여 생명을 존중하는 민의련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일본민주주의의료기관연합회(민의련) 본부에서 70주년 기념 티셔츠를 입고 일본 연수 참가자들과 단체 사진. 사진 왼쪽 첫 번째 이선주 전무, 왼쪽에서 세 번째 배경희 사무국장
일본민주주의의료기관연합회(민의련) 본부에서 70주년 기념 티셔츠를 입고 일본 연수 참가자들과 단체 사진. 사진 왼쪽 첫 번째 이선주 전무, 왼쪽에서 세 번째 배경희 사무국장

 

가장 놀라운 것은 민의련이 처음에 만든 70년 전의 가치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병원이나 복지시설을 운영함에 있어서 입소한 환자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요양원 입소 방을 숫자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각 방에 주소지를 만들어 주고 명패를 붙여서 집에 머무는 사람으로 대한다. 목욕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를 반영하여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도 쾌적하게 목욕할 수 있도록 고가의 시설도 마다하지 않고 설치한다. 노동자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복지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타 영리기관보다 급여가 많지 않아도 민의련의 민주적이고 평등한 운영방식이 좋아 남아 있는 직원이 많다.

일본은 이미 10년 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에 지역포괄케어라는 정책을 도입했다. 2025년 초고령사회를 앞둔 한국에서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데, 민의련 소속 직원이 바라보는 일본 지역포괄케어의 전망은 밝지 않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정책이 되고 말아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민의련 소속 기관은 급성기 병원, 입원 케어 돌봄 병원, 재택의료, 복지시설 등이 서로 네트워크를 맺어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체계를 스스로 갖추고 있지만, 이는 일본 정부가 만든 시스템이 아니다.

 

일본민주주의의료기관연합회(민의련) 본부에서 70주년 기념 티셔츠를 입고 일본 연수 참가자들과 단체 사진. 사진 왼쪽 첫 번째 이선주 전무, 왼쪽에서 세 번째 배경희 사무국장
일본민주주의의료기관연합회(민의련) 본부에서 70주년 기념 티셔츠를 입고 일본 연수 참가자들과 단체 사진. 사진 왼쪽 첫 번째 이선주 전무, 왼쪽에서 세 번째 배경희 사무국장

 

민의련은 한 지역과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인 관점으로 연대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극진히 환대하며, 같은 이념을 가지고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조직으로서 동지 의식을 가지고 대해주었다. 전쟁을 반대하고 생명을 중시하는 큰 틀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힘이 있었다. 또한 일본 민의련 소속 의료기관은 정부의 수가만으로도 운영이 될 수 있는 구조이지만 영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운영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 많은 회원 조직들이 회계를 통일하고 경영적으로 탄탄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한 기관이 위험에 처하면 다른 기관들이 힘을 합쳐 도와주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한국도 내년 2024년이면 안성에서 처음으로 의료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지 30년이 되고, 의료협동조합연합회가 만들어진 것은 20, 우리 부천으로 보자면 부천의료협동조합이 시작된 것이 10년이 된다. 의료협동조합은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지역사회에서 사람 중심의 공동체 가치가 잘 뿌리내리고 인간적인 의료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민의련 연수는 각자의 현장에서 사람 중심의 건강과 돌봄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걸어가는 길에 힘이 되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이선주(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전무이사)

 

이선주 전무이사
이선주 전무이사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